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재의 유래는 부처가 인도 영취산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한 '영산회상(靈山會相)'을 현재의 공간에 재현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영가에게 장엄한 법식을 베풀어 극락왕생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부산영산재의 유래는 조선 중ㆍ후기 무렵에 통도사와 범어사를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불교의식 도량에 괘불(掛佛)을 설치하여 야외에서 거행하는 규모가 큰 의식이라는 의미에서 '부산 영산대재(靈山大齋)' 또는 '부산 영산작법'이라고도 한다.
○ 개최 목적 및 시기
영취산의 법화경 설법 장면을 재현하여 망자에게 불법(佛法)을 들려주고, 명부시왕에게 공양을 올려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는 서울 영산재의 목적과 동일하다. 전통적으로 망자의 49재에 맞추어 행해졌으나, 현재는 5월 연등회나 10월 팔관회 등에 주로 거행된다. 이는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정례적으로 설행되는 서울 봉원사 영산재와 차이를 보인다.
○ 의식 절차
부산영산재의 의식 절차는 시련, 대령, 관욕, 신중작법, 괘불이운(삼신이운), 영산작법, 중단권공, 신중퇴공, 시식, 봉송, 소대의식, 회향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서울 영산재의 12가지 주요 절차(시련, 대령, 관욕, 조전, 신중작법, 괘불이운, 영산작법, 식당작법, 운수상단, 중위단, 관음시식, 봉송)와 대부분 일치하며, 의식의 규모와 구성이 매우 크고 장엄함을 보여준다. 다만, 서울 영산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식당작법(食堂作法)' 등 일부 절차는 부산영산재에서는 간소화되거나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 구성 및 특징
부산영산재는 서울 영산재와 마찬가지로 범패(성악)와 작법무(무용)가 의식의 핵심을 이룬다. 작법무는 불법을 찬탄하고 도량을 정화하는 '나비무(나비춤)'와 '바라무(바라춤)'를 춘다. 서울 영산재는 기경작법, 관욕바라, 삼귀의작법 등 다양하고 분화된 작법무가 특징인 반면, 부산영산재는 나비무와 바라무 두 종류가 중심이 되어 보다 고제(古制)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천수바라무, 오공양작법무가 대표적이다. 범패는 의식의 절차에 따라 '할향게', '합장게', '거불' 등 다양한 홑소리(독창)와 제창(합창)이 사용된다. 긴 악곡(연향게, 거불, 오공양 등)을 연행할 때, 부산영산재에서는 '유원성 소리'라고 불리는 독특한 삽입구가 나타난다. 이는 서울(경제) 영산재의 긴 소리 중간에 나타나는 '허덜품'에 비견되는 영제 범패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음악적으로는 '미, 솔, 라, 도, 레' 5음계를 기반으로 하며 메나리토리에 가깝다. 주산영산재의 악기 구성은 '광쇠(鐄)'가 전체 음악을 주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 영산재 (경제)에서는 '광쇠'를 사용하지 않으며, '태징(太澄)'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이 외에 북, 바라, 요령, 목탁, 태평소 등은 공통으로 사용된다.
○ 역사적 변천
부산영산재는 조선 중ㆍ후기부터 양산 통도사와 부산 범어사의 범패승들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불교의식으로, '통범소리'라고도 한다. 1700년(숙종 26)의 『범어사 어산집』, 1767년(영조 43)의 통도사 괘불 등은 이 지역의 오랜 영산재 전승 역사를 증명한다. 해방 전후 '동래어산계', '동부산어산계' 등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1972년 동부산어산계의 대표 어장이었던 용운(龍雲 김광우) 스님이 부산시 무형문화재 '범음범패'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는 서울의 '영산재'(1973년 지정) 보다 앞선, 한국 최초의 불교의식 무형문화재 지정이었다. 1973년 용운 스님이 입적한 관계로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으나, 그의 소리 맥을 이은 구암(문영호), 혜륭(조병태) 등의 제자들이 '부산영산재보존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이 전승한 영산재가 1993년 '부산영산재'라는 이름으로 부산시 무형문화재로 다시 지정되어 현재 관음사에서 전승되고 있다.
서정매(徐貞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