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유입된 악기로서, 구운라, 운오라고도 한다. 『이왕가악기』에서는 운라가 고려 공민왕 때 원나라로부터 들어와서 조선 순조 때까지 궁중 연례에서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 전기 기록에는 운라가 보이지 않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평안감사향연도》의 <월야선유도>, 순조 무자년(1828) 『진작의궤』와 기축년(1829) 『진찬의궤』, 19세기 통신사행렬도 등에 운라가 등장한다. 이로 보아, 운라는 조선 후기에 청나라로부터 유입되어 행악에 쓰였으리라 추정된다.

○ 음역
운라의 음역은 배중려(㑖,A♭3)부터 남려(南,C5)까지로 한 옥타브 반을 조금 넘는다. 동라의 배열 방향은 단별로 다르다. 하단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중단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상단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음이 높아지며 최상단의 동라가 가장 높은 음을 낸다.
○ 연주 방법
운라를 행진하며 연주할 때는 왼손으로 가자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으로 각퇴를 쥐고 동라를 친다. 앉아서 연주할 때는 손잡이를 방대에 꽂아서 세워 놓고 치는데 각퇴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번갈아 치기도 한다. 여음이 길므로 한 음을 내고 나서 다음 음을 낼 경우에는 손가락으로 여음을 막기도 한다.
○ 역사적 변천과 전승
전통적인 운라는 작은 징[놋쇠 합], 즉 동라가 열 개이나 1980년대에 제작된 개량 운라(1983년ㆍ1989년)의 동라 개수는 열일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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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량운라(1983) :1983년에 제작한 개량운라로, 국립국악원 제3차 악기 개량사업 성과물이다. 동라(작은 징)를 10개에서 17개로 늘려 음역을 확대하였다. (시안: 이상규, 제작: 남갑진) ©국립국악원 | 개량운라(1989) : 국립국악원 제4차 악기 개량사업 성과물로서, 개량운라(17편)의 음향을 개선한 것이다. 타격 후 동라가 오랫동안 공명할 수 있도록 스프링으로 틀에 연결하였고 잡음(노이즈) 방지를 위해 고무를 연결하였다. 또 행보 때 들고 연주하기 편리하도록 가벼운 재질인 알루미늄으로 틀을 짰다. (시안·제작: 김현곤) ©국립국악원 |
개량 운라는 주로 창작 국악 연주에 사용된다.
현재 운라는 국악 관현악을 비롯한 창작국악에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전통악곡 연주에는 한정적으로 쓰인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대취타>에는 운라가 편성되지 않고, 〈취타〉에 간혹 편성될 뿐이다. 반면 연주법이 쉬워 민간에서 결성된 취타대에서는 운라가 활발히 연주되고 있으며, 궁궐 수문장 교대의식이나 어가행렬 재현행사 등에서도 운라가 연주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임란경(林爛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