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9년에 중국 원 시대의 인물 임우가 편찬한 문묘 제례악 악보이다. 조선조 세종 때에 아악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근거로 삼을 만한 아악 악보’로 평가받았다.『세종실록』 「악보」에 인용, 수록되어 오늘에 전한다.
○ 명칭
『대성악보』는 조선에서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었다. 『세종실록』의 연대기 및 악보, 『난계유고(蘭溪遺稿)』, 『악학궤범(樂學軌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성현의 「현금합자보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의 문헌에 ‘대성악보(大成樂譜)’, ‘대성악보(大晟樂譜)’, ‘석전악보(釋奠樂譜)’, ‘임우악보(林宇樂譜)’ 등 다양한 이칭으로 표기되었는데 이 중 『대성악보(大晟樂譜)』의 경우 『대성악보(大成樂譜)』의 오기(誤記)인지, 아니면 북송 대의 ‘대성악(大晟樂)’을 수록한 별개의 악보가 또 있었는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 구성과 내용
『대성악보』에는 공자ㆍ증자ㆍ안자ㆍ맹자를 모신 대성전의 석전제례 악곡이 제례 절차 순으로 악곡명과 악조, 악장, 선율이 기보되어 있다. 제례의 절차에 따른 악곡명과 악조는 다음과 같다.
| 영신(迎神) | 응안지곡 (凝安之曲) |
황종궁ㆍ대려각ㆍ태주치ㆍ응종우 | |
| 관세(盥洗) | 동안지곡 (同安之曲) |
고선궁 | |
| 승전(升殿) | 동안지곡 | 남려궁 | |
| 전폐(奠幣) | 명안지곡 (明安之曲) |
남려궁 | |
| 봉조(奉俎) | 풍안지곡 | 고선궁 | |
| (豊安之曲) | |||
| 초헌 (初獻) |
文宣王位 | 성안지곡 (成安之曲) |
남려궁 |
| 兗國公位 | |||
| 郕國公位 | |||
| 沂國公位 | |||
| 鄒國公位 | |||
| 亞ㆍ終獻 | 문안지곡 (文安之曲) |
고선궁 | |
| 徹籩豆 | 오안지곡 (娛安之曲) |
남려궁 | |
| 送神 | 영안지곡 (寧安之曲) |
황종궁 | |
| 望瘞 | 관세와 같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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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보법
『세종실록』에 수록된 『대성악보』의 석전악 기보는 4자 1구, 8구 1장으로 이루어진 각 곡의 가사를 네 글자 단위로 구분하여 띄어 쓰고, 한 구 당 두 행, 한 곡 당 네 행을 할애하여 가사와 율명, 공척보 표기를 나란히 적었다. 짝을 이루는 두 행의 오른쪽 한 줄에는 가사를 적고, 두 행의 왼쪽 줄에는 12율명과 공척보(工尺譜)을 이용하여 음높이를 적었다.
○ 역사적 변천
조선 건국 후 예악 정비를 새로이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성악보』는 『주례(周禮)』를 비롯한 고악론에 가장 부합하는 악보로 평가받았다. 당시 참고할 수 있는 악보 중에는 원대의 법전인 『지정조격(至正條格)』에 실려있는 것도 있었지만, 청성 표기가 누락되었거나 궁(宮)과 변궁(變宮)의 표기가 부정확하였기 때문에 『지정조격』 소재 악보 대신 『대성악보』가 제례악의 근간으로 채택될 수 있었다.
세종조에는 『대성악보』에 수록된 열여섯 곡 중 열두 곡을 선택하여 황종궁 열두 곡의 선율을 정하고, 12율 각각을 궁으로 삼아 모두 144곡을 완성하여 제례악을 위한 아악보가 완성되었다.
『대성악보』 선율을 조선의 방식으로 활용한 144곡의 아악곡은 이후 조선에서 이전부터 사용해 온 ‘십이율성통례(十二律聲通例)’에 따른 열두 곡과 영신례와 송신례에 사용될 세 곡을 더한 열다섯 곡으로 압축되어 조선의 아악으로 변용되었다. 아악 144곡은 『세종실록』 「악보」에, 15곡은 『악학궤범』에 수록되어 전한다.
한편, 아악곡의 선율을 제정할 때 외에도 성현이 합자보를 창안하는 과정에서 음고와 지법의 표기 방법 등을 『대성악보』에서 참고했다는 기록이 있고, 제례 아악기의 제작에도 이 악보가 주요 근거로 활용되었다.
송혜진(宋惠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