〈박석치〉, 〈박석틔〉, 〈박석고개〉
《춘향가(春香歌)》에서 어사또가 된 이도령이 박석고개에 올라 과거를 회상하는 대목
《춘향가》 중 박석티 대목은 어사또가 된 이도령이 춘향을 만나러 남원에 도착한 뒤 박석고개에 올라 추억이 깃든 장소와 옛일들을 연관지어 회상하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당 대목은 ‘만남-이별-재회’로 전개되는 《춘향가》에서 남녀 주인공의 재회 부분에 속하는데 이별 이후 춘향이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사설에서 이도령으로 화자가 전환되는 대목 중 눈대목으로 손꼽힌다. 어사가 된 이도령의 감회를 매우 서정적으로 그려내는 대목으로 춘향과의 추억이 담긴 장소들을 언급한 뒤 춘향의 집으로 찾아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전반부의 사설에서는 남원의 여러 장소들을 둘러보며 유장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우조를 사용하고, 퇴락한 춘향의 집을 둘러보는 후반부의 사설에서는 계면조를 사용하여 대비를 이룬다.
해당 대목은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의 『만화집(晩華集)』을 비롯하여 『남원고사(南原古祠)』에 수록되어 있어 비교적 판소리 《춘향가》의 형성 초기에 만들어진 대목임을 알 수 있다. 누구의 더늠인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1)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춘향전』 이본(異本)으로 1864년(고종1년)에서 1869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 형식 및 구성 현재 전승되는 동편제의 박석티에서는 어사가 된 이도령이 박석티에 올라 남원 산천을 내려다보다가 남문 밖으로 나가 광한루와 오작교, 춘향과 이별을 하던 숲을 바라보는 장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후 춘향의 집에 찾아가 집을 둘러보는 장면, 춘향모가 후원에서 정화수를 떠다 놓고 치성을 드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해당 구성 및 내용은 각 바디에 따라 부분적으로 차이를 보이는데 송만갑 바디인 박봉술 창에서는 춘향의 집을 둘러보는 내용이 빠져 있고, 보성소리인 성우향의 박석티에서는 해당 부분이 매우 간소화된 형태로 전창된다.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는 중고제 명창인 백점택(白點澤, ?~?)이 해당 대목을 잘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백점택의 사설은 장자백{張子伯 또는 장재백(張在伯/張在白, ?~1907)}창본의 사설과 유사한 편이다. 한편 서편제에서 전창되는 박석티> 대목은 동편제 계열과 큰 차이가 없지만 정광수 창 박석티의 경우 어사가 춘향의 집을 찾아가기 전 북문 안으로 들어가 서리와 역졸들을 만나는 장면들이 추가되어 동편제 사설에 비해 확장된 형태를 보인다. 또한 동초제인 김연수의 박석티 대목은 다른 창자들에 비해 사설이 가장 확대된 형태인데 어사가 서리와 역졸들을 만나는 장면도 포함되어 있고, 특히 어사가 춘향의 집으로 찾아가 집을 둘러보는 장면과 춘향모가 후원에서 치성을 드리는 장면을 대폭 확장하여 극적 사실감을 높이는 데 비중을 두었다. ○ 음악적 특징 박석티 대목에서 사용되는 장단은 진양조이며, 악조는 우조, 평조, 계면조가 고르게 사용된다. 어사또가 된 이도령의 시선이 머무는 장소에 따라 감정의 변화가 나타나므로 다양한 악조를 활용하고 있다. 박석티에 올라 남원의 풍경을 전체적으로 내려다보는 장면에서는 우조를, 남원의 곳곳을 중국의 시에 빗대어 설명하는 내용에서는 평조를, 춘향과의 추억이 깃든 장소를 둘러보며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계면조를 사용하고 있다.
(진양조) 박석치를 올라서서 좌우산천을 바라보니, 산도 옛 보던 산이요, 물도 옛 보던 물이로구나. 대방국2이 놀던 디가 동양물색3이 아름답다. 전도유랑금우래4으 현도관5이 여기련만, 하향도리6 좋은 구경, 반악7이 두 번 왔네. 광한루야 잘 있으며 오작교도 무사터냐? 광한루 높은 난간 풍월 짓던 곳이로구나. 저 건너 화림 중으 추천 미색8이 어디를 갔느냐? 나삼9을 부여 잡고 누수 작별이 몇 해나 되며, 영주각10이 섰는 디는 불개청음11을 허여 있고, 춤추던 호접12들은 가는 춘훙을 애끼난 듯, 벗 부르는 저 꾀고리 손으 수심13을 자어낸다. (이하 생략)
2) 남원의 옛 지명
3) 양기가 동한 때 사물의 경치. 봄의 풍경을 말한다.
4) 전도유랑금우래(前度劉郎今又來) : 먼저 간 유랑이 이제 다시 오니. 유우석(劉禹錫)의 시 <재우현도관(再游玄都觀)>의 한 구절
5) 현도관(玄都觀) : 중국 섬서성 장안현 남쪽의 승업방 거리로, 중국의 전기 소설인 『침중서(枕中書)』에 신선이 사는 곳이라고 적혀 있다.
6) 하향도리(遐鄕桃李) : 먼 시골의 복숭아꽃과 오얏꽃
7) 반악(潘岳) : 진(晋)나라의 문인, 자는 안인(安仁)이다. 재주가 뛰어나고 잘 생기어, 그가 거문고를 끼고 장안의 길에 나서면 아녀자들이 그의 관심을 끌려고 과일을 따서 던졌다고 함. 여기서는 어사가 자신을 비유적으로 이룬말.
7) 추천(鞦韆) 미색(美色) : 그네를 타던 아름다운 여인
7) 나삼(羅衫) : 비단 적삼
7) 영주각(瀛州閣) : 삼신산(三神山)을 뜻하여 만들어진 광한루 근처에 있는 작은 누각
7) 불개청음(不改淸陰) : 맑은 그늘이 변하지 않은 채로 있음. 전기의 시 <모산귀고산초당(暮春歸故山草堂)>의 한 구절에서 따온 말
7) 호접(胡蝶) : 호랑나비
7) 수심(愁心근) : 근심스러움
김수연 창 박석티 김진영·김동건·김미선, 『김수연 창본 춘향가』, 이회문화사, 2005.
이면을 그리는 판소리는 사설의 내용에 따라 악조와 장단 구성이 매우 유기적인 관계로 활용된다. 박석티 대목은 이러한 판소리의 음악적 특성을 매우 잘 보여주는데 특히 이도령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대목 중에서도 장소의 변화에 따른 감정의 다채로움을 악조의 변화에 얹어 잘 표현한 대목이다. 특히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장소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는 사설 전개는 춘향에 대한 그리움을 점차적으로 고조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인 극적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유산(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구전무형유산걸작(2003)
김진영ㆍ김동건ㆍ김미선, 『김수연 창본 춘향가』, 이회문화사, 2005. 배연형, 『판소리 소리책 연구』,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8. 김석배, 「만화본 춘향가 연구」, 『문학과 언어』 12, 1991. 박애란, 「판소리 《춘향가》 우조 선율 비교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0. 성기련, 「박봉술 창 《춘향가》 중 '박석티' 이하 대목의 사설 구성과 특징」, 『한국음악연구』 57, 2015. 신정혜, 「김정문의 판소리 음악어법 연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논문, 2015.
정진(鄭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