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창작된 향악정재로 선인(仙人)이 군왕의 수명장수와 태평성세를 기원하며 신선의 복숭아를 바치는 춤.
만수무는 신선의 수명장수와 태평성세를 기원하는 복숭아를 바치는 춤으로, 춤의 절차는 〈헌선도〉와 유사하다. 봉족자와 선모의 노래는 한문으로 된 창사이며, 협무(挾舞)가 함께 노래하는 창사에는 한글과 한문이 섞여 있다.
만수무는 신선 세계의 선인이 군왕께 삼천 년의 수명장수를 축원하고자 궁궐에 내려와서 임금을 뵙고, 그 덕을 찬양하며 신선의 복숭아를 선물하는 내용의 춤이다. 1828년 6월 1일 연경당(延慶堂) 진작(進爵)을 위해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군왕인 아버지 순조(純祖)께 올리는 궁중무로 창제하였다. 순조 『무자진작의궤』의 만수무의 정재악장에 “『도서집성(圖書集成)』에 명(明)나라 영락(永樂)의 유식악장(侑食樂章)의 첫 번째로 「상만수지곡(上萬壽之曲)」을 연주한다고 하였다.”라 했으니, 명나라 영락제의 의식(儀式)에서 「상만수지곡」을 연주했던 것이 만수무의 유래라고 하겠다. 군왕의 정치가 순임금과 요임금 시대처럼 태평성대를 이루어 그 덕을 찬양하는 신선들이 지상의 궁전으로 내려와서 군왕의 수명장수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개요 만수무는 선인이 군왕에게 삼천년 만에 한 번 열린다는 귀한 신선의 복숭아를 선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선도반(仙桃盤)을 받들어서 탁자에 올려 임금께 받치는 주인공 무용수인 선모(仙母) 또는 중무(中舞)가 있다. 여자 무용수일 경우 선모라 하고, 어린 남자 무용수일 경우 중무라고 한다. 선도반을 올려놓는 봉탁을 옮기는 봉무동 2명, 봉족자 1명, 선도반을 받들어 올리는 1명, 협무 4명까지 9명으로 구성되었다. 봉족자는 만수무의 목적과 의미가 기록된 족자(簇子: 깃발의 종류)를 받들고 나오며, 제일 선두에 무대에 입장하여 족자에 기록된 한문 창사를 노래하는 역할이다. 봉무동은 선도반을 올려놓는 탁자를 무대에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 절차와 구성 만수무의 춤 구성은 고려시대부터 전승된 〈헌선도(獻仙桃)〉와 유사하다. 다만 〈헌선도〉의 협무 무용수는 2명이고, 죽간자(竹竿子)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춤이 시작하기 전에 탁자를 든 무용수 2명이 나와 탁자를 배설한 뒤 나가면, 선두에 봉족자가 무대에 입장하여 족자에 기록된 한문 창사를 노래하고, 선도반을 받든 무용수 1명이 선도반을 선모에게 전달한다. 선모(또는 중무)가 선도탁에 선도반을 받들고 창사한 뒤 봉탁 위에 선도반을 올려놓는다. 이후 선모가 4명의 협무의 중앙에 위치하여 함께 창사하고, 서로 마주보고 춤추고[상대이무(相對而舞)], 등을 지고 춤추고[상배이무(相背而舞)], 소매 자락을 뿌리며 제자리를 돌고[불수환전(拂袖歡轉)], 일렬로 가지런하게 서서 춤춘다[제행이무(齊行而舞)]. 또 좌우 협무들이 자신의 자리를 각기 바꾸어서[좌우협(左右挾) 각환기대이무(各換其隊而舞)]를 춤추기도 한다. 특히 협무의 수무삽보(手舞霎步)하며 진퇴하는 춤[진퇴이무(進退而舞)]은 만수무의 특징적인 춤사위라 할 수 있다. 춤을 마치는 퇴장 과정에서는 무용수들이 서남, 서북, 동북, 동남의 사우방(四隅方) 대열로 돌아가서 북쪽을 향한 상태로 족자와 함께 뒷걸음으로 물러난다. ○ 창사 만수무의 창사는 첫번째로 족자의 창사가 있고, 두 번째는 선모(또는 중무)가 복숭아 선반을 바칠 때 부르는 무반주 창사이다. 이들 두 창사는 효명세자가 한문으로 지은 예제 악장이다. 세 번째는 선모와 협무의 창사로, 한자와 한글이 함께 섞인 창사를 〈가곡 편(歌曲 編)〉 반주에 맞춰 노래한다. 이 창사에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불휘장〉과 〈손자장〉의 국한문 악장이 섞여 있다. 이왕직아악부 때는 족자를 생략하여 창사가 없고, 중무와 네 명의 협무가 선도반을 바치는 부분도 생략한 채 중무가 “요계반도결(瑤階蟠桃結) … 서일홍(瑞日紅)”의 한문창사를 노래하고, 중무와 좌우 협무 네 명이 함께 “어져 만재(滿載)이여 ··· 보록(寶籙)이 무강(無疆)이샷다”를 노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국립국악원에서는 『정재무도홀기』를 기초로 창사의 첫 소절만 노래하고 있다. [족자 창사] [족자 창사 변역] 禁苑和風拂翠箔, 금원화풍불취박, 대궐 동산 따사한 바람 비취 주렴 흔드는데 袞衣深拱繡龍文. 곤의심공수용문. 곤룡포 입으신 분 팔짱을 낀 채 점잖게 앉으셨네. 天門彩仗暎祥旭, 천문채장영상욱, 궐문 앞 색색 의장(儀仗)에 아침 햇살 빛나고 萊闕仙朝開霱雲. 내궐선조개휼운. 봉래산 신선들 조회 오려 상서로운 구름 열었다오. 金殿堯樽傾北斗, 금전요준경북두, 황금 궁전에서는 요준(堯樽)[요임금의 술동이로, 곧 성군이 하사한 술]에서 북두칠성으로 술을 푸고 玉瘻舜樂動南薰. 