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개요
‘율회'는 '율객(律客)'이라 불리던 음악인들이 '음률'을 향유하기 위해 조직한 모임이다. '율회(會)'가 일반적인 모임을 뜻한다면, '율계(契)'는 회비와 규칙을 갖춘 보다 구체적인 조직체를 의미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는 두 용어가 혼용되었다. 20세기 전반에 걸쳐 전국적으로 분포했던 율회의 사례를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호남 지역의 '초산율계'(정읍), '아양율계'(흥덕) 등 '율계'라는 명칭의 조직을 통해 당시 율회의 분포와 활동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〇 목적
율객들이 모여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하며, 전문 음악인을 초빙하여 음악을 전수받고 교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〇 주체 및 구성
신분이나 직업을 초월하여 전문음악인(금사 등)과 애호가(율객)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20세기 호남 지역의 율회(율계)는 지주(地主)들이 주축이 되거나 후원하고, 김용근, 전추산, 신쾌동 같은 당대의 명인들이 사범(師範)이나 회원으로 참여하여 전승 계통의 중심이 되었다.
〇 운영 방식
조직 형태에 따라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 모임을 가졌다. 20세기 중반 전북 지역의 경우, 매일 모이는 '일회(日會)', 월 1회 전문가를 초청하는 '삭회(朔會)', 봄가을로 3~4일간 대규모로 열리던 '춘추회(春秋會)' 등 다양한 운영 방식이 있었다. '계(契)'의 형태를 띤 조직은 회비를 걷어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〇 활동 주요
활동은 '음률'의 연주와 감상, 전수였다. 조선 후기에는 《영산회상》, 가곡 등 정악(正樂) 중심이었으나, 20세기 율회에서는 이에 더해 산조, 판소리, 잡가 등 민속악까지 레퍼토리가 다양해졌다. 또한, 율객, 창우(광대), 기생 등을 초청하여 대규모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흥덕 아양율계 사례).
〇 역사적 변천
조선 후기 풍류 모임에서 비롯된 율회(율계)는 20세기 전반 전국적으로 활발히 조직되었다. 특히 호남의 '초산율계'(정읍), '아양율계'(흥덕), '이리율림계'(이리), '구례풍류'(구례) 등이 유명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쇠퇴하여 현재는 그 수가 급격히 줄었으며, '이리향제줄풍류'와 '구례향제줄풍류' 등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