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궁중 정재에서 특정 선율(악절)에 맞춰 노래(창사)를 부르는 형식 또는 그 연행 방식. 2. 조선 순조 때 효명세자가 지은 노랫말을 관악 <보허자>의 제1장과 제2장 선율에 얹어 부른 독립 악곡.
악곡 <수악절창사>는 1829년 순조의 진찬의에서 정재 <장생보연지무>의 악장으로 연행된 창사로, 효명세자가 지은 노랫말과 <보허자> 선율이 결합된 독자적 악곡이다. 이후 정재에서 분리되어 1960년대부터 독립된 무대음악으로 공연되었으며,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당피리 중심의 관현악 편성과 무대 배치가 정형화되었다. 현대에는 대규모 성악과 기악 편성으로 연행되며, 채보자에 따라 선율과 시김새에 차이를 보인다. 가곡 선율을 차용한 여타 창사와 달리 <보허자> 선율을 기반으로 한 점이 주목된다.
한자 ‘수(隨)’와 ‘악절(樂節)’ ‘사(詞)’를 결합하여, ‘악절에 따라 사를 부른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은 정재에 창사가 도입된 이래 보편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후반에 편찬된 이유원의 『임하필기』에서 ‘악절에 따라 금척의 노랫말을 부른다’는 것을 ‘수악절 창금척사(隨樂節。唱金尺詞)’라고 하였고, 여러 홀기에서 창사를 지시하는 술어로 ‘수악절창사’를 사용된 예가 다수 확인된다. 현행 독립된 악곡 개념의 <수악절창사>는 1829년 순조의 40세 생일을 기념한 진찬에서 <장생보연지무> 연행에 쓰기 위해 효명세자가 지은 사를 보허자의 1장과 2장 선율에 얹어 부른 것이다. 조선 후기에 궁중 정재에는 ‘창사’, ‘치어’, ‘구호’ 등의 노래 형식이 사용되었으며, 이를 통칭해 ‘악장(樂章)’이라 불렀는데, 효명세자는 <연백복지무>, <장생보연지무> 등의 악장을 직접 지었고, 김창하가 이를 음악적으로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재와 분리되어 현재와 같이 독립된 악곡으로 연행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 개요 ‘수악절’이라는 말은 악절에 따라 창사를 한다거나, 동작을 하는 것을 나타내는 일반 술어로 사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생보연지무> 외의 여러 정재 서술에서도 ‘수악절창사’라는 표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관악 <보허자>의 1, 2장 선율을 곡조로 활용한 ‘천문해일선홍’의 창사는 악보 및 공연 프로그램에서 ‘보허자(수악절),’, ‘보허자의 수악절창사’, ‘보허자(수악절창사)’, ‘수악절창사’와 같이 계기에 따라 다양하게 표기되었다. 이는 <보허자>의 용도가 확장된 예로 인식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단일 곡명으로 사용된 <수악절창사>는 여러 명칭 중의 하나가 정착된 예라고 할 수 있다. ○ 내용과 구성 현행 <수악절창사>는 전단과 후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전단은 자연의 장관과 궁중의 화려함을 묘사하는 시어로 이루어져 있다. 천문해일선홍 天門海日先紅 바다에 뜨는 해가 먼저 붉다. 강사옥부 絳紗玉斧 붉은 깁 옥(玉)토끼 서기이융 瑞氣怡融 상서로운 기운은 어리엇는데, 승천가 주천악 承天嘉 奏天樂 하늘에 아름다운 것을 이어 천악(天樂)을 아뢰다. 금봉은아일총총 金鳳銀鵝一叢叢 금봉(金鳳)과 은아(銀鵞)가 하도 총총한데, 양란채 무회파 揚蘭茝 舞廻波 향기로운 난초, 춤은 돌라 물결같고, 세세류 담담풍 細細柳 澹澹風 봄비처럼 가는 버들 아으 담담(澹澹)한 바람. 후단은 궁중 잔치의 장면과 함께 임금과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는 세 가지 소원을 담고 있다. 