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 정재에서 무용수들이 부르는 노래.
창사는 중국 고대 악무의 ‘가사(歌詞)’에서 유래하여 고려 시대에 유입된 궁중 정재의 구성 요소로, 춤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무용수가 부르는 노래이다. ‘구호(口號)’가 당악 정재에만 쓰이는 것과 달리, 창사는 당악 정재와 향악 정재 모두에 폭넓게 사용되었다. 노랫말은 한시(漢詩)와 한글 가사로 나뉘며, 이에 따라 가창 방식도 구별된다. 한시 창사는 ‘ㄱ, ㄹ, ㅂ’ 발음 규칙 등 고유한 법칙(여창 가곡 선율 기반)을 따랐고, 한글 가사 창사는 조선 후기에 가곡(歌曲)이나 가사(歌詞)의 선율을 적극 차용하여 불렀다. 이러한 창사는 정재의 극적 서사성을 강화하며, 궁중 예술이 시(詩)·노래(歌)·춤(舞)이 결합된 '악가무일체'의 종합 예술이었음을 보여 주는 핵심적 가치를 지닌다.
〇 음악적 구성과 특징
1. 가창
창사는 정재마다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선모(仙母)·중무(中舞) 등 특정 무용수가 혼자 부르는 독창, 무용수 전체가 함께 부르는 제창, 혹은 무용수들이 순차적으로 부르는 윤창(輪唱)의 형태를 띤다 .노랫말은 정재의 서사(敍事)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춤의 감흥을 표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주로 한시나 우리말 가사로 되어 있으며, 향악 정재 <처용무>의 창사처럼 주술적 의미를 담은 경우도 있다.
창사의 가창 방식은 노랫말의 형태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시(漢詩) 창사는 정해진 선율에 한문 가사를 얹어 낭독풍으로 부른다. 이는 1937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사장 김영제가 밝힌 일정한 법칙을 따르는데, 장사훈의 연구에 따르면 5언·7언 등 시의 형식에 따른 기본 가락이 존재한다. 특히 가사 중 ㄱ, ㄹ, ㅂ 발음의 글자는 창법을 달리하고, '성상(聖上)', '폐하(陛下)' 등 군주 관련 구절은 반드시 이 ㄱ, ㄹ, ㅂ의 창법을 따라 부르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 선율이 여창 가곡 계면조 이수대엽의 선율을 응용한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한글 창사는 조선 후기 19세기에 시도되었다. 이 방식은 한시 창사처럼 새로운 규칙을 만들기보다, 당시에 유행하던 가곡이나 가사의 선율을 직접 차용한 것이다. <선유락>에서는 가사 <어부사>의 선율을, <향령무>, <봉래의>에서는 가곡의 '농·낙·편' 선율이 사용된다.
2. 동작
현재 국립국악원 무용단에서 창사를 부를 때의 동작은 김천흥(金千興, 1909~2007)과 이흥구(李興九, 1940~?)가 『정재무도홀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으로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수수이무(垂手而舞) 동작으로 부르는 것, 둘째는 정재마다 구성된 고유의 춤 동작을 하면서 노래하는 것(예: 〈처용무〉에서 양손을 허리에 대고 노래), 셋째, 양손을 모은 자세(염수) 그대로 위로 올려 눈썹 가까이로 들고 부르는 것, 넷째, 양손을 펴거나, 올렸다가 한 손은 눈썹 가까이에, 한 손은 가슴 위치에 나누어 들고 부르다가 손 위치를 바꾸는 것, 다섯째, 정재마다 사용하는 특정 무구(舞具)를 들고 부르는 것(예: <헌선도>에서는 선도반(仙桃盤)을 들고 부름)이다.
〇 반주 음악
현재는 창사를 반주 없이 부르기도 하고, 도드리장단이나 타령장단 등 정재에서 주어진 장단에 맞춰 부르기도 한다. 특히 조선 후기에 가곡 선율을 차용한 〈향령무〉, 〈봉래의〉, 〈육화대〉 등은 〈가곡〉의 장단과 선율을 바탕으로 부른다.
〇 복식ㆍ의물ㆍ무구
창사를 부를 때에는 손에 한삼(汗衫)을 착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무구를 사용하는 정재에서는 무구를 집어 들기 전에 창사를 부르기도 한다.
〇 역사적 변천
역사적으로 창사는 연향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유연하게 운용되었다. 『정재무도홀기』에 따르면, 때로는 창사를 부르기도 하고 부르지 않기도 했다. 또한 무용수의 역할이나 성별에 따라 창사 연행에 차이를 두었다. <무애무>의 경우, 1901년(광무 5년) 고종의 50세 탄신 진연에서 여령은 창사를 모두 불렀으나, 같은 춤을 무동이 출 때는 창사를 부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창사를 부르는 동작 역시 궁중 정재의 기본 법례에 따라 역할별(선모, 협무), 위치별로 양식이 구분되었다. 음악적으로도 중요한 변천이 있었는데, 조선 후기 19세기 순조 대 효명세자가 정재를 창작할 때, 기존의 한시 창사 방식 외에도 민간의 가곡이나 가사 선율을 정재 창사로 적극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20세기 전반기 이왕직아악부에서는 장사훈의 「현행 창사의 부르는 방법」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한시 창사'의 구체적인 법칙들(예: ㄱ, ㄹ, ㅂ 발음 규칙)이 체계화되어 현대로 이어졌고, 1951년 개원 이후로 김천흥 등에 의해 창사를 연행하는 춤 동작도 정비되었다.
창사는 춤의 내용을 구체적인 노랫말로 전달하여 정재의 극적 서사성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이다. 특히 향악 정재까지 아우르며 폭넓게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춤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구호’의 의례적·선언적 기능과는 명확히 구별된다. 창사는 궁중 정재가 단순한 춤이 아니라 시와 노래, 춤이 결합된 ‘악가무일체’의 종합 예술이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고려사(高麗史)』
『악학궤범(樂學軌範)』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
김승란, 「정재(呈才) 창사(唱詞) 선율 연구- 장사훈『한국전통무용연구』의 <무고>와 <가인전목단>을 중심으로-」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학위 논문, 2022.
장사훈, 「현행 창사의 부르는 법」, 『한국전통무용연구』, 일지사, 1979.
손선숙(孫善淑),송혜진(宋惠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