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강수월래(強羌水越來)
여러 사람이 손을 잡고 노래하며 춤을 추는 원형(圓形) 중심의 놀이춤.
전라도 서남부 지역에서 연행되는 강강술래는 놀이·춤·소리의 총합체로 풍요를 기원하며 추는 춤이다. 강강술래는 달이 밝은 보름날 밤에 마을 여자들이 원형으로 손을 잡고 윤무(輪舞)를 하며 밤새도록 도무(跳舞)와 농어촌의 생활상을 모방한 몸짓과 놀이가 어우러진 춤이다.
강강술래의 유래는 명확한 알 수 없으나, 고대 제의설과 의병설에서 그 기원을 살펴볼 수 있다. 고대 제의설은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비롯된 것으로 『삼국지(三國志)』 「위지[魏書]」 〈동이전(東夷傳)〉에서 마한조에 풍요를 기원하는 제천의식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춤·노래·놀이를 연행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강강술래가 군무이면서 가무악의 종합예술적 성격을 지닌 점에서 상통하는 점이 있다. 한편, 의병설은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강강술래를 전투에 활용하여 왜군의 수군을 물리쳤다는 것에 기원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해남 우수영에 진을 칠 때, 적군의 병력에 비해 아군의 수가 너무 적어서 남장한 마을 부녀자에게 옥매산 주위를 빙빙 돌게 하였다. 이를 본 왜병은 이순신의 군사가 많은 것으로 착각하고 달아났다고 한다. 이후 마을 부녀자들이 밝은 달밤에 손을 잡고 원형으로 돌면서 춤을 추던 것이 강강술래로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내용
강강술래는 원형·나선·곡선·직선·사선 등 다양한 춤길을 구성하며, 구도를 만드는 대형 위주의 춤이다. 강강술래는 즉흥성이 강한 춤으로 연행 주체·연행 장소·연행 시간에 따라 가변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강강술래는 기본적으로 춤추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구조의 특성을 지닌다.
강강술래는 고정된 사설이 없이 다양한 내용으로 노래했으나,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사설이 정형화되어 일정한 가사만 반복적으로 부르게 되었다. 가사의 내용은 달에 관한 노래, 성적인 노래, 시집살이에 관한 노래, 부덕을 기리는 노래, 남녀 간의 사랑을 구하는 노래, 계절을 찬미한 노래, 농사나 바닷일 또는 집안일에 관한 노래, 과부의 이별 노래, 베틀가, 임진왜란에 관련된 노래, 일제강점기의 항일에 관련된 노래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들은 크게 공식적 표현과 심층적 표현으로 구분되는데, 공식적인 표현은 놀이하는 부녀자들의 주변적인 심정과 놀이 분위기, 희망에 가득한 정서와 염원하는 바를 표현한다. 심층적 표현에서는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는 내용이 많은데, 주로 남녀 간의 화답으로 서로의 사랑을 표현한 내용의 노래와 임의 존재가 있고 없음에 따른 즐거움·외로움·그리움·절망감 등을 담고 있어 우리 민요가 갖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보여준다. 이런 강강술래의 내용은 주로 가사를 통해 전달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힘든 노동을 모방한 춤인 <고사리꺾기>·<청어엮기>·<바늘귀뀌기> 등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 구성
강강술래는 진행 순서나 대형을 구성하는 형식이 정형화되지 않고 마을마다 다양하게 연행해 왔으나,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일정한 형식과 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강강술래 진행 과정은 〈긴강강술래〉→〈중강강술래〉→〈자진강강술래〉→〈남생아놀아라〉→〈개고리타령〉→〈고사리꺽자〉→〈청어엮기·풀기〉→〈덕석몰기·풀기〉→〈기와밟기〉→〈대문열기〉→〈쥔쥐새끼〉→〈술래소리〉이다.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연행 상황과 지역마다 일부 과정이 추가되거나 생략되기도 하는데, 진도 지역 강강술래에서는 〈손발치기〉·〈바늘귀뀌기〉·〈지장떡〉·〈남원선서도재기야〉 등, 해남 지역 강강술래에서는 〈가마등〉·〈도굿대당기기〉·〈수건찾기〉·〈품고등〉·〈봉사놀이〉·〈바능귀[바늘귀]뀌기〉 등이 첨삭되기도 한다. 남녀가 함께 연행하는 신안 비금도의 강강술래는 〈중강강술래〉에 입장하고, 이어서 〈진강강술래〉→〈자진강강술래〉→〈뜀뛰기〉→〈남생아놀아라〉→〈청어영기[엮기]〉→〈청어풀기〉→〈고사리껑기[꺾기]〉→〈덕석몰기〉→〈덕석풀기〉→〈뜀뛰기〉→〈마장뛰기〉→〈수건놓기〉→〈봉사놀이〉→〈문열어주소〉→〈꼬리따기〉→〈지와볿기[기와밟기]〉→퇴장(뜀뛰기)의 18가지가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안 비금도의 강강술래는 기존의 강강술래와 큰 틀에서는 유사하나, 〈지와밟기〉 이후 퇴장하는 것, 〈뜀뛰기〉·〈마장뛰기〉·〈수전놓기〉ㆍ·봉사놀이〉 등이 독특한 놀이춤이 존재하는 것에서 특이성을 나타낸다. 전반적으로 강강술래는 〈긴강강술래〉·〈중강강술래〉·〈자진강강술래〉에서는 대형춤으로 원형을 유지하다가, 〈남생아놀아라〉에서 〈쥔쥐새끼〉까지 놀이로 전환되어 흥겹게 논다. 다시 〈긴강강술래〉를 부르면 대형춤인 원형을 형성하고, 자진 〈술래소리〉에서 곡선으로 퇴장하는 구조이다. 이와 같이 강강술래의 진행 순서는 정형화·규칙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연행 공간에 따라 변화가 가능한 열린 구조를 지닌 놀이춤이다.

