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조에서 한성기로 전승된 가락에 김죽파가 자신이 만든 선율을 추가하여 창작한 가야금산조.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산조의 창시자로 일컫는 김창조의 가락을 한성기로부터 이어받아 김죽파가 자신의 가락을 더해 완성하였다. 계면조가 확장되면서 다양한 방식의 선율 전개를 보여 주며, 겹청조현법을 통해 저음역대가 확장된 산조를 시도하는 등 다양한 창작법을 보여 주었다.
○ 역사적 변천 과정
죽파 김난초(金蘭草, 1911~1989)는 젊은 시절 김운선(金雲仙)이라는 예명으로도 활동하였다. 그는 8세 무렵 가야금산조의 효시로 알려진 조부 김창조(金昌祖, 1865~1919)에게 가야금을 배웠으며, 김창조 사후에는 조부의 수제자인 한성기(韓成基, 1889~1950)에게 풍류와 산조를 익혔다. 1931년에 김난초는 포리돌 음반사에서 ‘즁모리’와 ‘원머리’를 녹음할 정도로 초년부터 주목되는 음악사였다.
김난초는 음악 활동을 중단했다가 1950년대 이후로 김죽파란 이름으로 재개했다. 이후 김죽파의 산조는 보다 길어지고 정교해졌는데, 특히 해방 전에 없던 세산조시 악장이 만들어졌고, 심상건(沈相健, 1889~1965)에게 산조를 배운 영향으로 제1현을 원래 음보다 4도 아래음으로 조현하는 겹청조현법을 사용하여 저음역대를 넓힌 산조를 선보였다. 또한 1979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 무형유산) 보유자로 지정된 이후에도 계면조 선율을 추가하고,또 뒷다스름의 우조 선율을 첨가하여 현재와 같은 50여 분의 산조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 음악적 특징
문재숙(文在淑, 1953~)의 『죽파 가야금 곡집』(1989)에 의하면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는 ‘다스름-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세산조시-뒷다스름’의 악장으로 구성된다. 다스름은 산조 한바탕을 축약한 듯한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고, 진양조는 ‘우조-우조계면조-돌장-평조-평조계면조-계면조-계면조변청-계면조 본청’으로, 중모리는 ‘경조(경드름)-평조-강산제 계면조-계면조-우조계면조-강산제-계면조’로, 중중모리는 ‘강산계면조-우조 강산제’로, 자진모리는 ‘계면조-계면조(강산제)-우조강산제-계면조(강산제)’로, 휘모리는 계면조로만 전개되면서 다양한 청이동을 보여 준다. 세산조시는 ‘계면조(강산제)-말말굽소리-변청강산제-본청(우조 강산제)’로 전개된다. 이후 뒷다스름으로 이어져 마무리된다.
또한 김죽파류 산조는 다른 산조와 비교하여 미분음이 두드러지고 이것이 농현이 깊이와 표현에도 영향을 미친다. 김죽파는 가야금 제1현을 ‘청’줄보다 4도나 5도 더 낮은 음으로 조율하여 하청 밑에 음을 하나 더 두는 방법을 써서 넓은 음역대의 산조를 구현하기도 했다. 이 조현법은 하청이 한 줄 더 있는 대신 고음이 한 줄 없게 되어 다른 가야금산조보다 고음을 더 많이 눌러 내야 하므로 고도의 기교적 성취가 요구된다.
산조의 음악 세계를 시대에 맞게 다양항 방식으로 확장시킨 산조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국가 무형유산(1979)
국립문화재연구소 편, 『가야금산조 및 병창1 산조편 :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민속원, 2010.
문재숙, 『죽파 가야금 곡집』서울: 세광음악출판사, 1989.
문재숙, 『김죽파 가야금산조 연구 : 역사적 변천과 미의식을 중심으로』, 현대음악출판사, 2000.
뿌리깊은나무 편, 『뿌리깊은나무 산조전집』, 뿌리깊은나무, 1989.
이보형,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7 : 산조』,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87.
김일륜(金日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