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에 중수한 민간 풍류 음악이 기보된 양금의 악보집.
1906년경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금 악보집으로, 조선 지식인층이 민간에서 연주하던 《영산회상》과 〈길타령〉 등 풍류 음악의 양금 선율을 한자식 육보로 기보하였다.
이 악보는 병오년(1906) 7월에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표지와 악보 말미에 남아 있는 ‘丙午七月日’ 및 ‘丙午七月重調’라는 필사 기록, 그리고 『서금보』ㆍ『일사금보』보다 장식음이 많다는 점에서 후대 악보임이 확인된다. 이후 조선 총독부 도서관에 소장되었으며, 장서 지인 ‘朝鮮總督府圖書館 藏書之印’과 ‘昭和16. 12. 26.’ 표기에 근거해 1941년 무렵 수집 또는 분류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원본은 ‘洋琴譜’라는 서명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영인본은 1984년 국립국악원에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15집에 수록되어 간행되었다.
○ 자료 정체
① 편찬 연대 및 편저자 사항
이 악보는 필사기에 남아 있는 ‘丙午七月重調’에 따라 1906년(병오년) 7월에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편저자는 명확히 전하지 않으며, 『서금보』ㆍ『일사금보』보다 장식음이 많다는 점에서 후대에 필사ㆍ정리된 악보로 여겨진다.
② 소장처 및 소장 번호
국립중앙도서관.
청구기호: 한古朝85-7.
○ 서지 사항/자료 체제
필사본 1책 7장(14면). 세로 27.4cm×가로 19.0cm.
○ 구성과 내용
① 표지
② 악보
① 표지
겉표지 왼쪽에는 악보명 ‘양금보(洋琴譜)’가 적혀 있다. 표지 우측의 ‘丙午七月日’과 악보 말미의 ‘丙午七月重調’라는 필사 기록에 따라 병오년(1906) 7월에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② 악보
수록 악곡은 〈이음(理音)〉ㆍ〈노염불(路念佛)〉ㆍ〈본령산(本靈山)〉ㆍ〈중령산(中靈山)〉ㆍ〈세령산(細靈山)〉ㆍ〈가락도리(加樂度里)〉ㆍ〈상현환입(上絃還入)〉ㆍ〈세성환입(細聲還入)〉ㆍ〈하현환입(下絃還入)〉ㆍ〈염불(念佛)〉ㆍ〈타령(打鈴)〉ㆍ〈군악(軍樂)〉 총 12곡이다. 모든 악곡은 한자 양금 육보로 음의 높이를 기보하였으며, 곁들여진 삼조표(三條標)는 시가 해석에 참고가 된다.

특히 이 악보집에는 다른 양금 악보집에서는 보기 어려운 〈노염불〉(현행 〈길타령〉)이 《영산회상》과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세성환입〉은 현행 〈세환입〉으로 이어져 오늘날 《가진회상》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

『서금보(西琴譜)』
『아양금보(峨洋琴譜)』
『일사금보(一簑琴譜)』
장사훈, 『국악논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0.
김현숙, 「우조타령(羽調打咏), 행악(行樂), 노염불(路念佛)에 관한 연구 : 아금고보(峩琴古譜)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2.
이동복, 「3. 양금보(洋琴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15, 국립국악원, 1984.
이주은, 「영산회상 양금선율의 변천」,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최선아(崔仙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