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광은 종묘제례의 초헌례 절차에 등가에서 연주하는 《보태평》의 아홉 번째 곡이며, 선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626년(인조 4)에 첨입한 것이다. 악장은 김류가 지었고, 선율은 《보태평》 <역성>의 선율과 같다.
○ 선율, 악장
중광의 선율은 《보태평》 <역성>과 동일하다. <역성>의 선율 중 제1행~4행은 『세종실록』 소재 《보태평지무악》 <역성>의 제1행~2행의 선율을, 제5행~8행은 『세종실록』 《보태평지무악》 <역성>의 제5행~6행의 선율을 완전 4도 높인 것이다.
노랫말은 선조가 황정욱을 명나라로 보내 왕실 선계(先系)에 관한 『대명회전』의 기록 오류를 바로잡은 일과, 여진 오랑캐의 반란을 진압하여 북방 강역을 수호한 일을 내용으로 되어있다. ‘중광’이라는 악곡 명은 악장의 ‘준덕중광(峻德重光)에서 따온 것이다.
○ 음계, 박법, 장구점
중광은 황(黃:C4)·태(太:D4)·중(仲:F4)·임(林:G4)·남(南:A4)의 황종 평조이고, 네 글자마다 박을 한 번 친다[四字一拍]. 박 여덟이 한 곡을 이루었으나[八拍一聲] 현재는 박 넷이 한 곡을 이루는[四拍一聲] 형식으로 변화되었다. 중광은 인조대에 첨입되었으므로, 현행 《종묘제례악》이 『세조실록』 악보의 장구점을 현행 리듬에 적용한 것과 달리 『대악후보』의 장구점을 현행에 적용하였다. 『대악후보』 소재 중광은 8행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구점은 박을 기준으로 1행 단위로 하나의 패턴을 이룬다. 네 종류의 패턴으로 구성된 4행을 주기로 2회 반복한다.
국악전집 제18집 『종묘제례악』에 수록된 중광의 장구점은 『대악후보』 악보에 비해 장구점의 위치가 변화된 곳이 한 군데, 형태가 변화된 곳이 두 군데 나타난다.
○ 역사적 변천
임진왜란 후 선조악인 중광을 종묘제례악에 첨입하였다. 악장의 내용이 문무(文武)의 두 뜻을 모두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중광의 첨입 위치가 《보태평》과《정대업》을 오가며 여러 차례 변동되었다. 당초 《정대업》에 두었다가, 초헌(初獻) 악장의 자구가 아헌과 종헌의 악장보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보태평》의 〈정명〉 다음에 두기도 했다. 『악원고사』에서는 《정대업》의 〈혁정〉 뒤에 있으며, 『종묘의궤』에서는《보태평》의 〈대유〉 다음과 《정대업》의 〈혁정〉 다음에 두었다. 한편 1743년(영조 19)에 인입(引入)장과 인출(引出)장을 제외한 《보태평》 악곡 수를 아홉으로 만들기 위해 〈현미〉와 〈정명〉을 합하여 〈현미정명〉이라 하였다가 다시 분리하고, 〈용광〉과 〈정명〉을 하나로 합쳐 〈용광정명〉이라 하면서, 중광을 아홉 번째 곡으로 첨입했다. 중광의 선율은 〈역성〉의 선율을 차용한 것이다. 역성은 세조 9년(1463)에 세종 때 연향용으로 창제된 《보태평지무악》 〈역성〉의 선율 일부를 발췌하여 악조를 탁임종 평조에서 황종 평조로 완전4도 높이고, 가사를 바꾸어 종묘제례악 《보태평》의 열한 번째 곡으로 편입하고, 종묘제례 초헌례에 등가에서 연주하는 곡으로 삼은 것이다. 『악장요람』(19세기 초)에 중광의 리듬은 1자 1음 형태로 변화되어 기보되어 있으나, 음의 높낮이에는 변화가 없다. 일제강점기에 악장 중 제1구 ‘於皇宣祖’는 “顯顯我祖”로 바꾸고, 제3구 “格天昭誣”의 ‘格天’은 ‘至誠’으로, 제4구 “正我宗祊”의 ‘祊’은 ‘系’로, 제5구의 “抗義除匈”은 “止戈修文”으로, 제6구 “奠我封疆”은 “式至永賴”로 바꾸었으나, 현재는 다시 본래의 가사로 부르고 있다.
『대악후보(大樂後譜)』
『대한예전(大韓禮典)』
『속악가사(俗樂歌詞)』
『속악원보(俗樂源譜)』
『악원고사(樂院故事)』
『악장요람(樂章要覽)』
『조선악개요(朝鮮樂槪要)』
『종묘악장(宗廟樂章)』
『종묘의궤(宗廟儀軌)』
『춘관통고(春官通考)』
이숙희(李淑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