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개요
내취는 시대와 기준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출신에 따라 서울 출신은 황내취(黃內吹), 지방 출신은 흑내취(黑內吹)라 한 예가 있다. 이들의 명칭은 소속에 따라 원래의 부서인 선전관청에만 소속된 경우는 원내취(元內吹), 선전관청과 오군영(五營門)에 이중으로 소속된 이들은 겸내취(兼內吹)라고도 불리었다. 이 중, 겸내취는 이들이 담당한 음악적 성격에 따라 '취타내취(吹打內吹)'와 '세악내취(細樂內吹)'로 나뉘었다.




〇 구성과 특징
내취는 그 구분에 따라 연주하는 악기와 악곡이 달랐다. 취타내취는 나각, 나발, 호적(태평소), 징(정, 나), 자바라, 용고 등을 편성하여 주로 〈대취타〉를 연주했다. 세악내취는 피리 2, 대금 1, 해금 1, 장구 1, 북 1의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취타〉,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 〈군악〉을 연주했다.
〇 복식
내취의 복식은 호수(虎鬚) 혹은 작우(雀羽)를 꽂은 초립(草笠)을 쓰고 황철릭(黃帖裏)에 남전대(藍纏帶)를 띠었다.
〇 역사적 변천
내취제도의 운영은 대한제국기에 이르러 급격히 변동하였다. 1895년(고종 32) 선전관청이 철폐된 후, 내취는 시종원(侍從院)에 이속되었고, 1900년 우시어청(右侍御廳)이 설치되자 다시 그리로 이속되었다. 1907년에 우시어청이 폐지되고 내취 군악대도 해산되었으나, 1908년 남은 인원들은 궁내부 장악부(掌樂部)로 이속되었다. 한편, 1895년 군악대가 설치된 후 시위대 소속 취타내취는 '구군악대(舊軍樂隊)'로도 불렸다. 이러한 제도적 변천은 음악적 구성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궁내부 장악부로 소속이 이관된 후, 1913년(아악대) 기록부터는 세악내취(구성원)가 보이지 않고, 1915년부터는 취타내취(구성원)에 대한 기록도 나타나지 않게 된다.
이숙희(李淑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