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효명세자가 만든 향악정재로, 화창하게 갠 봄날의 아름다운 궁궐 풍경을 찬탄하는 내용의 창사를 노래하며 대오를 바꾸며 추는 춤.
춘광호는 1828년(순조 28) 어머니 순원왕후의 보령 40세를 기념하는 진작례에서 연행된 무동정재이다. 효명세자가 당(唐) 원종(元宗)의 고사에 근거하여 지은 「춘광호지사(春光好之詞)」를 악장으로 사용한다. 6인의 무용수가 전후좌우복합대형으로 시작하여, 상대무(相對舞), 상배무(相背舞), 대오 교차 등 순환적인 대형 변화를 통해 궁궐의 태평성대와 아름다운 봄 풍경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효명세자 대에 나타난 정재의 예술적 확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춘광호는 1828년(순조 28) 6월 1일, 순원왕후의 보령 40세를 기념하는 연경당 진작례(進爵禮)에서 초연되었으며, 그 기록은 『(무자)진작의궤』(1828)에 전한다. 이 진작례는 효명세자가 정치 질서의 안정을 도모하며 11편의 악장과 17편의 새로운 정재를 설행한 행사였다. 춘광호의 악장은 중국 청대에 저술된 『연감유함(淵鑑類函)』(1710)에 전거(典據)를 두고 있다. 효명세자는 당나라 원종이 연일 내리던 비가 갠 봄날 갈고(羯鼓)를 연주하며 지은 '춘광호'의 제목을 가져와, 화창하게 갠 봄 날씨를 찬탄하는 내용의 칠언율시를 악장으로 짓고 이를 정재로 표현하였다.
'춘광호(春光好)'는 '봄볕이 좋다'는 의미이다. 춘광호는 궁궐에 비치는 아름다운 봄볕을 찬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주제로 한다.
○ 절차와 구성
춘광호는 6인의 무동이 연행하며, 죽간자의 인도를 생략하고 무용수들이 등장하여 춤추고 퇴장하는 향악정재의 형식을 따른다. 도입부는 북쪽에 두 명, 남쪽에 두 명, 동·서쪽에 각 한 명이 서서 전후좌우복합대형으로 초입 대오(隊伍)를 구성하여 춤을 시작한다. 전개부에서 반주 음악 없이 여섯 무원이 「춘광호지사」를 노래한다. 창사가 끝나면 다시 음악이 시작되고, 상대무와 상배무 등 두 명 구성의 변화를 통해 직선적인 대오에 변화를 꾀한다. 이후 전대(북쪽)와 후대(남쪽)가 서로 대를 바꾸고, 중대(中隊)의 좌우 무원이 대오를 바꾸어 춤추는 각환기대이무(各換其隊而舞)를 행한다. 또 대를 교차한 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환복기대이무(還復其隊而舞)를 행한다. 순환적인 대형 변화를 반복하는 것이다. 종결부는 무용수들이 원래의 전후좌우복합대형으로 돌아온 후, 북쪽을 향하여 무퇴·무진하여 서서 염수족도(斂手足蹈)하고 춤을 마친다.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 기록되어 있다.
○ 창사 조선 후기의 악장은 조선 초기의 악장이 지니던 조선 창업의 찬란함이나 후대의 교화를 위한 통치이념을 담아내던 목적에서 벗어나, 사물을 관찰하거나 그 감흥을 통해 태평성대(太平聖代)와 성수무강(聖壽無彊)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확장되었다. 춘광호의 창사는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며, 효명세자는 연일 내리던 비가 갠 봄날 갈고(羯鼓)를 연주했던 당(唐) 원종의 '춘광호' 고사에 근거하여 칠언율시 형태의 「춘광호지사」를 창제하였다. 무용수가 이를 병창(竝唱)한다. 「춘광호지사」 원문 曈曈日出大明宮, 天樂遙聞在碧空. 동동일출대명궁, 천악요문재벽공. 禁樹無風正和暖, 玉樓金殿曉光中. 금수무풍정화난, 옥루금전효광중. 「춘광호지사」 해설 궁궐 위로 해가 환히 떠오르니 하늘 음악 저 멀리 푸른 하늘에서 들린다. 대궐 숲은 바람 없어 정말 따뜻하고 옥 누대, 황금 전각 새벽빛 속에 찬란하다.
원문: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2』 번역: 강명관
○ 춤사위 춘광호의 춤 구성은 대(隊)를 교차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순환성을 특징으로 한다. 『정재무도홀기』에 전하는 춤사위는 무진, 무퇴, 상대, 상배와 함께 팔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이수고저(以袖高低), 번수(翻袖), 일불일전(一拂一轉)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절제되고 조화로운 유려함이 돋보인다. ○ 반주음악 『정재무도홀기』에는 〈만화신지곡〉으로 전하나, 이는 1828년 자경전 진작에서 연주된 〈향당교주(鄕唐交奏)〉의 아명으로 보인다. 오늘날 반주 음악으로 사용되는 〈향당교주〉는 〈관악영산회상〉에서 허용되는 리듬과 선율의 불규칙성을 부분적으로 변주하여 정재 반주에 적합하도록 다듬은 곡이다. ○ 복식·의물·무구 순조 『(무자)진작의궤』에 무동 복식도가 전한다. 무동은 머리에 아광모(啞光帽)를 쓰고, 상의로 홍라포(紅羅袍)와 백질흑선중단의를 입으며, 하의에 남질흑선상을 입는다. 허리에 주전대(珠鈿帶)를 두르고 흑화(黑靴)를 신는다. 의궤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정재도를 통해 한삼(汗衫)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춘광호에는 별도의 의물이나 무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춘광호는 1828년(순조 28) 효명세자에 의해 창제된 이후, 대한제국 시기인 1902년(광무 6) 4월과 11월의 궁중 연향에서 무동정재로 연행되었다. 20세기 초반 연행이 단절되었으나, 현대에 『정재무도홀기』를 토대로 이흥구(李興九, 1940~ )가 재현 안무하여 1996년에 공연되었다. 같은 해 국립국악원 무용단 공연을 통해 전승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효명세자가 창제한 춘광호는 궁중정재의 문학적·예술적 표현 범주를 확장한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기존에 없었던 전후좌우복합대형으로 시작하여 상대·상배 및 대오 교차를 통해 순환적으로 대형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구성을 통해 정재의 형식적 표현을 넓혔다. 또한 궁궐의 아름다운 봄을 찬탄하여 태평성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악장은 조선 후기 궁중 문화의 풍류와 세련미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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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화(金起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