○ 춤사위
강강술래의 춤사위는 크게 대형춤과 놀이춤으로 구분되는데, 보다 세분화하면 대형놀이춤, 사물모방놀이춤, 역할놀이춤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대형춤 기본 동작은 다음과 같다. 발동작은 왼발오른발, 발디딤은 발뒷꿈치-발바닥-발앞꿈치 순으로 딛는다. 손을 잡을 때는 앞 술래가 왼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내밀면 뒷 술래가 오른손을 자연스럽게 얹고 장단에 맞추어 위아래로 흔든다. 이때 시선은 앞 술래의 왼쪽 발 뒤꿈치를 본다. 원으로 돌 때는 시계 반대 방향(ccw)으로 회선한다. 대형춤은 주로 손을 잡고 원ㆍ직선ㆍ곡선 등의 다양한 선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긴강강술래〉ㆍ〈중강강술래〉ㆍ〈자진강강술래〉ㆍ〈술래소리〉에서 나타난다. 놀이춤은 일상생활의 형태를 몸짓으로 표현하는 모방춤으로, 〈남생아놀아라〉ㆍ〈고사리꺽기〉ㆍ〈청어엮기〉ㆍ〈청어풀기〉ㆍ〈덕석몰기〉ㆍ〈덕석풀기〉ㆍ〈기와밟기〉ㆍ〈문열기〉ㆍ〈쥔쥐새끼놀이〉 등이 이에 속한다.
대형춤의 춤사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긴강강술래〉는 시계 반대 방향(ccw)으로 원을 그리며 돌며 진양조(메김소리)로 느리게 소리를 부르면, 춤꾼이 받는소리로 ‘강강술래’를 부르면서 절을 하는 과정이다. 〈긴강강술래〉는 술래가 시작됨을 알리는 소리인 동시에 술래판에 사람이 모이기를 청하는 소리이다.

