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창악사 2. 설명자, 해설자
1. 여럿이 노래 부를 때 인도하는 사람. 2. 궁중의 의례에서 노래를 인도하는 직분. 3. 창극에서 관객에게 줄거리와 장면을 설명하며 극의 이해를 돕는 일, 또는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
여럿이 노래를 부를 때 인도하는 사람을 일컫는 일반적 개념 외에 조선 시대 제례악의 등가 및 악무 편성에서는 노래를 담당한 가, 가자 외에 ‘도창’이 별도로 존재하여 노래를 인도하였다. 도창은 ‘제창’ 보다 노래를 먼저 시작하는 선창의 역할을 맡았다. 한편, 20세기 전반기의 창극 공연에서는 극의 배역을 맡지 않은 사람이 무대의 앞이나 옆에 등장하여 극의 줄거리나 장면을 판소리 투로 해설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이 해설 또는 그 역할을 맡은 이를 도창이라 하였다. 동일한 용어이나 시대와 장르에 따라 기능과 역할은 상이하였다.
궁중 제례악 등가에 편성된 도창의 존재는 『악학궤범』에 처음 확인된다. 고려 이래 조선전기까지 ‘가’, 또는 가자로 표기되었던 노래 담당자 명칭을 도창이라 하였다. 성종 이후 제례악의 등가와 헌가에 도창 2인이 편성되었음이 악현도에서 확인되며 <학연화대처용무합설>에서 불가를 부를 때 도창이 제창을 인도하여 노래를 불렀다. 이로서 궁중에서의 용어 및 역할의 정체성이 정립된 것은 성종조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한편, 창극에서는 1930년대에 도창의 역할이 도입되었다. 한편, 창극에 공식적으로 도창을 표기한 가장 이른 시기 기록은 1957년 10월 22일 동아일보 기사다. 창극 <대심청전>의 개막 안내 기사에 임방울의 배역이 도창으로 표기되어 있다.
○명칭과 유형별 역할 유중교의 『현가궤범(絃歌軌範)』 권3에는 “등가는 도창(導唱)을 첫머리로 삼는다. 도창이 노래 구절을 시작하여 노래하는 사람이 그 말을 길게 빼면 금과 슬 아래의 악기들이 그 소리를 합쳐 연주하였다.(登歌以導唱爲首。導唱發歌句。歌者永其言。而琴瑟以下合其聲)고 기술되어 있다. 개인 저술이기는 하나 궁중예악에 대한 풍부한 식견을 토대로 완성된 저작물이라는 점에서, 제례악 등가에서의 도창 역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제례악에서 도창은 가공과 구분되었고, 별도로 도창악사라는 직명을 근거로, 그 신분이 악생 보다 높았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밖에 <학처용무연화대합설>에서 불가를 노래할 때 도창이 있어 제창을 인도한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궁중의례에 참여한 도창은 가공과 달리 악사의 복식을 착용하였다. 창극의 도창은 말 혹은 창으로 창극의 해설자의 역할을 맡는다. 이 해설자는 극의 정황, 등장인물의 개별 사정과 성격, 감추어진 사건 등을 관객에게 전달하거나, 등장인물의 동작과 내면, 작품의 주요 장소 등을 묘사한다. 때로는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한다.
○ 역사 변천 과정
도창은 궁중 기록에서 조선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하며, 대한제국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그 명칭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창극에서 ‘도창’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다. 1920~30년대까지만 해도 도창의 역할을 ‘설’, ‘창’, ‘방창’ 등으로 표기했고, 박동실(1897~1968)은 1900년대 초 협률사 공연 〈춘향전〉에서 도창 역할을 맡은 이를 ‘창군’이라하고, 창군이 부르는 노래는 ‘방창’이라 하였다. 1957년 10월에 창극 <대심청전>에서 임방울이 도창으로 소개되었으며, 1962년 국립국극단(1973년 국립창극단으로 개칭)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1962년 국립국극단 제1회 공연 〈춘향전〉을 보고 이혜구(李惠求, 1909~2010)는 도창이 이번에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지만 그 효과가 좋았다고 하며, 인물의 행동ㆍ시간의 경과ㆍ인물의 마음 등을 설명하는 데 이점이 있다고 하였다. 1968년 국극정립위원회(1970년 창극정립위원회로 개칭)에서는 서구식 연극 기법에 의해 극이 진행됨에 따라 창극 공연에서 사라진 ‘ 설명창’의 역할을 강조하겠다며 판소리 본연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무대 한 켠에 도창을 마련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도창이라는 용어의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1960년대까지는 주로 1인 도창이었고, 1969년 국립창극단의 제14회 〈심청가〉 공연을 필두로 2인 도창이 나타났다. 1980년대 이후에는 등장인물이 도창의 역할을 수행하는 형태로 연기와 해설을 겸하기도 하였다. 일부 창극에서 도창이 생략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나 도창은 창극의 주요 구성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도창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악장을 읊던 공식 직분으로, 음악적 해설자의 역할을 맡았다. 이 명칭은 대한제국기를 거쳐 현대까지 이어지며 전통 공연예술의 계보를 보여준다. 창극 속 도창은 극적 연출 속에서도 판소리의 이야기성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다. 도창의 존재는 창극이 판소리에서 출발했음을 드러내며, 말과 노래의 혼용을 가능케 한다. 이는 서양식 음악극에서는 보기 어려운 극과 서사의 융합을 보여주는 독자적 예술 형식이다.
『악학궤범』 『정조실록』
국립중앙극장 엮음, 『(세계화 시대의) 창극』, 연극과인간, 2002. 김미나, 「창극(唱劇)의 도창(導唱)에 관한 연구: 기능과 역할론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김정환, 「공연예술의 제3자적 서술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9. 백두산, 「근대 극장의 해설 관습과 극장 공론장의 변화과정 연구: 광대화극의 공연 관습과 초기 창극의 도창 성립을 중심으로(1902~1908)」, 『민족문학사연구』 70, 2019. 백현미, 『한국 창극사 연구』, 태학사, 1997. 이진원, 「박동실의 “창극이 걸어온 길을 더듬어”」, 『판소리연구』 18, 2004. 「唱劇(창극)『大沈淸傳(대심청전)』開幕(개막) 讀者慰安國樂大饗宴(독자위안국악대향연) 錚錚(쟁쟁)한一流(일류)멤버總出演(총출연)」, 『동아일보』, 1957. 10. 22.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publishDate=1957-10-22&officeId=00020&pageNo=1) 이혜구, 「國劇(국극)의 갈길 春香傳(춘향전)을 보고」, 『동아일보』, 1962. 4. 2.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62040200209104001&officeId=00020)
송소라(宋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