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태평》은 〈희문(熙文)〉〈기명(基命)〉〈귀인(歸仁)〉〈형가(亨嘉)〉〈집녕(輯寧)〉〈융화(隆化)〉〈현미(顯美)〉〈용광정명(龍光貞明)〉〈중광(重光)〉〈대유(大猷)〉〈역성(繹成)〉의 열한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태평》의 악장은 조상들의 덕으로 민심을 복속시키고 밝은 문화를 고루 펴서 사방을 평화롭게 다스렸다는 내용이다. 종묘제례의 초헌 절차에 연주하며, 이중 <희문>은 영신과 전폐 절차에도 연주한다.
〈세종조와 세조조의 《보태평》의 관계〉
세종조 |
세조조 |
|
1 |
희문(熙文) |
희문(熙文) |
2 |
계우(啓宇) |
기명(基命) |
3 |
의인(依仁) |
귀인(歸仁) |
4 |
형광(亨光) |
형가(亨嘉) |
5 |
보예(保乂) |
집녕(輯寧) |
6 |
융화(隆化) |
융화(隆化) |
7 |
승강(承康) |
현미(顯美) |
8 |
창휘(昌徽) |
용광(龍光) |
9 |
정명(貞明) |
정명(貞明) |
10 |
대동(大同) |
대유(大猷) |
11 |
역성(繹成) |
역성(繹成) |
○ 악곡의 구성과 용도
《보태평》은 〈희문(熙文)〉〈기명(基命)〉〈귀인(歸仁)〉〈형가(亨嘉)〉〈집녕(輯寧)〉〈융화(隆化)〉〈현미(顯美)〉〈용광정명(龍光貞明)〉〈중광(重光)〉〈대유(大猷)〉〈역성(繹成)〉의 열한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태평》은 종묘제례의 영신과 전폐 그리고 초헌 절차에 연주하는데, 영신례와 전폐례에는 《보태평》 중〈희문〉만을 연주하고, 초헌 절차에는 《보태평》 전곡을 연주한다. 《보태평》의 첫 번째 곡〈희문〉은 헌관(獻官)을 인도하여 들어갈 때 연주하는 인입(引入) 곡이고, 마지막 곡〈역성〉은 헌관을 인도하여 나올 때 연주하는 인출(引出) 곡이다.
○ 악대
영신례의〈영신희문〉을 연주할 때는 헌가(軒架)에서 연주하고, 전폐례의〈전폐희문〉과 초헌례의 《보태평》은 등가(登歌)에서 연주한다.
○ 음계와 종지음
세종조의 《보태평》은 탁임종(㑣:G3) 평조(平調)였으나, 세조 때에는 완전4도 위인 황종(黃:C4) 평조로 바뀌었고, 현재도 변함이 없다. 《보태평》의 종지음은 모두 하5(下五)에 해당하는 황종(黃:C4)이다.
○ 노랫말[樂章]
《보태평》은 조상들의 덕으로 민심을 복속시키고 밝은 문화를 고루 펴서 사방을 평화롭게 다스렸다는 내용이다. 《보태평》의 악장 형식으로는 다섯 글자가 한 구를 이루는 것[五言一句]과, 네 글자가 한 구를 이루는 것[四言一句]이 있다.
○ 역사적 변천
《보태평지무악》은 《정대업지무악》과 함께 1447년(세종 29) 이전 연향에 사용할 목적으로 창제된 신악(新樂)의 하나였다. 세종 대의 《보태평지무악》은 〈희문(熙文)〉〈계우(啓宇)〉〈의인(依仁)〉〈형광(亨光)〉〈보예(保乂)〉〈융화(隆化)〉〈승강(承康)〉〈창휘(昌徽)〉〈정명(貞明)〉〈대동(大同)〉〈역성(繹成)〉의 11곡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463년(세조 9)에 《보태평》을〈희문(熙文)〉〈기명(基命)〉〈귀인(歸仁)〉<형가(亨嘉)>〈집녕(輯寧)〉〈융화(隆化)〉〈현미(顯美)〉〈용광(龍光)〉〈정명(貞明)〉 〈대유(大猷)〉〈역성(繹成)〉의 열한 곡으로 개작하여 종묘제례악의 하나로 채택하고, 그것을 향악정재 <보태평지무>의 반주음악으로도 사용했다. 1626년(인조 4) 〈용광〉과 〈정명〉을 하나로 합쳐 〈용광정명〉으로 하고, 〈중광(重光)〉을 추가한 이후 그 음악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보태평》은 《보태화지곡(保太和之樂)》으로,〈용광정명〉은〈열광정명(烈光貞明)〉으로 개칭했으나, 현재는 다시 《보태평》, 〈용광정명〉으로 복원했다.
종묘제례악 《보태평》 11곡은 세종조 연향악 《보태평지무악》을 개착한 것이고, 세종조 《보태평지무악》은 고려 시대 향악과 고취악을 습용하여 만든 것이다. 종묘제례악 그 자체의 역사성과 예술성도 가치 있지만, 《보태평》을 통해 고려 시대 음악 일부가 전승되어 온 점에서도 그 역사적 가치가 있다.
이숙희(李淑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