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응이 1781년에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의 명으로 정조대의 국가 전례에 쓰이는 악장을 모아 편찬한 악장 모음집.
『국조시악』은 영조 대에 편찬한 『국조악장』의 오류를 보완하여 정조 대의 국가 전례에 쓰기 위해 1781년 서명응에 의해 완성되었다. 서명응의 보만재잉간에 포함되어 있다. 조정의 제사와 연회 때에 쓰이는 악장이 아악(雅樂), 속악(俗樂), 당악(唐樂), 향악(鄕樂), 요가(鐃歌)의 다섯 항목으로 구분되어 수록되어 있다.
1781년(정조 5) 7월, 정조의 명으로 서명응이 펴냈으며 정조가 직접 범례(凡例)를 만들었다.
○ 체재 및 규격 5권 1책 필사본. 33.8cm×21.5cm ○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편찬 연대 및 편저자 사항 『국조시악』은 정조 5년(1781) 7월, 정조의 명을 받아 서명응이 펴냈다. 이는 정조가 『국조악장』을 열람한 후 아악(雅樂)과 속악(俗樂)이 나뉘어져 있지 않고 풍운뇌우 악장이 빠져 있으며 또 부묘악장에 있어야 할 것이 빠진 점을 지적하여 정조 자신이 범례를 만들고 한 권의 책으로 펴낼 것을 명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국조시악은 서명응의 문집 『보만재잉간(保晩齋剩簡)』(1784, 정조 8, 64권 25책) 중 제23책 ‘집간(集簡)’에 포함되어 있다.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은 영ㆍ정조년간에 걸쳐 부제학,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고루 역임한 인물로 영ㆍ정조 대에 국가 규모로 이루어지는 편찬 사업에 두루 참여하여 조선 후기의 학자, 문신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정조의 세손 시절 스승으로 정조의 학문 수련에 큰 도움을 주었고, 정조가 즉위한 이후에는 혁신 정치의 중추로 세워진 규장각(奎章閣)의 초기 제학(提學)으로 활동했다. ○ 구성 및 내용 『국조시악』은 국조시악서(國朝詩樂序)로 시작하여 아악제일(雅樂第一), 속악제이(俗樂第二), 당악제삼(唐樂第三), 향악제사(鄕樂第四), 요가제오(鐃歌第五)의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조는 국가 전례에 쓰이는 악장의 분류를 명확히 하고자 하여 위와같이 다섯 부문으로 분류했고, 편찬자 서명응은 그 방식을 수용하였다. 『보만재잉간』 소재 『국조시악』에는 서명응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반면 정조의 글을 모은 『홍재전서(弘齋全書)』에는 정조의 서문이 실려 있다. 권1 아악에는 종묘등가, 사직등가, 풍운뇌우등가, 선농등가, 선잠등가, 우사등가, 석전등가, 추보악장(追補樂章), 회례악가(會禮樂歌)가 수록되어 있다. 권1 소재 악장은 제례와 회례에 연주하는 음악의 가사이다. 아악을 연주하는 제례에서는 전폐, 초헌, 철변두 절차에서만 등가에서 악장을 부른다. 따라서 모두 ‘등가’라고 해 놓았다. 추보악장은 숙종 16년 이봉징(李鳳徵, 1640-1705)이 석전의 헌가에서도 악장을 부르게 하고자 상소함에 따라 석전의 영신, 아헌, 종헌, 송신 절차의 악장을 추보한 것이다. 1463년(세조 9) <보태평>과 <정대업>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하기 전까지는 종묘에서도 아악을 연주했다. 국조시악 권1의 종묘등가는 익조, 도조, 환조, 태조, 정종, 태종, 세종의 악장이 수록되어 있다. 회례악가는 세종대 회례연에서 연주된 음악 중 아악의 가사이다. 권2 속악에는 종묘악장, 문소전악장, 연은전악장, 경모궁악장, 용비어천가, 존호악장, 양로연악장, 대사례악장, 친경악장, 친잠악장, 관예악장이 수록되어 있다. 종묘악장은 1463년(세조 9) 이후 종묘제례악의 악장 가사이다. 양로연악장은 본문에는 기영회악장(耆英會樂章)으로 되어 있다. 권2의 관예악장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악장이 수록되어 있다. 권3 당악에는 헌선도가사, 수연장가사, 오양선가사, 포구락가사, 연화대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권3 소재 당악은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어 오는 당악정재이며, 가사에는 구호, 치어, 창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권4 향악에는 몽금척가사, 하성명가사, 성택가사, 육화대가사, 곡파가사, 처용가사, 문덕곡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권4 소재 향악 중 당악정재는 조선초기에 창제된 것이고, 처용과 문덕곡은 향악정재에 속한다. 