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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7월에는 기로소로 본격적으로 이사를 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청원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조양구락부의 설립을 위해 황실에서 내탕금 2,400원과 매달 200원의 지원금을 하사하였다.
○ 위치ㆍ규모
한성 서부 자하동에 위치하였다. 1910년 7월에는 궁내부에 기로소로의 이전을 청원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조양구락부의 설립을 위해 황실에서 내탕금 2,400원과 매달 200원의 지원금을 하사받았다.
○ 운영 방식과 활동 내용
1909년 12월 말에 조직되어 1911년 6월까지 근 1년 6개월 동안 활동한 조양구락부는 본격적인 교육기관이라기보다는 전습소 설립을 위한 준비 기관 성격이 강했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가야금 단소 남창 등 각종 가곡의 선수를 임원으로 선정하고 신선한 서양악까지 섞어서 신구를 참작 교수하기로 의정하였다.” 전한다. 이는 당시 준비 단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모집 기사가 광고에 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교수와 관련된 기사도 없다.
김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