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설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을 판소리화한 작품.
숙영낭자타령(淑英娘子타령)은 고소설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을 판소리화한 작품으로, 정노식(鄭魯湜, 1891~1965)은 『조선창극사』에서 이 작품을 열두 마당 가운데 하나로 포함하며 전해종(全海宗, ?~?)을 《숙영낭자전》의 명창으로 거론하였다. 이후 창의 전승은 단절되었으나, 저본으로서의 소설본이 명확히 존재하는 만큼 이후 지속적인 복원 및 확장 시도가 이루어졌다.
숙영낭자타령은 여타의 판소리와는 달리, 기존에 유행하던 동명의 고소설을 판소리화한 작품이다.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 수록된 〈과거자잠종기처(科擧者潛蹤其妻)〉라는 설화적 단계의 이야기도 그와 유사한 줄거리를 보이지만, 이것이 판소리 《숙영낭자전》의 형성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며, 판소리 《숙영낭자전》은 소설본을 저본으로 한다. 전해종(全海宗, ?~?)이 《숙영낭자전》의 명창이었다고 전승되지 않고, 이후 나온 《숙영낭자전》은 고전소설을 저본으로 하는 또 다른 복원본에 해당한다. 타령은 순우리말로, 한자를 빌려 ‘打令’으로 적기도 한다.
○ 역사적 변천
숙영낭자타령은 송만재(宋晩載, 1788~1851)가 1843년에 지은 「관우희(觀優戱)」의 판소리 열두 마당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정노식(鄭魯湜, 1891~1965)이 1940년에 펴낸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의 판소리 열두 마당에는 포함되어 있다. 「관우희」의 《가짜신선타령》이 『조선창극사』에서는 《숙영낭자전》으로 교체된 것이다. 이는 판소리 열두 마당에 속하는 다른 작품보다 뒤늦게 등장한 《숙영낭자전》이 나름의 위상을 획득한 결과이다. 다만, 고소설 『숙영낭자전』의 이본이 160여 종에 달하고, 그 서사가 민요, 창극, 영화 등으로 재창작될 만큼 대중적 인기가 상당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판소리로서의 전승은 미미한 편이었다. 『조선창극사』에서 《숙영낭자전》의 명창으로 거론된 이가 헌종(1827~1849)에서 고종(1852~1919) 연간에 활동한 전해종 한 명뿐이고, 판소리 창(唱)으로 전승된 다른 기록도 없다. 따라서 현행 《숙영낭자타령》은 이후 복원된 작품으로, 전해종의 《숙영낭자타령》과는 관련이 없다고 하겠다.
1971년에 발간된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83: 판소리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에 따르면, 박녹주(朴綠珠, 1905~1979)가 32세 때 스승 정정렬(丁貞烈, 1876~1938)에게 《숙영낭자타령》 한 바탕을 배웠다고 한다. 박녹주는 《숙영낭자타령》을 박초선(朴招宣, 1931~2014)과 함께 1970년에 도미도레코드에서 〈숙영낭자전 진국명산 백발가〉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정정렬이 박녹주에게 가르친 《숙영낭자타령》은 전승된 것이 아니라, 정정렬 새로 짠 것이다. 정정렬은 새로 짠 판소리 《숙영낭자타령》을 창극 〈숙영낭자전〉(4막 6장)으로 무대화하기도 했다. 1937년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동양극장에서 공연된 창극 〈숙영낭자전〉은 편곡과 연출을 담당했으며, 정정렬에게 《숙영낭자타령》을 배운 박녹주가 숙영낭자 역을 맡았다.
정정렬이 박녹주에게 전수한 《숙영낭자타령》은 다시 박송희(朴松熙, 1927~2017)로 이어졌다. 박송희는 소설본을 참고해 작품 전후반을 보완하기도 했다. 박녹주의 《숙영낭자전》은 30분가량 되는 짧은 소리였으나 박송희의 음반에서는 약 1시간 분량으로 확대되었다. 박동진(朴東鎭, 1916~2003)도 경판28장본 『숙영낭자전』을 저본으로 삼아 1974년 《숙영낭자타령》을 복원 및 발표했다. 그의 《숙영낭자타령》은 정정렬-박녹주로 계승된 《숙영낭자타령》과 다른 별도의 복원본으로, 1974년 공연은 약 3시간 분량이다. 동아방송이 1976년 1월 1일부터 1977년 3월 1일까지 방송한 10편의 판소리 드라마 중 한 작품인 〈숙영낭자전〉은 박동진의 복원 판소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국립창극단이 2014년 ‘판소리 일곱바탕 복원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창극 〈숙영낭자전〉을 공연하였는데, 이 공연에서의 작창은 신영희(申英姬, 1942~)가 맡았다.
○ 구성 및 세부 내용
《숙영낭자전》은 선계에서 적강한 백선군(白仙君)과 숙영의 사랑과 결연, 숙영을 시기한 시비 매월의 모해로 인한 숙영의 죽음과 재생, 승천의 서사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해종의 숙영낭자타령은 사설이나 창이 남아있지 않다. 정정렬-박녹주로 이어진 《숙영낭자전》과 박동진의 《숙영낭자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33년 정정렬은 숙영낭자가 자결할 때 딸 동춘이 통곡하는 ‘모자 영이별하는 데’와 한림학사가 되어 돌아온 백선군이 숙영낭자가 죽은 것을 알고 천태산으로 ‘약 구하러 가는 데’ 두 대목을 녹음했다. 숙영낭자전의 핵심적인 두 사건을 소리로 짰으며, 정정렬의 성음과 음악성이 잘 드러나는 녹음이다. 박송희본은 ‘선군과 선녀 꿈속에서 만나는 대목’, ‘선군이 낭자 그리는 대목’, ‘낭자 찾아 옥련동으로 가는 대목’, ‘선군과 낭자 동별당에서 노는 대목’, ‘숙영낭자 시녀에게 모함당하는 대목 ’, ‘숙영낭자 유언하는 대목’, ‘선군이 숙영낭자 붙들고 통곡하는 대목’, ‘선군이 약 구하러 가는 대목’, ‘선군이 약구해 숙영낭자 살리는 대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녹주의 《숙영낭자전》은 ‘선군이 과거보러 가는 대목’부터 시작하는 것이었으나, 박송희는 여러 소설본을 참고하여 앞부분의 서사를 보완하였다. 박동진의 《숙영낭자전》의 사설은 이국자의 『판소리 연구』(정음사, 1988)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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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ia 40471-A․B 淑英娘子傳 母子永離別하는데(上․下) 丁貞烈 鼓韓成俊 (1933) Columbia 40562-A․B 淑英娘子傳 藥求하러가는데(上․下) 丁貞烈 鼓韓成俊 (1934) 〈Musique De Monde: Pansori - Sugyeong Nangja Ga〉(1CD), 서울음반, 1997.
〈명창(名唱) 박록주(朴綠珠)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1CD), 아세아레코드, 1989.
〈박송희 판소리 숙영낭자전〉(1CD), 서울음반, 1997. 〈숙영낭자전 진국명산 백발가〉(1LP, 박록주ㆍ박초선 창), 도미도레코드, 1970. 〈한국의 위대한 판소리 명창들(Ⅳ): 판소리 5명창 정정렬〉(1CD), 신나라, 1995.
송미경(宋美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