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선유락은 궁중춤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군무로 무원은 집사(執事)ㆍ동기(童妓)ㆍ내무(內舞)ㆍ외무(外舞)로 구성된다. 집사 2명은 구성되며 배 앞에 서서 군례를 호령하기 때문에 호령집사(號令執事) 혹은 청령집사(聽令執事)라고도 하였다. 1795년 봉수당 진찬을 그린 〈화성능행도병풍〉이나 〈원행정리의궤도〉를 보면 배 위에 집사가 2명이 서 있는데, 선유락이 궁중에서 처음 연행될 때는 「막북행정록」에서 동기를 소교(小校)로 꾸몄던 것과는 다르게 동기를 따로 두지 않고 집사가 배 위에 올라 호령하였다.
동기 2명은 배에 앉아 돛을 잡는 집범(執帆, 거범(擧帆)이라고도 함)과 닻을 잡는 집정(執碇; 거정(擧碇)이라고도 함)을 나누어 담당하였다. 그리고 때에 따라 노를 잡는 집노(執櫓) 역할을 겸하기도 하였다. 많은 인원이 편성될 때는 동기ㆍ집범ㆍ집정ㆍ집노 등의 역할을 각기 따로 편성하였다. 또한 무동이 선유락을 출 때는 동기를 동자(童子)로 대체하였다.
둥글게 배를 에워싸고 춤을 추는 무용수는 내무(內舞)와 외무(外舞)로 나뉜다. 내무는 4명 혹은 6명으로 구성되며, 채선 옆에서 줄을 끌어 배를 움직이는 역할이기 때문에 예선(曳船)이라고도 하였다. 외무는 15명에서 37명까지 다양한 인원 구성으로 내무의 바깥에서 큰 원을 그리며 춤추었다. 군례를 행할 때는 내무와 외무가 순령수(巡令手)가 되어 집사의 호령에 답하였다.
○ 절차와 구성
선유락의 구조는 군례 의식에 맞춰 행선준비→행선→하선으로 진행된다. 먼저 악사가 채선을 인솔하여 가운데에 놓고, 동기는 배 중앙에 좌우로 등지고 앉으며, 내무와 외무는 좌측으로 돌면서 서로 연이어 선다. 행선준비는 집사 두 명의 호령으로 군례가 진행되는데, 초취(初吹)ㆍ이취(二吹)ㆍ삼취(三吹)로 세 차례 나각을 불어 출발을 알렸다. 이어 ‘명금이하(鳴金二下)’를 호령하여 징을 두 번 치면 악대가 대취타를 연주하고, 집사가 다시 행선하라고 호령하였다. 배가 바다로 나가는 행선에서는 내무와 외무가 배를 끌고서 회무하며 〈어부사(漁父詞)〉를 노래하였다. ‘명금삼하(鳴金三下)’의 호령으로 징을 세 번 치면 음악이 그치면서 퇴장하는 것으로 하선을 표현하였다.
선유락은 춤사위가 단순한 편이다. 군례 의식에서는 집사기의 호령에 따라 무용수가 순령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춤사위가 없다. 행선에서는 무용수가 양팔을 어깨 높이로 펼쳐 든 상태로 배를 에워싸고 둥글게 도는데, 배를 감싸고 도는 회무(回舞)는 배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축원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재현된 선유락은 홀기의 기록보다 다양한 동작과 춤사위가 추가되었다.
○ 창사
선유락은 ‘행선(行船)하라’는 호령 후에 무용수들이 일제히 배를 끌고 회무하며 〈어부사〉를 노래한다.
이때 부르는 〈어부사〉는 고려 때부터 전하던 「어부가(漁父歌)」를 이현보(李賢輔, 1467~1555)가 고쳐 지은 것으로 조선 후기 가사로 정착되었다. 내용은 늙은 어부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유유자적한 생활을 그린 것인데, 배를 띄우고 노를 젓는 등의 내용이 선유락의 춤 전개와 연결된다. 선유락에서는 가사 〈어부사〉의 전 8장 중 제1장과 제2장을 노래한다. 〈어부사〉의 노랫말은 한문과 한글이 섞여 있어서 의궤에는 가사를 싣지 않았으나 홀기에는 모두 실려 있으며, 『교방가요(敎坊歌謠)』 (1865)와 『가곡원류(歌曲源流)』(1872)에도 실려 있다.
雪鬢漁翁(설빈어옹)이 住浦間(주포간)야
自言居水勝居山(자언거수승거산)을
여라 여라
早潮纔落晩潮來(조조재락만조래)라
至匊悤至匊悤於思臥(지국총지국총어사와)니
倚船漁父一肩高(의선어부일견고)라
귀밑머리 하얀 늙은 어부 개펄 사이에 살면서
“물에서 사는 것이 산에서 사는 것보다 낫다”고 스스로 말하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아침 물결이 겨우 물러나자 저녁 물결이 밀려오는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하니
배에 기댄 어부 한 어깨가 으쓱거린다
○ 반주음악
선유락의 반주음악은 여러 연향의궤에 〈만파정식지곡(萬波停息之曲)〉 등의 아명과 함께 〈향당교주(鄕唐交奏)〉 혹은 〈원무곡(原舞曲)〉으로 기록되어 있고, 각종 홀기에는 행선할 때 〈취타(吹打)〉를 연주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취타〉는 내취가 연주하는 〈대취타〉를 가리킨다.
내취 악대는 정수(鉦手)ㆍ나수(鑼手)ㆍ호적수(號笛手)ㆍ자바라수(啫哱囉手)ㆍ고수(鼓手)ㆍ나각수(螺角手)ㆍ나발수(喇叭手)로 구성되었다. 『교방가요』의 ‘선악(船樂)‘에 대취타와 삼현육각 편성의 두 악대가 묘사된 점으로 미루어, 궁중의 선유락에도 내취 이외에 관현 반주가 따랐을 것인데 기록에는 〈향당교주〉를 연주한 것으로 나타난다.

