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악정재에서 죽간자가 부르는 노래.
구호의 기원은 중국 고대 가무극에서 배우가 극의 서두(序頭)에 극의 정황을 낭송(朗誦)하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본래 중국에서는 5언이나 7언시 형식의 '구호'와 병려체(駢儷體) 산문 형식의 '치어(致語)'가 문체상 명확히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이 형식은 당나라 문장가들을 거쳐 송(宋)·원(元)대 궁중 의례에서 정형화되었다. 이것이 고려 문종 대에 당악정재와 함께 유입되었으나, 『고려사』「악지」나 『악학궤범』을 보면 양자의 개념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혼용되는 양상을 보인다.
〇 유형
고려시대 '구호·치어'는 문헌상 두 가지 다른 용례로 나뉘어 사용되었다. 하나는 행사 전체의 서장의 기능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 정재의 도입부 기능을 것으로, 무용수가 춤의 내용을 묘사하고 춤을 바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의 '구호' 개념인 ‘진구호(進口號)와 퇴구호(退口號)가 여기에 해당한다. 노랫말의 형식은 5언/7언 절구의 시(구호)나 병려체 문장(치어)이 혼용되었으며, 내용은 왕에 대한 송축과 춤의 소개가 중심이 되었다.
〇 가창
구호는 무용수가 반주없이 낭송조의 단순한 선율형에 얹어 부른다.
〇 동작
구호를 부를 때의 동작은 1951년 국립국악원 개원 이후 김천흥 등에 의해 정비된 것이다. 무원이 죽간자를 잡을 때는 동쪽에 선 좌죽간자는 오른손을 위로, 서쪽에 선 우죽간자는 왼손을 위로 오게 하여 양손으로 잡는다. 구호를 부를 때는 죽간자를 바닥에 놓은 경우와, 손에 쥐고 부르는 두가지의 경우가 있다. 죽간자를 바닥에 내려놓는 경우에는 ㉠죽간자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舞進], ㉡북쪽을 바라보고 죽간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한 손(바깥쪽 손)은 눈썹 위치로, 다른 한 손(안쪽 손)은 가슴 위치로 올려 들고 부른다. 죽간자를 쥔 경우에는 ㉠죽간자를 잡고 앞으로 나아가[舞進], ㉡죽간자를 그대로 든 상태에서 구호를 부른다.
구호 부를 때 무구[죽간자]를 바깥쪽 손은 위로 안쪽 손은 아래로 잡는 춤동작
〇 역사적 변천
고려 문종 대에 중국 송나라의 '치어' 형식에서 유래하여 유입된 구호는 조선시대로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문인들이 행사 서장으로서의 구호를 짓는 관습은 정도전, 변계량 등 일부를 제외하고 사라졌고, 춤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기능만 전승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전래의 당악 정재 외에 새로 창제된 당악정재에도 적용되어 <헌선도>, <수연장>, <연화대>, <포구락>, <오양선>, <몽금척>, <수보록>, <근천정>, <수명명>, <하황은>, <하성명>, <성택>, <육화대>, <곡파>, <연백복지무>, <장생보연지무>, <제수창>, <최화무> 등의 춤 기록에서 '구호' 또는 '구호치어'라는 용어가 확인된다. 조선 후기에는 구호, 치어의 기능이 확장되었다. 본래 구호·치어는 당악정재와 향악정재를 구분하는 기준이었으나, <봉래의(鳳來儀)> 등 새로 창작된 향악정재에도 응용되어, 구호와 치어가 궁중 춤의 격식을 높이는 보편적인 의례 장치로 인식이 변화했다. 20세기에 들어 , '구호'의 핵심 기능이었던 '왕에 대한 송축)'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상실되고 정재의 고유한 '형식'으로 전승되었으며, 이 시기의 양식이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〇 반주 음악
구호는 반주 없이 부른다.
〇 복식ㆍ의물ㆍ무구
죽간자
『고려사(高麗史)』
『악학궤범(樂學軌範)』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
『時用舞譜(全)呈才舞圖笏記』, 국립국악원, 1989.
『呈才舞圖笏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건원1400년 개원50년 국립국악원사』, 국립국악원, 2001.
김수경, 「『 동문선 』 소재 치어, 구호를 통해본 고려시대 정재 의 연행양상」 , 『 한국시가연구 』 7, 2000.
김천흥, 『呈才舞圖笏記唱詞譜』, 민속원, 2002.
손선숙, 『궁중정재용어연구』, 민속원, 2008.
손선숙, 『한국궁중무용사』, 보고사, 2017.
이혜구 역주, 『신역악학궤범』, 국립국악원, 2000.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79.
국립국악원아카이브(https://archive.gugak.go.kr)
손선숙(孫善淑),송혜진(宋惠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