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창작된 당악정재로, 임금의 덕(德)과 만수무강(萬壽無疆)을 기리는 내용의 춤
순조(純祖) 29년(1829)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부왕(父王)인 순조의 덕과 복록(福祿)이 무강하기를 바라며 창작한 궁중무용이다. 이 춤은 죽간자와 구호를 도입하여 당악정재의 양식을 갖추었고, 구호ㆍ치어 외 창사(唱詞)를 여섯 번이나 부르는 비교적 노래가 많은 궁중무이다.
연백복지무는 조선 후기 1829년(순조 29)에 효명세자가 부왕인 순조의 40세 생신과 즉위 30주년을 기념하는 진찬(進饌)을 위해 만들었다. 『(기축)진찬의궤』의 정재악장에 연백복지무의 유래에 대한 언급은 없고, 죽간자(竹竿子) 2인과 중무(中舞) 1인과 무동 4인이 열을 지어 북향하여 춤춘다는 설명만 있다. 수악절 창사에 세 가지 소원을 아뢴다고 했는데, “첫째는 거북처럼 학처럼 수(壽)를 누리시고, 둘째는 덕(德)은 별처럼 빛나고 은택(恩澤)은 바다처럼 윤택하며, 셋째는 강구요(康衢謠),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며 남녀노소 함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一願龜齡鶴壽, 二願星耀海潤, 三願康衢謠擊壤歌, 羣生老少同懽忭.)”라고 했다. 효명세자가 지은 창사를 보면 덕화(德華)가 융성하고 복록(福祿)의 무강함을 기리기 위해 창제한 궁중무용이다.
○ 절차와 구성
연백복지무는 순조의 탄신 40년과 즉위 30년을 맞이하는 경사스런 잔칫날에 축복의 말씀 올리고 온갖 복록을 길이 누리시기를 송축하는 내용이다. 죽간자ㆍ구호(口號)ㆍ치어(致語)의 형식을 갖춘 당악정재로, 죽간자 2명, 선모 1명, 좌우 협무 4명으로 총 일곱 명의 무용수로 구성되어 있다.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 춤의 절차가 기록되어 있는데, ① 죽간자 구호 부르기 ② 선모 치어 부르기 ③ 선모와 좌우 협무 네 명이 창사 전단・후단 부르기 ④ 선모는 중앙에 위치하고, 좌우 협무 네 명이 사방으로 나뉘어 상대・상배하며 춤추기 ⑤ 선모가 성수무강사(聖壽無彊詞) 부르기 ⑥ 선모와 좌우 협무 네 명이 일렬로 춤추기 ⑦ 선모는 중앙에, 좌우 협무 네 명이 사방에 위치하여 선모가 북-동-남-서 순으로 팔수무(八手舞)로 상대하며 춤추기 ⑧ 선모와 좌우 협무 네 명 해동금일사(海東今日詞) 부르기 ⑨ 오른쪽 죽간자가 선도(先導)로 북쪽 협무- 선모-왼쪽 죽간자-동쪽 협무-남쪽 협무-서쪽 협무가 왼쪽으로 돌면서 응천장지사(應天長之詞) 부르며 춤추기 ⑩ 다시 처음 대열로 춤추고 좌우 협무 네 명 파자사(波刺斯) 부르기 ⑪ 대(隊)를 만들며 춤추고, 팔수무 추며 오방(五方)으로 만들기 ⑫ 수신요합지절무(隨身腰合之節舞)-대수(擡袖)-번수(飜袖)-회선(回旋)하며 춤추기 ⑬ 죽간자 구호 부르기 ⑭ 선모 치어 부르기 구성으로 진행한다. 춤사위는 오방, 회선, 수신요합지절무, 대수, 번수, 팔수 등이 추어지는데 그중 팔수무(八手舞)의 비중이 가장 크다.
○ 창사
연백복지무의 창사(唱詞)는 죽간자 구호(口號)선모 치어(致語)선모와 좌우 협무 네 명 수악절(隨樂節)창사 전단(前段)․후단(後段)선모 성수무강사(聖壽無彊詞)-선모와 좌우 협무 네 명 해동금일사(海東今日詞)-선모와 좌우 협무 네 명 응천장지사(應天長之詞)-좌우 협무 네 명 파자사(波刺斯)-죽간자 구호-선모 치어로 구성되어 있다. 창사가 많은 궁중무이다.
[죽간자 구호]
住在大羅天上, 來朝聖人宮中.
