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호령을 착용하고 추는 정재 <망선문> <경풍도> <만수무> <헌천화> <춘대옥촉>은 1828년(순조 28) 효명세자가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의 40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것이며, 창덕궁 연경당(演慶堂)에서 행해진 진작(進爵)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그 유래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정재의 내용에서 드러나는 도교적 연관성에 기인하여 신선을 상징하는 장식물로 창작되었다는 견해와 백우호령, 백우엄요의 형태와 착용법이 농부들의 우장(雨裝)과 비슷하다는 점을 연관 지어 권농과 풍년을 상징하는 장식물로 창작되었다는 견해 등이 있다.
○ 용도
백우호령은 조선후기에 무동이 정재를 출 때 목에 착용하는 장식품이다. 백우호령을 착용하고 추는 <망선문>은 선인(仙人)을 기다리는 내용, <경풍도>는 경풍도를 바치며 풍년을 기원하는 내용, <만수무>는 선도(仙桃)를 바치며 축원하는 내용, <헌천화>는 천화(天花)를 바치며 축원하는 내용, <춘대옥촉>, 이 다섯 가지 정재는 선인들이 태평성대를 즐기고 떠나가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모두 도교적 세계관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 깃털 옷은 고대부터 신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기 때문에, 정재에 내포되어 있는 도교적 세계관을 나타내기 위해 백우호령을 흰 깃털로 만들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 형태
백우호령은 목에 장식하는 것이지만, 그 형태와 착장법은 일종의 우장(雨裝)인 도롱이와 유사하다. 도롱이는 예로부터 농부들이 비가 오는 날 농사일을 할 때 사용한 것으로 녹사의(綠蓑衣)라고도 한다. 실록에 의하면 영조는 농사를 장려하기 위한 의미로 도롱이와 삿갓을 착용하고 밭을 가는 모습을 그리게 하여 궁궐 안에 걸어 놓고 항상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권농과 풍년을 상징하기 위해 도롱이와 형태적으로 비슷하게 깃털로 만들었다는 견해도 있다.
◌ 재료 및 제작 방법
백우호령의 재료와 제작방법에 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나 도식을 통해 끈에 2단에서 3단으로 깃털을 이어 붙이고 양 끝에 매듭단추와 고리가 달려 있어 금가자처럼 목에 두르고 고리를 걸어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일기(광해 8년 8월 20일 무오 6번째기사)에 침향산(沈香山)의 청학(靑鶴)과 백학(白鶴)에 쓰일 백우(白羽)와 흑우(黑羽)를 구하는데 백아우(白鵝羽)는 시중에서 구했지만 오우(烏羽)는 시중에서 사들일 수 있는 물품이 아니어서 전례대로 훈련도감의 포수에게 잡아다가 사용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백아우는 흰 거위 깃털로 국장(國葬)에 사용되던 깃털로 만든 일산(日傘)인 우보(羽葆) 등 의식용 도구, 의복, 장식품에 두루 사용 되던 재료이다.
박민재(朴民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