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고수는 임진왜란 당시 중국 명나라로부터 도입된 지휘ㆍ통신에 사용하는 형명(形名)으로 구성된 악기를 연주하는 군영악대로서, 조선 후기 오군영과 지방군영에 소속해 있었다. 취고수가 연주한 악기는 대각ㆍ나각ㆍ나발ㆍ발라(바라)ㆍ호적ㆍ솔발ㆍ자바라ㆍ점자ㆍ금ㆍ정ㆍ나ㆍ고의 12종류이다. 취고수의 음악은 〈대취타〉로 대표된다.
<소속과 구성>
취고수는 표하군에 속해 있었으며, 취타악기 연주자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군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중앙 군영의 경우 취고수의 규모는 대체로 100명 이상이었다. 취고수의 구성원은 군영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연주자 외에 서자지[書字的], 패두(牌頭), 대장(隊長), 중군배(中軍陪), 복마군(卜馬軍), 겸내취(兼內吹), 차지사복(次知伺僕), 대장댁배(隊長宅陪), 회자수(劊子手), 겸별파진(兼別破陣), 군색종사관(軍色從事官), 영번(營番), 대포수, 화전수, 세악수, 내번, 외번, 별장배, 중영부(中營部)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활동> 취고수는 왕의 성외(城外) 행행(行幸), 관찰사의 행렬, 군영의 행렬, 사신 행렬 등에서 행악을 연주했다. 행렬의 성격에 따라 악대명칭이 달라지기도 했고, 악기편성도 달라졌다.



<악기편성, 악곡>
취고수가 연주한 악기의 본래적 기능은 신호, 지휘ㆍ통신에 있었지만, 훈련ㆍ연향ㆍ행진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도 사용되었다. 취고수가 연주한 악기는 대각(大角)ㆍ나각(螺角)ㆍ나발(喇叭)ㆍ발라(바라, 哱囉)ㆍ호적(號笛/胡笛)ㆍ솔발(摔鈸)ㆍ자바라(啫哱囉)ㆍ점자(點子)ㆍ금(金)ㆍ정(鉦)ㆍ나(鑼)ㆍ고(鼓)의 12종류였다. 취고수의 악기편성에 사용되는 악기가 12종류였지만, 편성의 형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취고수가 연주한 악곡에 〈대취타〉가 있다. 취고수 음악은 호적 중심의 음악인 점에서 당피리가 중심인 고취악과 구분된다.
<연주 복식>
취고수는 일반적으로 전립, 흑삼승 갑협수(黑三升 甲挾袖), 목면 황호의(木棉 黃號衣), 흑수화자(黑水靴子)를 착용하였으나, 사신 행렬에서는 취고수 중 관악기 연주자는 홍삼승 단협수(紅三升 單挾袖), 홍삼승 단쾌자(紅三升單掛子), 홍면주전대(紅綿紬戰帶), 홍전립(紅戰笠), 흑수화자(黑水靴子)를 착용했다.
<역사적 변천>
취고수는 처음부터 그 제도가 완전한 것이 아니었고,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18세기 후반 그 제도가 완성된 후 19세기에 법제화되었다. 취고수는 취타악기 연주자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군총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표하군 소속 집단이었다. 취고수가 연주한 악기 중 일부는 고대로부터 전승되어온 우리나라 악기와, 임진왜란 이후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악기가 섞인 것이며, 악기 구성과 음악적인 측면에서 중국 명나라 취고수와 다른 독자적 체계를 갖추었다. 취고수 제도는 1894년(고종 31)에 폐지되었다.
취고수가 연주한 악기 중 일부는 고대로부터 전승되어온 우리나라 악기와, 임진왜란 이후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악기가 섞인 것이다. 취고수를 통해 고대 악기가 전승될 수 있었다. 취고수를 통해 악기 구성과 음악적인 측면에서 중국 명나라 취고수와 다른 독자적 체계를 갖추었다. 취고수를 통해 새로운 음악문화와 악곡이 생겼고, 전통음악의 영역을 확대한 데 가치와 의의가 있다.
이숙희(李淑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