②〈중강강술래〉는 〈긴강강술래〉에서 중중모리로 전환되면서 시작된다. 춤꾼들의 동작이 좀 빠르고 활발해지고 손을 박자에 맞추어 상하로 흔든다. 대형은 〈긴강강술래〉와 같지만 원이 넓어진다.
③〈자진강강술래〉는 〈중강강술래〉에서 자진모리로 전환되면서 시작된다. 춤꾼들은 이에 맞추어 양손을 옆으로 벌려 원을 더 크게 만들고 뛴다. 원이 커지면 발놀림이 빨라지면서 흥이 절정에 이른다.
④〈술래소리〉는 〈긴강강술래〉가 끝나면, 자진모리장단에 뛰면서 퇴장한다.
놀이춤은 모방 춤으로 노동 행위의 주요 포인트를 중심으로 몸짓으로 상징화하였다. 놀이춤의 춤사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남생아놀아라〉는 〈자진강강술래〉가 끝나고, 메김소리꾼이 “남생아 놀아라” 하고 메기면 춤꾼들이 “촐래촐래 잘논다”로 받으며 연행된다. 이때 원 안으로 2~3명이 들어가서 거북이나 자라와 비슷하게 생긴 남생이가 걷는 모습이 바닥에 붙어서 걷는 모습을 주요 포인트로 잡아서 몸짓으로 표출하여 원 가운데 2~4명이 나와서 양손을 머리 위로 들고 좌우로 흔든 상태에서 양발을 벌리고 서 있거나 앞뒤로 자유롭게 걷거나 화전을 한다.

②〈고사리꺾기〉는 〈고사리껑자〉·〈고사리꺾기〉라고 한다. 자진모리 혹은 빠른 중모리에 메김소리꾼이 “고사리 대사리 껑자 나무 대사리 껑자”하고 메기면, 춤꾼은 “유자 꽁꽁 재미나 넘자 아장장장 벌이여” 하고 받는다. 춤꾼들은 원형 대형 상태에서 모두 그 자리에 앉고, 선두는 바로 일어서서 왼쪽으로 돌아 한 사람씩 꺾어 나간다. 앉아 있는 모습은 고사리를 흉내 낸 것이고, 차례로 팔 위로 넘어가는 것은 고사리를 하나씩 꺽어 가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③〈청어엮기〉는 〈청어영기〉·〈청애영기〉·〈청어영자〉·〈청어얶자〉라고 부르는데, 자진모리 혹은 빠른 중모리에 맞추어 춘다. 〈청어엮기〉는 〈고사리꺾기〉나 〈개고리타령〉이 끝나면 다시 둥근 원의 대형을 만들고, 메김소리꾼이 “청청 청어영자 위도군산 청어영자”를 부르면, 춤꾼은 이 소리를 되받으면서 그대로 멈추어 선 채 어깨만을 내렸다 한다. 그러면 선두가 둘째 사람과 셋째 사람의 맞잡은 팔 밑으로 꿰어 간다. 이때 오른손은 왼쪽 어깨 위에 감기게 되어 마치 청어를 엮은 모양과 흡사하게 된다. 이는 청어를 엮는 모습을 모방한 춤으로 풍어를 기원하는 모방주술(模倣呪術)적 성격을 지닌다.

④〈청어풀기〉는 〈청어엮기〉가 끝나면, 메김소리꾼이 “청청 청애[청어] 풀자” 하고 춤꾼은 “위도 군산 청애풀자”로 받으면서 〈청어엮기〉와는 반대로 앞에서부터 반대 방향으로 풀어 원형으로 되돌아온다.
⑤〈덕석몰기〉는 자진모리 혹은 빠른 중모리에 맞추어 추는데, 메김소리꾼이 “몰자 몰자 덕석 몰자”하고 메기면 춤꾼은 그대로 받으면서 선두부터 차례로 나선을 그리면서 원의 중심부로 감아 들어간다.

⑥〈덕석풀기〉는 안으로 완전히 감겼을 때, 메김소리꾼이 “풀자풀자 덕석풀자”를 부르면, 춤꾼이 이소리를 되받으면서 감아 들어갈 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 나오거나 감은 상태의 방향에서 뒷걸음으로 나선을 넓히면서 자연스럽게 원형을 만든다.

