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행진 행위에 수반되는 음악의 일반 명칭.
2. 조선 시대 왕의 거둥, 관찰사 또는 사신 행렬 등 공식적인 이동 시 연주된 음악.
행악은 행진에 수반되는 음악을 의미하며, 조선 시대 및 현대 국악 분류에서는 왕의 거둥, 관찰사, 사신 행렬 등 공식적인 이동 시 연주된 의례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로 통용된다. 그 유래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문헌상 개념과 용례가 확인되는 시점은 고려 시대이다. 공식 의례와 관련된 행악은 주악 대상과 연주 공간에 따라 악대의 편성, 연주 주체의 신분과 명칭, 그리고 사용된 악곡이 각각 달리 적용되었다.
행악의 실제와 개념은 삼국 시대에 이미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행렬도와 『삼국사기』 등의 문헌에서 행렬에 수반된 주악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행악의 기초적 형태로 볼 수 있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는 문헌을 통해 악대의 구성과 용도, 연주 방식이 보다 구체적으로 정립되었으며, 궁중 장악 기관의 주도로 고취악이 공식 의례에 사용되었다.
행악이라는 용어 자체는 조선 전기 『세종실록』(세종 13)에서 처음 등장하며, 당시에는 고취악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또한 악곡명으로서 행악이 등장한 것은 고종 대(재위 1864–1919)에 발간된 『아금고보』에서 처음 보이며, 현대에 이르러 국악곡의 갈래를 구분할 때 궁중 음악 중 행진에 수반되었던 음악을 행악으로 지칭하는 것은 성경린의 『한국음악논고』(1976)에서 확인된다. 〈대취타〉, 〈취타〉, 〈군악〉, 〈별우조타령〉 등이 행악에 포함되었다.
〇 개요 및 개념 적용의 범주
행악은 행진에 수반되어 연주되는 음악을 의미하며, 넓게는 왕실과 관청의 공적인 의례에 따른 주악에서부터 민간의 종교 의례, 일상 노동, 축제 현장에서 연주된 음악까지를 포괄한다. 좁은 의미로는 이러한 행진 음악 가운데 특정 악곡을 지칭하며, 오늘날에는 이를 바탕으로 조선 시대 왕실과 관청에서 계기별로 연행된 악곡을 분류하는 범주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행악은 왕의 공식적인 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범주에 적용된다. 행진의 성격에 따라 예행(禮行), 행행(行幸), 유행(遊幸), 동가(動駕) 등으로 구분되며, 공간적으로는 궁궐 내부 및 외곽을 포함하는 성내(城內) 이동과 궁궐 밖 거리나 지방으로의 성외(城外) 이동으로 나뉜다. 대상 또한 왕에 국한되지 않고 관찰사나 사신의 공식 행렬에도 적용된다. 다만, 민간에서 연주되는 길굿이나 장원질소리 등은 기능상으로는 행악의 성격을 지니지만, 궁중 음악의 악곡 갈래로서 행악이라는 명칭이 적용되는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〇 음악적 유형
고취악은 왕의 성내 이동 시 연주되며, 궐내 이동에는 전후고취와 전정고취(또는 전정헌가)가, 궐외 이동에는 전부고취와 후부고취가 담당하였다. 출궁 시에는 〈성수무강〉, 〈오운개서조〉, 〈여민락 만〉, 〈성수무강 만〉 등이 연주되었고, 환궁 시에는 〈보허자〉, 〈낙양춘〉, 〈여민락 영〉, 〈보허자 영〉, 〈환궁악〉 등이 사용되었다. 악기 구성은 관악기와 타악기를 중심으로 하며, 연주 시점과 장소에 따라 편성이 달라졌다.
취타악은 조선 후기부터 성내와 성외 이동 모두에 사용되었으며, 취타내취와 세악내취가 연주를 담당하였다. 이들은 군영과 선전관청에 이중 소속되어 ‘겸내취’라 불렸으며, 왕의 행렬에 참여하였다. 취타내취는 대각, 나각, 나발, 발라, 태평소, 금, 정, 나, 고, 솔발, 자바라, 점자 등 다양한 악기 중 일부를 편성하여 연주하였고, 대표곡으로는 〈대취타〉가 있다. 세악내취는 피리 2, 대금 1, 해금 1, 장구 1, 북 1로 구성된 삼현육각 편성으로, 〈취타〉,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 〈군악〉 등을 연주하였다.
한편, 관찰사와 사신의 행렬에서는 취고수와 세악수가 음악을 담당하였다. 이들이 연주한 악기 편성과 악곡은 왕의 행렬에서 사용된 취타내취 및 세악내취와 동일하였으며, 연주 기능과 음악적 내용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 역사적 변천
행악의 실제와 개념은 삼국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고(鼓)와 각(角)을 중심으로 연주된 고취악이 그 기원을 이룬다. 고려 시대에는 궁중 장악 기관에서 고취악이 연주되었고, 금정·강고·도고·취각군 등 다양한 악기와 악대가 편성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고취’라는 명칭 아래 장악 기관 소속 연주자들이 정식화된 악대 체계를 갖추어 왕의 성내 이동에 음악을 연주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취타악이 행악의 범주에 포함되며 성외 이동까지 확대되었고, 관찰사와 사신 행렬에는 취고수와 세악수가 참여하였다. ‘행악’이라는 용어는 『세종실록』에서 처음 등장하며, 악곡명으로 사용된 것은 고종 대 『아금고보』에서 보이며, 현대 학계에서는 궁중 음악의 갈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행악은 왕실과 관청의 공식 행렬에 음악을 수반함으로써 권위와 질서를 시각·청각적으로 구현한 의례적 표현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행진 음악을 넘어 정치적 상징성과 사회적 위계, 공간의 통제 기능을 담고 있으며, 궁중 음악의 실천적 면모를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다. 악대 편성과 악곡의 변화는 시대별 음악 문화의 흐름을 반영하며, 행악은 궁중 의례와 군영 제도의 교차 지점에서 형성된 복합적 음악 유산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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