주재대라천상, 내조성인궁중. 演無疆百福之祥, 呈太平萬歲之舞. 연무강백복지상, 정태평만세지무. 敢冒宸顔, 庸陣口號. 감모신안, 용진구호.[죽간자 구호]
대라천(大羅天)에서 살다가
성인의 궁중에 내려와 한없는 복을 누리실 상서를 펼쳐 보이고 태평만세의 춤을 바치고자 감히 용안을 뵈옵고 구호를 올립니다.[선모 치어]
欽惟我聖上, 德化隆盛, 福祿無疆, 享華封之三祝, 躋天保之九如. 흠유아성상, 덕화융성, 복록무강, 향화봉지삼축, 제천보지구여. 玆當慶會, 載敶祝嘏, 以百福長演之曲, 歌之而頌也. 자당경회, 재진축하, 이백복장연지곡, 가지이송야.[선모 치어]
공경한 마음으로 생각하옵건대 우리 성상께서는 덕화가 융성하고 복록이 한이 없어 화(華) 땅 지키던 사람 요임금께 빌었던 세 가지 축원 누리시고 시경(詩經) 천보장(天保章)의 아홉 가지의 만수무강하는 경지에 오르셨네. 이제 경사스런 잔칫날 맞이하여 축복의 말씀 올리고 온갖 복록을 길이 누리시라는 곡을 노래하며 송축합니다.[수악절 창사]
전단(前段) 天休啓我東方, 仁風和日, 寶祚靈長. 천휴계아동방, 인풍화일, 보조영장. 朝金門拜玉堂, 百合香烟九霞觴. 조금문배옥당, 백합향연구하상. 鸞鳴和鳳歸昌, 於萬歲樂未央. 난명화봉귀창, 오만세낙미앙.[수악절 창사]
전단(前段) 하늘이 복을 내리시어 우리 동방을 여셨으니, 은혜로운 바람, 따스한 햇볕처럼 나라의 복록이 영원히 이어지리이다. 궁궐 문 앞에서 조회하고 옥당(玉堂)에서 절을 올리는데, 백합꽃 향기 구하상(九霞觴)[신선인 서왕모가 마셨다는 술]에 피어나고 난새 울어 봉황 울음에 화답하니, 아, 만세토록 즐거움 끝없으리.후단(後段)
太平烟月朝元殿, 兩行歌舞羅曲讌. 태평연월조원전, 양행가무라곡연 再拜陳三願, 재배진삼원 一願龜齡鶴壽, 二願星耀海潤, 三願康衢謠擊壤歌. 일원구령학수, 이원성요해윤, 삼원강구요격양가. 羣生老少同懽忭. 군생노소동환변.후단(後段)
태평연월 조원전(朝元殿)에서 두 줄로 춤추고 노래하며 작은 잔치 펼쳤네. 거듭 절하고 세 가지 소원 아뢰나니 첫째는 거북처럼 학처럼 수를 누리시고 둘째는 덕은 별처럼 빛나고 은택은 바다처럼 윤택하며, 셋째는 강구요(康衢謠),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며 남녀노소 함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선모 창:성수무강사(聖壽無疆詞)
高懸北斗衆星樞, 平對南山鎭國維 고현북두중성추, 평대남산진국유. 聖壽無疆亦如此, 仙桃萬朶復千枝. 성수무강역여차, 선도만타복천지선모 창:성수무강사(聖壽無疆詞)
높이 걸린 북두성은 뭇별의 중심이고 마주한 남산은 나라 안정시키는 벼리로다. 성수(聖壽) 한이 없으심도 또한 이와 같으리니, 만 개 선도(仙桃)가 천 가지에 다시 열리리라.협무 병창:해동금일사(海東今日詞)
海東今日太平天, 瑞日祥雲耀繡筵. 해동금일태평천, 서일상운요수연. 瑤池蟠桃王母獻, 慶春不老八千年. 요지반도왕모헌, 경춘불로팔천년.협무 병창 : 해동금일사(海東今日詞)
해동은 오늘 태평한 날 상서로운 해와 구름이 잔치 자리를 비추고 요지(瑤池)[곤륜산에 있는 연못, 서왕모가 사는 곳]의 반도(蟠桃)를 서왕모가 바치나니, 팔천년 늙지 않는 봄*을 축하하네.회무 창:응천장지사(應天長之詞)
聖人應祿兮, 天長地久. 성인응록혜, 천장지구. 寶齡彌高兮, 一德彌邵. 보령미고혜, 일덕미소. 翳金芰兮, 蔭孔蓋. 예금기혜, 음공개. 從閬浪風兮, 降瓊島. 종낭랑풍혜 강경도. 覽光耀兮, 玉墀稽首. 남광요혜 옥지계수. 獻禎祥兮, 華筵舞蹈. 헌정상혜 화연무도. 五音紛兮繁會. 오음분혜번회. 遏雲霄兮縹緲. 알운소혜표묘.회무 창 : 응천장지사(應天長之詞)
성인께서 누리실 복록이여, 하늘처럼 땅처럼 장구하기를! 보령이 높으면 높을수록, 한결같은 덕 더욱 밝아지기를! 금빛 마름을 일산 삼아 그늘을 드리우고 낭풍산(閬風山)[곤륜산 꼭대기 신선이 사는 곳]에서 경도(瓊島)[북경 궁궐]로 내려왔네. 빛나는 분을 뵈옵고 옥섬돌에 머리 조아린 뒤 길조를 아뢰고서 잔치 자리에서 춤을 추네. 오음(五音)은 질펀하고 어울려 뒤섞이어 멈춰 있는 하늘 구름까지 아득히 울리노라.협무 창:파자사(破子詞)
寶箏嬌放中腔曲, 錦瑟高張入破絃. 보쟁교방중강곡, 금슬고장입파현. 聖化淸平無一事, 年年歲歲似今年. 성화청평무일사, 연년세세사금년.협무 창 : 파자사(破子詞)
쟁(箏)은 씩씩하게 중강곡(中腔曲)을 연주하고, 금슬(錦瑟) 줄 팽팽히 죄어 입파(入破)의 곡을 타는구나. 성군의 교화로 맑고 태평하여 아무 일도 없으니 연년세세 올해와 같기를![죽간자 구호]