옥루순악동남훈. 옥(玉) 누각에서는 순(舜)임금 남훈가(南薰歌) [순임금이 백성을 위해 지은 노래]를 연주하네. 海東今日昇平世, 해동금일승평세, 오늘 해동은 태평성대니 萬歲千秋奉聖君. 만세천추봉성군. 천년만년 성군(聖君)을 받들리라. [선모 창사] [선모 창사 번역] 瑤階蟠桃結, 요계반도결, 옥(玉) 섬돌 가에 선도(仙桃)가 열리니 三千春色滿玉盤中. 삼천춘색만옥반중. 삼천 년 봄빛이 옥쟁반에 가득하네. 三千春爲君王壽, 삼천춘위군왕수, 우리 임금 삼천년 봄을 누리시리니, 瑞日紅. 서일홍. 상서로운 해 붉게 빛나는 도다. [원무 창사] [원무 창사 번역] 어져, 萬載(만재)이여! 아, 만년이여! 萬載(만재)에 樂萬載(낙만재)로다. 만년에 또 만년을 더 즐기리로다. 萬載(만재)에 億萬載(억만재)니, 만년에 억만년을 더하니 億萬載(억만재)에 又億億萬載(우억억만재)로다. 억만년에 또 억억만년을 더하리로다. 져 희 깁흔 나무는 柯枝가 만코 저 뿌리 깊은 나무는 가지가 많고 根源(근원) 먼 물은 흐르미 길도다. 근원이 먼 물은 흐름이 길도다. 文王(문왕)에 孫子(손자)ㅣ 本支百世(본지백세)니, 문왕(文王)의 자손, 본손(本孫)과 지손(支孫)이 백세를 이었으니 聖祖璿源(성조선원)이 綿綿永昌(면면영창)이샷다. 성조(聖祖)의 계보도 이어지고 이어져 영원히 창성하리라. 오홉다, 우리 后(후)여! 오호라, 우리 임금님이여! 寶籙(보록)이 無疆(무강)이샷다. 왕실의 미래가 끝이 없으리로다.
- 원문출처: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1』번역: 강명관
○ 반주 음악 순조『(무자)진작의궤』에 만수무의 반주곡은 〈원무곡(原舞曲)〉이라고 하였다. 이후 고종 시기 『정재무도홀기』에 의하면, 만수무 도입 과정의 음악은 〈보허자령〉이고, 음악이 그친 상태에서 봉족자의 창사와 선모의 창사가 연행된다. 다음에 선모가 선도반을 탁자에 올린 후 협무들이 앞으로 나오면 〈향당교주〉가 그친다. 다음 원무가 창사를 할 때는 세취(細吹) 악대가 〈가곡 편〉을 연주한다. 다시 〈향당교주〉가 연주되면 춤을 마친다. 현재 국립국악원에서는 〈보허자〉·〈향당교주〉·〈세령산〉·〈도드리〉·〈자즌도드리〉·〈타령〉·〈자즌타령〉·〈타령〉의 순서로 연주한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만수무에서 무동의 복식은 주취금관(珠翠金冠)을 머리에 쓰고, 화금포(花錦袍: 노란색 포), 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 백색바탕에 검정 선이 둘러 있는 포)를 입고, 남질흑선상(藍質黑縇裳: 남색바탕에 검정선이 둘러 있는 치마)을 허리에 두르고, 자사대(紫紗帶)를 허리에 띠고, 백우호령(白羽護領: 거위털)을 목에 두르고, 백우엄요(白羽掩腰)를 허리에 두르고 보대(寶帶)를 허리에 띠고, 무우리(無憂履)를 신었다.
<만수무>의 여자 무용수 의상은 남색치마에 홍색 허리치마를 두르고 황초단삼을 입고 홍색에 금색수를 놓은 가슴 띠를 매고 오색한삼을 착용하였으며, 머리에는 화관을 썼다.
의물은 족자(簇子)를 사용한다. 만수무강과 부국(富國)이 대대로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내용을 기록하였다. 무구(舞具)는 복숭아가 담겨 있는 선도반(仙桃盤)과 선도반을 올려두는 선도탁(仙桃卓)이 핵심 도구이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만수무는 1892년(임진) 진찬과 1901년(신축) 진연, 1902년(임인) 4월과 11월 진연에서 연행되었다. 근대 이후로는 1930년 7월 '영친왕(英親王) 환국환영행사'에서 이왕직아악부 아악생들에 의해 공연되었다. 현재는 국립국악원을 통해 전승되고 있다.
만수무는 향악정재로 창제되었으나, 당악정재에서 사용하는 족자를 사용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 창제된 대부분의 정재 창사가 한문으로 지어졌는데 만수무는 국한문을 혼용으로 지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국립국악원,『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집: 시용무보, 정재무도홀기』, 국립국악원, 1980. 김천흥,『정재무도홀기 창사보』, 민속원, 2002. 이의강ㆍ김은자ㆍ이재옥,『국역 순조무자진작의궤』, 보고사, 2006. 인남순ㆍ김종수, 『고종황제 50세 경축연향 여령정재홀기』, 민속원, 2001.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사료강독회,『고종신축진연의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2001. 한국학중앙연구원,『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권2』, 민속원, 2005.
김혜영(金惠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