현재 국립국악원에서 재현한 반주음악은 무용수들이 배를 끌고 입장할 때 〈대취타〉를 연주하고, 〈어부사〉를 부를 때는 장구 반주가 따른다. 무용수들이 일제히 배를 둘러싸고 회무할 때는 〈타령〉을, 끈을 잡고 배를 움직일 때는 〈양청도드리〉를 연주한다. 이밖에도 무용수가 절을 할 때와 호령집사가 ‘명금삼하’를 호령한 후 춤을 마칠 때 짧게 음악이 들어간다. 악대는 〈대취타〉 악대와 관현악 반주 악대의 두 대로 편성된다. 악기 편성은 유동적인데, 대취타 악대는 태평소ㆍ나각ㆍ나발ㆍ용고ㆍ자바라ㆍ징ㆍ장구가 편성되며, 관현악 반주 악대는 집박ㆍ피리ㆍ대금ㆍ해금ㆍ장구ㆍ좌고 등의 삼현육각 편성에 단소ㆍ가야금ㆍ거문고ㆍ양금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선유락 복식은 집사ㆍ동기ㆍ무원의 복식이 각각 다르며 같은 역할이더라도 기록에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집사는 무관 공복인 남색 철릭[첩리(貼裏)]에 진홍색의 광대(廣帶)를 띠고, 호수(虎鬚;융복을 입을 때 쓰는 붉은 갓의 네 귀에 꾸밈새로 꽂던 장식)를 꽂은 주립(朱笠)을 쓰며, 수화자(水靴子)를 신는다.




어깨에는 동개(筒箇; 활과 화살을 꽂아 넣을 수 있도록 만든 도구)를 두르고, 허리에 환도(環刀; 군복에 갖추어 차던 군도(軍刀))를 차며, 손에는 등채[등편(籐鞭); 등채라고도 함. 무장(武裝)할 때 갖추는 의장(儀仗)용 막대]를 잡는다. 동기(童妓)는 화관을 쓰고 초록 갑사 당의를 입으며 홍사 치마에 홍주 바지를 입고 홍단수대(紅緞繡帶)를 매며 초혜(草鞋)를 신는다.



내무와 외무를 담당하는 무원들은 화관을 쓰고 긴 길이의 남초상(藍綃裳)을 착용한 후 위에 다시 겹쳐 입는 앞치마 형태의 작은 덧치마인 홍초상(紅綃裳)을 입었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황초단삼을 입고 홍단금루수대(紅緞金縷繡帶)를 띠었다. 팔에는 오색한삼(五彩汗杉)을 끼우고 신발은 초록혜(草綠鞋)를 신었다.

선유락에서 가장 중요한 무구는 채선(彩船)이다. 채선은 배 형태의 무구로 배의 옆면과 돛에는 화려한 채색이 되어있다. 배의 몸체 양편으로는 화조(花鳥)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배 바닥에는 평평하게 판을 깔았고, 배 중앙에는 대나무 돛대에 두 마리 용과 구름 문양이 금박으로 화려하게 그려져 있는 홍운문단(紅雲紋緞)으로 된 돛을 걸었다. 경우에 따라 돛대 끝에는 초롱 한 쌍을 달기도 했다. 뱃머리는 용머리 조각으로 장식하였으며, 닻과 닻감개를 설치하였다. 배의 후미에는 바람의 방향을 보기 위해 세운 점풍기(占風旗) 두 개와 노를 달았다. 채선의 받침대는 회전형으로 만들어 배의 옆면 네 곳에 끈을 달아 잡고 돌릴 수 있도록 하였다.
김은자(金恩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