⑦〈지와밟기〉는 〈기와 밟기〉·〈지와ᄇᆞᆲ기〉·〈지와 밟자〉라고 부르는데, 장단은 중중모리 혹은 느린 세마치이다. 메김소리꾼이 “어데골 지완가” 하고 부르면, 춤꾼은 “장자 장자골 지와세”로 받으면서 일렬종대로 늘어선다. 그러다가 메김소리꾼이 “지와 밟세”하고 소리치면, 춤꾼은 일제히 “지와 밟세”를 외치면서 앞사람의 왼쪽 허리 부분에 오른쪽 뺨을 대면서 두 팔로 허리를 껴앉는다. 일렬 대형이 되면, 메김소리꾼은 늦은 가락으로 “볿자[밟자] 볿자 지와를 볿자”를 부른다. 그러면 뒤에서 두 번째, 세 번째 춤꾼은 좌우로 가라 서서 맨 마지막 춤꾼이 등 위로 올라가는 것을 도와주고, 손을 잡아 넘어지지 않게 한다. 허리를 굽힌 춤꾼은 “어딧골 지완가”를 부르면, 밟고 지나가는 춤꾼은 “장자골 지와세”로 응답한다. 지와밟기는 부잣집 공기와를 밟는 모습을 표상화한 동작이다.

⑧〈문열기〉는 〈문열어라〉·〈대문열기〉·〈대문놀이〉·〈문지기놀이〉라고 부르는데, 〈바늘귀뀌기〉도 같은 유형의 놀이이다. 장단은 자진모리이다. 〈지와밟기〉에서 등위를 다 밟고 지나가면 메김소리꾼이 “문지기 문지기 문열어 주소”하면, 춤꾼이 “열쇠 없어 못 열겠네”로 받으면서 선두에서 두 사람이 일어나 양손을 마주 잡아 문을 만들고 선다. 춤꾼들이 문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한다.

⑨〈쥔쥐새끼놀이〉는 〈닭살이〉·〈닭쌀이〉·〈꼬리따기〉·〈닭쟁이〉 등으로 불리는데, 〈쥔쥐새끼놀이〉는 일렬로 논밭둑을 기어가는 들쥐의 행렬의 맨 끝의 쥐를 잡아 뗀다는 데서 기인한 놀이이다. 장단은 자진모리 혹은 빠른 중중모리이다. 〈문열기〉가 끝나면, 엎드린 상태에서 메김소리꾼이 “쥔 쥐새끼 찔룩찔룩 가사리 벗이여”라고 메기고, 춤꾼은 일렬로 정렬한다. 메김소리꾼이 “쥔쥐새끼를 잡세” 소리치면, 춤꾼은 일제히 앞 사람의 허리를 잡는다. 다시 메김소리꾼이 “꼬리따세”하고 외치면, 춤꾼은 “휘~” 하면서 선두가 꼬리를 잡을 때까지 계속 피하다가 꼬리가 잡히면 쥔쥐를 잡은 춤꾼을 목마에 태운다. 메김소리꾼은 “잡었네 잡었네 쥔쥐새끼를 잡았네 콩하나 퐅하나 땡겼더니 콩자두 퐅자두 되었네”를 부르면서 춤을 춘다. 이때 목마를 탄 춤꾼은 양손을 위로 들고 덩실 덩실 춤을 춘다.