구중춘색반도연 九重春色蟠桃宴 구중(九重) 둥궐 봄빛은 짙은데, 번도연(蟠桃宴) 잔치런가 나삼엽엽무일편 羅衫葉葉舞一遍 깁소매 잎잎이 춤 한바탕이로고 재배진삼원 再拜陳三願 두번 절하고 세번 원하옵느니 일원성수무강 一願聖壽無疆 첫째는 성수무강 이원조야청안 二願朝野淸晏 둘째는 조야(朝野)가 맑게 평안하고 삼원균천낙구여송 三願勻天樂九如頌 셋째는 천악(天樂)을 고로하고, 세세년년 차배헌 歲歲年年 此盃獻 세세연년이 잔 드리과저 ( 번역문 출처: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77) ○ 연행적 특징 창사는 정재 <장생보연지무>에서 본래의 형태대로 불리는 한편, 독립 악곡으로 명명된 <수악절창사>는 편종·편경·당적·당피리·대금·해금·아쟁으로 구성된 악대의 반주에 여러 명이 제창하는 양식으로 공연된다. 악대는 계기에 따라 선율 악기의 수를 복수로 편성하거나, 창사를 부르는 성악 인원을 다수의 남녀로 구성하여 대규모로 확장되기도 한다. 무대에서 가창자들은 연주자들의 앞에 배치된다. ○ 역사적 변천 현행 악곡으로서의 <수악절창사>는 1829년 조선 순조의 40세 진찬의에서 정재 <장생보연지무>의 악장으로 연행된 것을 기점으로 한다. 이때 효명세자가 직접 지은 노랫말을 장악원 전악 김창하가 <관악 보허자>의 제1장과 제2장 선율에 얹어 완성하였으며, 당시에는 선모와 협무가 춤을 추는 가운데 삼현육각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형식이었다. 1901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윤용구의 『국연정재창사초록』에는 일부 수정된 노랫말이 실려 있고, 현재도 이대로 부른다. 즉 효명세자 원작의 전단 마지막 구 ‘미미류 담당풍(靡靡柳 澹澹風)’의 ‘미미’가 ‘세세(細細)’로, 여섯 째 구 ‘삼원균천낙노래의(三願勻天樂 老萊衣)’의 ‘노래의’는 ‘구여송(九如頌)‘으로 바뀌었다 1960년대부터는 정재에서 분리되어 독립된 무대 음악으로 연행되기 시작하였으며, 국립국악원의 공연을 중심으로 당피리 중심의 관현악 편성과 무대 배치가 정형화되었다. 오늘날에는 대규모 성악과 기악 편성으로 공연되며, 채보자에 따라 선율과 시김새에 차이를 보이고, 악곡명 또한 다소 다르게 표기되는 경우가 있다.
<수악절창사>는 효명세자가 직접 창작한 노랫말을 당악 계통의 <보허자> 선율에 얹어 부른 창사로, 당시 가곡의 농·낙·편 선율을 차용한 여타 창사들과 구별되는 독자성을 지닌다. 특히 정재의 일부로 기능하던 창사가 현대에 이르러 독립된 악곡으로 전승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며, 궁중 음악의 형식이 공연 예술로 변모한 과정을 보여준다. 이 악곡은 세부적인 선율 변화와 시김새의 활용, 다수의 가창자가 대규모 악대 편성에 맞춰 제창하는 방식으로 정착되어 독창적인 연행 양식을 형성하였다. 다만, 여러 채보에서 악곡명이 다양하게 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에서는 ‘악절에 따라 사를 노래한다’는 일반적 의미의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는 점은 음악적 정체성과 명명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기축진찬의궤(己丑進饌儀軌)』 『신축진연의궤(辛丑進宴儀軌)』
장사훈,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77. 김우진,「시조 가곡창사의 명칭에 대한 검토」, 『만당이혜구박사구순기념 음악학논총』, 이혜구학술상위원회, 1998. 송방송, 『한겨래음악대사전』, 보고사, 2012. 문화포털, 예술지식백과(https://www.culture.go.kr/knowledge/encyclopediaList.do?code_value=C&ccm_code=C011&ccm_subcode=C111).
김우진(金宇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