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창작된 향악정재로, 궁중 연향에서 여섯 명의 무용수가 쌍쌍으로 노니는 봄 나비를 형상하며 추는 춤
○ 개요
박접무는 여섯 명으로 구성되어 여러 마리의 나비가 그려지거나 수놓아진 녹색포를 입고, 두 명 또는 네 명이 짝을 지어 날갯짓하며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동작을 연행한다. 채색 나비가 쌍쌍이 봄볕을 즐기며 노니는 모습이 마치 주렴(珠簾) 밖 미인(美人)들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내용을 창사로 노래한다. 그리고 나비들이 쌍을 이루어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듯한 모습을 춤으로 표현하였다.
○ 절차와 구성
박접무는 무용수가 북쪽에 2인, 남쪽에 2인, 동쪽에 1인, 서쪽에 1인이 십(十)자 대형으로 나뉘어 선 자세로 춤을 시작한다. 무용수는 함께 대를 유지하면서 앞으로 나와 창사를 한다. 절차에 맞춰 한 원이 되어 돌면서 춤추고[회선이무(回旋而舞)], 남쪽과 북쪽의 무용수, 동쪽과 서쪽의 무용수가 대(隊)를 나누어 좌우 대칭의 형식으로 등을 보이고 춤을 추고[상배이무(相背而舞)], 마주 보고 춤을 추며[상대이무(相對而舞)], 처음 대형으로 돌아가고[환복초열이무(還復初列而舞)], 남· 북, 동ㆍ서의 무용수가 서로 대열을 바꾸고[환기대이무(換其隊而舞)],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오는 구성이다.
○ 창사
효명세자가 1828년 6월 1일 연경당 진작을 위해 예제한 노래이다.
[창사] [창사 번역]
彩蝶雙雙探春光, 채접쌍쌍탐춘광, 고운 나비 쌍쌍이 봄빛을 찾아 날자
花拂金翅撲. 화불금시박. 꽃이 흔든 금빛 날개 팔락이게 하는데,
隔珠簾美人, 격주렴미인, 주렴 너머 미인은
一般花灼爍. 일반화작삭. 꽃인 양 밝게 빛나는구나.
- 원문출처: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1』번역: 강명관
현재 국립국악원 무용단에서는 박접무 창사로 “채접쌍쌍탐춘광” 만 노래하고 있다.
○ 춤사위
박접무는 쌍쌍히 노니는 나비를 묘사한 춤으로 대칭과 자리바꿈, 회무, 향내(向內)ㆍ향외(向外) 등 다양한 춤 구성으로 봄날의 나비가 쌍쌍이 노니는 모습을 형상하도록 다양한 구도로 안무 되었다. 춤동작으로 불수(拂袖: 소매를 뿌리다), 번수(飜袖: 소매를 날리다), 대수(擡袖: 소매를 들어 올리다), 염수(斂手: 손을 여미다), 환전(歡轉: 기쁜 듯 돌다), 족도(足蹈: 걷다)가 있다.
○ 반주 음악
박접무의 반주음악은 〈향당교주〉이다. 현재 국립국악원에서는〈향당교주〉·〈도드리〉·〈자진도드리〉·〈타령〉·〈자진타령〉·〈타령〉의 순서로 음악이 연주되고 있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박접무 무동 복식은, 아광모(砑光帽)를 머리에 쓰고, 녹라화접포(綠羅花蝶袍: 녹색비단에 나비가 세겨진 포), 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 백색에 흑색선이 둘러진 단의), 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 홍색에 남색선이 둘러진 치마), 주전대(珠鈿帶: 장식이 달린 허리띠)를 착용하고 무우리(無憂履)를 신는다.

현재 국립국악원에서 박접무를 출 때, 여령은 남색치마를 입고 그 위에 홍초상을 허리에 두르고, 녹색비단에 나비가 수놓아진 녹라화접포를 입고, 홍색으로 된 가슴띠를 매고, 머리에 화관이 있는 큰머리를 쓰며, 오색한삼을 착용한다. 무동은 흰색 한삼을 사용하고 있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1828년 초연된 후 한동안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고종 연간의 『정재무도홀기』에 세 편의 박접무 무보가 전하고 있어서, 박접무가 고종 대에 전승되었음이 확인된다. 국립국악원 소장 『정재무도홀기』(1893)에는 여자 무용수 6인이 춤춘다고 되어 있다. 장서각 소장 『정재무도홀기』 중 약칭 「갑오외진연홀기(甲午外進宴笏記)」와 연대 미상의 「무동홀기(舞童笏記)」 두 편에는 무동의 박접무가 수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간에서 권번을 통해 전승되었고, 1981년 11월 9일 심무회가 주최한 ‘심소 김천흥 무용생활 60년 기념 궁중무용발표회’에서 김천흥(金天興, 1909~2007)의 복원으로 재현되었다. 이후 1982년 국립국악원 정기공연에서 공연되면서, 무동과 여령이 추는 춤으로 전승되고 있다.
김혜영(金惠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