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초기에는 상의와 하상의 비율이 1:1정도였다가, 1620년대는 1:2정도 되다가 말기에는 거의 1:3의 비율로 상의보다 하상이 길어지는 형태가 변화를 보인다. 하상에 잡은 주름도 조선시대 초기에는 정교했던 잔주름이 임진왜란 이후에는 맞주름인 형태를 보이다가 후기로 갈수록 아랫단까지 눌러 잡은 넓은 형태로 변화된다. 소매도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넓어지고 배래에 곡선이 생겼다. 소매의 형태는 통수형과 분리형으로, 분리형은 소매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게 매듭단추나 끈으로 연결되어있다. 분리형의 소매는 전시에나 위급할 때 철릭의 소매에 매듭이나 끈을 풀어 붕대 대신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소매의 형태뿐만 아니라 하상인 치마는 주름을 잡아 활동성이 편하게 되어있어 융복이나 편복으로 착용한다. 앞길 여밈도 조선시대 초기 겹쳐지던 것이 차츰 여밈이 적어진다. 이러한 철릭의 특징은 다른 포와는 달리 소매에 매듭단추가 있으며, 소매에는 매듭단추가 양옆에 있거나, 한쪽만 있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철릭에 나타난 형태변화는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당상관은 남색, 당하관은 청현색, 교외 거동 시에는 홍색이나 청색을 착용하였다. 그러나 사령, 나장 등 하급직 관료들은 백색, 홍색, 청색을 기타 악공이나 무당은 주로 홍색을 착용하였으며, 별감 통상복으로는 홍색을 착용하였다. 조선후기 착용했던 철릭은 신윤복의 신무도 풍속화에서 굿을 주도하는 무당이 머리에는 호수립을 쓰고 겉에 입는 홍색 철릭을 착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연행되는 굿거리에서도 굿의 유형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상산거리, 별상거리, 군웅거리에서 무당이 착용하여 주신을 상징한다. 현재 조선후기 내취가 연주했던 <대취타>가 전승되고 있으며, <대취타>를 연주할 때 복식도 내취복식을 착용한다. 그러나 색깔은 황색을 유지하지 하고, 초립을 쓰고 남전대를 두르는 것도 동일하지만, 형태는 두루마기 형태로 바뀌었다.
김은정(金垠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