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취라치(內吹螺赤), 조라치(詔羅赤)
조선 후기 왕을 가까이에서 호위하던 선전관청(宣傳官廳) 소속의 군영 악대.
내취는 조선 후기에 왕의 호위를 맡은 선전관청에 소속되어 평시에는 궁궐을 지키고 왕의 행차나 의례 시 음악을 연주하였다. 이는 조선 전기의 내취라치와 취각 제도를 계승한 것이다. 내취는 소속과 음악적 성격에 따라 세분되어 있었고, <대취타>를 비롯한 삼현육각 편성의 음악을 연주했다. 1895년 선전관청이 폐지된 후 장악부로 이속되어 궁중음악 전승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내취라는 명칭은 1682년(숙종 8)에 처음 보인다. 그러나 이는 조선전기 내취라치와 취각을 전승한 것으로, 악대의 제도는 17세기 후반 이전에 성립했다고 할 수 있다.
〇 개요
내취는 시대와 기준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출신에 따라 서울 출신은 황내취(黃內吹), 지방 출신은 흑내취(黑內吹)라 한 예가 있다. 이들의 명칭은 소속에 따라 원래의 부서인 선전관청에만 소속된 경우는 원내취(元內吹), 선전관청과 오군영(五營門)에 이중으로 소속된 이들은 겸내취(兼內吹)라고도 불리었다. 이 중, 겸내취는 이들이 담당한 음악적 성격에 따라 '취타내취(吹打內吹)'와 '세악내취(細樂內吹)'로 나뉘었다.
〇 구성과 특징 내취는 그 구분에 따라 연주하는 악기와 악곡이 달랐다. 취타내취는 나각, 나발, 호적(태평소), 징(정, 나), 자바라, 용고 등을 편성하여 주로 〈대취타〉를 연주했다. 세악내취는 피리 2, 대금 1, 해금 1, 장구 1, 북 1의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취타〉,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 〈군악〉을 연주했다.
〇 복식 내취의 복식은 호수(虎鬚) 혹은 작우(雀羽)를 꽂은 초립(草笠)을 쓰고 황철릭(黃帖裏)에 남전대(藍纏帶)를 띠었다.
〇 역사적 변천 내취제도의 운영은 대한제국기에 이르러 급격히 변동하였다. 1895년(고종 32) 선전관청이 철폐된 후, 내취는 시종원(侍從院)에 이속되었고, 1900년 우시어청(右侍御廳)이 설치되자 다시 그리로 이속되었다. 1907년에 우시어청이 폐지되고 내취 군악대도 해산되었으나, 1908년 남은 인원들은 궁내부 장악부(掌樂部)로 이속되었다. 한편, 1895년 군악대가 설치된 후 시위대 소속 취타내취는 '구군악대(舊軍樂隊)'로도 불렸다. 이러한 제도적 변천은 음악적 구성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궁내부 장악부로 소속이 이관된 후, 1913년(아악대) 기록부터는 세악내취(구성원)가 보이지 않고, 1915년부터는 취타내취(구성원)에 대한 기록도 나타나지 않게 된다.
내취는 조선 후기 군영 악대의 핵심으로, 이들의 존재는 궁중 음악 전승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취타내취'는 <대취타>의 명맥을 장악부로 이어 현재까지 전승될 수 있도록 한 주체이며, '세악내취'는 <취타>, <길군악> 등 중요한 삼현육각(세악) 레퍼토리를 전승했다는 점에서 음악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內吹定例』 『六典條例』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 -취고수ㆍ세악수ㆍ내취-』, 태학사, 2007. 이숙희, 「조선조 행악연주복식과 대취타 연주복식의 관계」, 『대취타 복식 고증 토론회 결과』, 국립국악원, 2024.
이숙희(李淑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