雅奏旣闋, 仙侶言旋. 아주기결, 선려언선. 再拜階前, 相將好去. 재배계전, 상장호거.[죽간자 구호]
청아한 음악 연주 마친 뒤 선녀들 돌아가려 섬돌 앞에서 두 번 절하고 함께 어울려 떠납니다.[선모 치어]
九如頌騰, 慶太平之有象. 구여송등, 경태평지유상. 三山路返, 指後期之無窮. 삼산로반, 지후기지무궁.[선모 치어]
소리 높여 아홉 가지의 만수무강하는 경지를 송축하니 태평성대 기상이 있음을 축하하기 때문이고 삼신산(三神山)으로 돌아가는 것은 뒷날 기약이 끝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원문 출처: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1』 번역: 강명관
○ 반주 음악
반주 음악은 〈보허자령(步虛子令)〉, 〈향당교주(鄕唐交奏)〉, 〈파자(破子)〉이다. 〈보허자령〉-〈향당교주〉-〈보허자령〉-〈향당교주〉-〈파자〉-〈향당교주〉-〈보허자령〉 순서로 연주한다. 국립국악원 소장 『정재무도홀기』와 『여령홀기』에는 반주음악이 〈보허자령〉이고, 『(신축)진연홀기』(1868)에는 〈만년지곡(萬年之曲) 보허자령〉으로, 『무동홀기』에는 〈연백복지곡(演百福之曲) 보허자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른 반주음악의 이름은 동일하다. 현재 반주음악은 〈보허자〉와 〈향당교주〉로, 〈파자〉를 연주하지 않는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순조 『(기축)진찬의궤』에 기록된 무동의 복식은 머리에 각건(角巾)을 쓰고, 상의는 홍포(紅布), 하의는 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를 입고, 띠는 남야대(藍也帶)를 두르고, 신은 흑화(黑靴)를 신는다. 중무와 죽간자는 머리에는 복두(幞頭)를 쓰고 상의는 남포(藍袍), 하의는 백질흑선중단의를 입고, 띠는 홍야대(紅也帶)를 두르고, 신은 흑화를 신는다.
여령의 복식은 순조 『(기축) 진찬의궤』에는 별도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고종 24년(1887) 『정해 진찬의궤』에서 머리에는 화관(花冠)을 쓰고, 상의는 황초단삼(黃綃單衫)을 입고, 하의는 남색 치마[藍色裳]를 입고 홍초상(紅綃裳)을 덧입고, 띠는 홍단금루수대(緞金鏤繡帶), 오색 한삼(五色汗衫)을 들고 초록혜(草綠鞋)를 신는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1829년 초연에는 무동이 추었으나, 정해년 (1887, 고종24) 진찬에서 여성 무용수들이 연백복지무를 추었다. 전체 진행은 유사하지만 죽간자가 구호를 하지 않고, 선모가 중무(中舞)를 행하여 치어(致語)를 전단(前段) 후단(後段)으로 나누어 창하였다. 이후 1892년(고종 29) 임진년 진찬, 1901년 7월 신축년 진연, 1902년 임인년 진연에서 무동정재와 여령정재로 연행되었다. 근대에는 1923년 3월 23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열린 ‘순종황제 오순탄신기념’ 연회에서 연백복지무가 추어졌고, 국립국악원 주최로 1982년 4월 7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전통무용발표회’와 1992년 4월 22~23일 양일간 열린 ‘전통, 창작무용 발표회’에서 공연되었다. 현행 연백복지무는 『정재무도홀기』에 기록되어 있는 구성과 유사하지만 구호・치어・창사가 축소된 형태로 연행되고 있다.
연백복지무는 순조 29년(1829) 효명세자가 당악정재의 형식을 빌어 창작한 것으로, 죽간자 구호와 선모 치어를 포함해 창사가 여섯 번이나 있어 비교적 노래가 많은 정재라는 점이 특징이다.
『(기축)진찬의궤』(1829) 『(임진)진찬의궤』(1892) 『(신축)진연의궤』(1901) 『(임인)진연의궤』(1902) 국립국악원 소장 『정재무도홀기』 『(신축)외진연홀기』(1901) 『(신축)진연홀기』 『(신축)무동흘기』 『(신축)여령홀기』
송방송 외 3인, 『한국음악사료연구회 국역총서 8. 국역 『순조기축진찬의궤 권3』, 민속원, 2007. 이흥구ㆍ손경순, 『한국궁중무용총서 10』, 보고사, 2010.
배소정(裵紹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