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광모는 무자년 연경당(演慶堂) 진작(1828년)에서 무동의 관모로 처음 등장했다. 『(무자)진작의궤』에 의하면 아광모와 아견모는 그 명칭이 중국고사에서 유래한 관모로 효명세자가 이 고사들을 인용하여 무산향을 창작하였고 악곡명과 무동이 착용하는 관모에 그 명칭을 붙였다.
○ 쓰임 및 용도
조선후기에 무동이 무산향ㆍ보상무ㆍ향령무ㆍ영지무ㆍ박접무ㆍ심향춘ㆍ춘광호ㆍ춘앵전ㆍ첩승무ㆍ무고ㆍ향발무ㆍ아박무ㆍ포구락ㆍ장생보연지무ㆍ사선무ㆍ최화무ㆍ가인전목단 등의 정재를 출 때 착용했다.
○ 구조 및 형태
일반적인 사모는 뒤가 높고 앞이 낮은 두 단의 모정부(帽頂部)로 구성되고, 뒷면에는 각(角)을 달았는데 아광모는 이러한 일반적인 사모에 비해 뒤쪽의 모정부가 좀 더 높으며 전면에 비단으로 만든 선이 대어져 있다.
○ 역사적 변천
『(무자)진작의궤』의 기록에 의하면 아광모는 중국 고사를 참고하여 만든 것이다. 하나는 당(唐) 나라의 무산향 관련 고사이다. 당나라의 여남왕(汝南王) 진(璡)은 항상 아견모를 쓰고 곡을 연주 하였는데 명황(明皇, 당 현종)이 붉은 꽃 한 가지를 꺾어 모자 위에 놓아두려고 했다. 모자와 꽃가지가 둘 다 너무 미끄러워서 한참 뒤에야 올려놓을 수 있었는데 <무산향> 한 곡조를 다 연주했는데도 꽃이 떨어지지 않아 임금이 매우 기뻐하여 웃으며 금 그릇 한 벌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이 일을 자랑하여 말하기를, “진짜로 화노(진의 아명)는 자질이 찬란하고 피부와 머리털이 광채가 있고 세밀하니 인간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신선이 인간 세상으로 귀양 와 떨어진 것이 틀림없다.”라고 하였다는 고사이다.
또 하나의 고사는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 남아 있는 아광모에 관한 것이다. 서주(徐州) 통판(通判) 이도(李陶)에게는 열일곱 여덟 살쯤 되는 아들이 있었는데 갑자기 “흘러가는 물은 끝까지 바라보기 어렵고, 저무는 해는 창자를 끊기 쉽구나. 누가 함께 아광모를 쓰고, 무산향 한 곡을 연주할까나. [流水難窮目, 斜陽易斷腸. 誰同砑光帽, 一曲 舞山香.]”라는 시를 읊었다. 아버지가 깜짝 놀라 물어보니, 마치 무엇에 홀린 듯이, “이 시는 「사중사(謝中舍)」입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아광모의 일을 묻자, “서왕모가 신선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춤추는 이가 아광모를 쓰고 모자 위에 꽃을 꽂았는데, 〈무산향〉한 곡이 다 끝나기도 전에 꽃이 모두 떨어졌습니다.”라고 하였다는 고사이다.
이 두 고사에서 아광모와 아견모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둘다 매우 고운 비단으로 만들어 꽃을 올려놓기 힘들 정도로 매끄러운 모자라는 뜻이다. 효명세자는 이 두 고사를 참조하여 마치 신선세계에서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창사와 정재로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박민재(朴民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