권5 요가(鐃歌)에는 둑제(纛祭)요가와 교열(敎閱)요가가 수록되어 있다. 요가는 군기에 대한 제사 의식인 둑제와 군대의 교열 의식에 사용되는 음악을 이른다. ○ 특징 『국조시악』은 『국조악장』과는 달리 독립된 저술로 나와 있지 않고 다만 『보만재잉간』 23 ‘집간(集簡)’에만 소개되어 있다. 책이 지닌 가치로 볼 때 『국조악장』보다 더욱 큰 의미가 있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상황이다. 『국조시악』에서 주목할 사항은 영조 대의 『국조악장』에서는 가사 있는 음악을 뭉뚱그려 ‘악장’이란 용어로 통용했지만 『국조시악』에서는 용도와 기능에 따라 이를 세밀하게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즉 아악의 제사에 사용하는 악장은 ‘등가(登歌)’라는 명칭으로, 속악의 악장은 ‘악장(樂章)’으로, 당악의 악장은 ‘가사(歌詞)’로, 요가악에 쓰이는 것은 ‘요가(鐃歌)’로 각각 구분하여 쓰고 있다. 이처럼 용어 사용에 있어서까지 용도와 계통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을 하여 쓴 예는 『국조시악』이 처음이다. ○ 역사적 변천 서명응이 『국조시악』이라는 제목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다른 제목을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책의 편찬 과정에서 정조의 의도와 편찬자 서명응 사이에 합일되지 않았던 내용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홍재전서』의 『군서표기(群書標記)』에 있는 정조의 서문에는 『국조시악』이라 표기하고 있지만 『보만재잉간』에 실린 『국조시악』은 그 제목을 ‘시악집성(詩樂集成)’이라 수정하여 적어 놓았다. 또 『보만재잉간』 「보만재잉간목록인(保晩齋剩簡目錄引)」에는 ‘시악집성(詩樂集成)’이라 써 놓은 위에 다시 ‘시악화성(詩樂和聲)’이라 가필하여 서명응이 제목을 정하는 데 큰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인다. ‘국조시악’ㆍ‘시악집성’ㆍ‘시악화성’이란 세 가지 제목이 하나의 책에 대한 제목으로 거론된 셈이고, 또 이 가운데 『시악화성』은 독립된 저술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목의 혼란이 있으나 이 책이 정조의 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 만큼 『군서표기』의 예를 따라 『국조시악』이란 제목을 쓰기로 한다.
정조는 집권 초반에 당대 음악 현실을 파악하면서 음악 전반에 걸쳐 정비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여 악(樂)의 정비를 염두에 둔 음악 정책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다. 정조는 평소 악장이 잘 정비된 상태를 ‘시악(詩樂)이 제자리를 얻는 것‘이라는 틀로 인식하였고, 그런 과정에서 정조 대의 국가 전례에 사용되는 악장(樂章) 정비를 위해 악장 모음집인 『국조시악』을 편찬하도록 명하였고, 그에 부응하기 위해 서명응은 이를 편찬하였다. 책의 제목을 ‘국조시악’이라 한 것은 “시(詩)와 악(樂)이 하나라는 것을 밝히고자 함”이라 하였다. 책은 모두 5권으로 분류하고 악장(樂章)의 아래에 각 악장을 지은 연월과 악장의 변천 과정, 악장의 의의, 잘못된 시말(始末)에 대한 주를 달아 놓았다. 이는 영조 대에 편찬된 『국조악장』이 아(雅)ㆍ속(俗)을 구분하지 않고 악장별로 편집한 것, 악장에 대한 주석을 붙이지 않았던 관례와 비교된다. 국조시악은 정조 대의 국가 전례에 쓰이는 악장을 용도별로 분류하고 주석을 붙여 일목요연하게 모아 놓은 악장모음집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아울러 『국조시악』에서는 각 악장의 제목 아래 작은 글씨로 그 악장의 제작 과정이나 제작 배경, 시말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여 악장에 관련되어 일목요연하게 그 전체상을 참고할 수 있도록 서술해 놓아 자료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국조시악(國朝詩樂)』 『보만재년보(保晩齋年譜)』 『보만재잉간(保晩齋剩簡)』 『홍재전서(弘齋全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송지원, 「정조대의 악장정비-『국조시악』의 편찬을 중심으로」, 『한국학보』 27/4, 2001. 송지원, 「정조(正祖)의 악서편찬과 그 의미」, 『한국음악사학보』 29, 2002. 송지원, 『정조의 음악정책』, 태학사, 2007.
송지원(宋芝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