그밖에 〈기마타기〉·〈개고리타령〉·〈손치기·발치기〉·〈바늘귀끼기〉·〈밭갈이〉 등이 있는데, <가마타기>은 3인 1조의 구성으로, 2인이 서로 마주 보고 양팔을 엮으면 그 위에 1인이 올라타는 형식으로 마치 가마를 타고 가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표출한다. <개고리타령>은 원 중심을 향한 상태에서 앉은 동작 상태에서 손뼉치기, 좌우 소매 걷기, 땅을 파듯이 양손을 앞뒤로 흔들기 <손치기·발치기>는 2열 횡대로 서서 손치기에서는 오른발을 들고 오른쪽에서 손뼉치기, 왼발을 들고 왼쪽에서 손뼉치기이고 발차기는 1박에 한발씩 발을 들어 가볍게 찬다. <바을귀끼기>는 <문지기놀이>와 같은 형태로 진행된다. <밭갈이>는 <꼬리따리> 형태인 허리를 구분린 상태에서 두 번째 사람이 서 있는 맨 앞사람의 오른쪽 옆구리에 고개를 붙인다. 현재도 강강술래 놀이춤은 새로운 추가되고 있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강강술래는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 영위한 춤이다. 강강술래는 일제강점기에도 연행되었는데,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 鄕土娛樂]』(1941)에 의하면, 강강술래는 내륙보다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성행하여 서해로는 황해도, 동해로는 영일만까지 보급되었으며, 내륙으로는 화순·담양·장성·전주·금산·임실·의성에서도 연행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강강술래에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참여하여 성별과 연령대가 지역에 따라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정만조(鄭萬朝, 1858~1936)의 『은파유필(恩波濡筆)』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1896년 추석을 맞이하여 강강술래를 보고 시와 해설을 곁들여 기록하였는데, 강강술래를 여자와 남자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라고 하였다. 진도 노인들도 강강술래는 처녀·총각들이 함께 노래 부르면서 춤을 추는 놀이라고 전한다. 현재 남녀가 함께 연행하는 강강술래로는 《신안비금도뜀뛰기강강술래》 가 대표적이다.
강강술래의 현대적 변화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강강술래는 1966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으나 민요 중심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공연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였다. 민속학자 지춘상(池春相, 1931~2009)이 서남해 강강술래의 노래와 가사를 정리하고, 진도의 예인 박병천(朴秉千, 1933∼2007)이 다양한 놀이 요소를 도입한 《해남강강술래》가 1976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강강술래는 춤·노래·놀이의 총체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 강강술래는 현재 진도·해남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2009년 유네스코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살아 있는 전통문화로서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한편, 젊은 남녀가 연행했던 원형 그대로의 역동성을 지닌 《신안비금도뜀뛰기강강술래》는 2005년에 1차 복원된 이후, 비금중학교 학생에 의해 전수되고 있다.

서남해안에서 연행되는 강강술래 음악은 전형적인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를 나타내지만, 대부분의 선율은 ‘미(mi)-라(la)-시(si)-도(do)’의 음계에 떠는 음, 평으로 내는 음, 꺾는 음으로 구성되고 느린 곡에서는 풍부한 표현의 잔가락을 많이 구사한다. 놀이춤에서는 음악이 놀이의 속도와 흐름에 따라가면서 매우 역동적으로 연주된다.
강강술래의 장단을 살펴보면, 〈긴강강술래〉는 진양조이나 실제는 빠르기만 같고, 박자는 다소 불규칙하다. 〈중강강술래〉는 중중모리, 〈자진강강술래〉는 자진모리, 〈남생아놀아라〉ㆍ〈고사리꺾기〉ㆍ〈청어엮기〉 등 놀이춤은 대부분 자진모리로 되어 있다. 강강술래 악곡은 강강술래가 진행될수록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특성을 나타내는데, 이는 강강술래의 신명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강강술래는 풍요를 기원하는 민속문화로서 춤ㆍ노래ㆍ놀이가 어우러진 총체적인 예술이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고정된 연행 형식이 없어 춤꾼의 자율성·개성이 발휘될 수 있다. 강강술래의 대형춤은 원형·직선·곡선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삶의 맺힌 것을 풀어내는 해방의 춤이며, 모방 춤은 고된 삶의 현장을 몸짓을 희화하여 표출함으로써 답답함·억눌림·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치유의 춤이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로 단합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지금도 계속 변화와 생성이 이루어지고 있어 현장성과 민속적 가치가 높은 춤이다.
국가무형문화재(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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