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대옥촉은 1828년(순조 28)에 효명세자의 어머니 순원왕후의 보령 40세를 기념하는 연경당 진작례(進爵禮)에서 처음 연행되었다. 이 진작례는 효명세자가 열한 편의 악장과 열일곱 편의 새로운 정재를 설행하여 왕실의 효를 실천하고 정치 질서의 안정을 도모한 행사의 일환이었다. 명칭 중 ‘춘대(春臺)’는 봄날 올라가서 풍경을 즐기는 대(臺)를 뜻하며, 옥촉은 사철의 기후가 고르고 날씨가 화창하여 일월이 환히 비치는 것으로 태평성세를 형용하는 말이며, 또한 악률(樂律)의 이름이기도 한다. 춘대옥촉을 설명한 『진작의궤』의 정재악장에 “『수서(隋書)』 「율력지(律曆志)」에서 동지(冬至)의 성(聲)은 황종이 궁이 된다. 일부삼십사율(一部三十四律)에 옥촉의 이름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므로 춘대옥촉은 봄의 전망 좋은 전각에서 태평성세를 축하하기 위해 베푸는 악(樂)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춘대옥촉은 태평성세를 즐기기 위해 베푼 잔치에 신선들까지 출현하여 윤대 위에서 태평성세를 축하하고 기원하는 악(樂)을 행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무대 장치로 윤대(輪臺)를 설치하고 그 위에서 춤이 추어지는데, 보등(寶燈)을 든 4인의 무동(舞童)과 당(幢)을 든 2인 무동이 추는 춤이다.
○ 절차와 구성
춘대옥촉은 향악정재이면서도 당악정재의 가창 방식인 진구호(進口號)-사(詞)-퇴구호(退口號)의 순서로 노래하며 진행되는 구조적 특징을 보인다. 춤의 대형은 순환적이며 반복적인 변화를 통해 입체적으로 구성된다.
도입부에서 악사는 음악 연주가 시작되면 윤대를 받든 무동을 거느리고 전각 안으로 들어가 윤대를 설치한다. 윤대 아래에서 전후대형(前後隊形)으로 보등을 든 4인의 원무와 당을 든 2인의 집당이 대오를 구성한다. 집당 2인이 진구호로 춤의 시작을 알린다.
전개부로 넘어가면 원무 4인이 윤대의 사방에 서고, 집당 2인은 윤대 위 동서로 나뉘어 선다. 이때 윤대 위의 무원들은 「춘대옥촉사」를 노래한다. 노래 후 원무 4인은 상대(相對)·상배(相背)·대면(對面)하고, 선전(旋轉)하며 대오를 바꾸는 회전의 발 구름으로 곡선적 변화를 꾀한다. 춤이 끝나면 무용수 6인이 윤대 아래로 내려간다.
종결부에서는 무용수 6인이 윤대 아래로 내려가 초입 대형으로 돌아가고, 집당 2인이 퇴구호를 하고 춤을 마친다.
○ 창사
창사는 진구호, 사(詞), 퇴구호 세 편을 부른다. 창사는 중국의 『도서집성(圖書集成)』에 근거를 두며, 진구호는 신선들이 연회에 참석했음을 보고하고, 사는 보등을 매단 등불이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이며, 퇴구호는 신선들이 하직을 청하는 내용을 담는다. 진구호와 퇴구호는 집당이, 사(詞)는 보등을 든 원무가 부른다.
원문 |
해설 |
|
「집당 진구호」 |
綺席光華, 盛宴初張. |
비단 자리 빛나는 곳 |
「집등 창사」 |
寶臺高星彩, 燈光點點紅. |
보배로 꾸민 누대 위 별빛 찬란하고 |
「집당 퇴구호」 |
法樂將終, 拜辭華筵. |
법악(法樂)이 이제 곧 끝나려 하매 |
원문: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2』 번역: 강명관
○ 춤사위
춘대옥촉은 윤대 아래에서 시작하여 윤대 위에서 본격적인 춤이 진행된다. 그중 선전환대이무는 빙글빙글 돌며 대오를 바꾸는 동작이다. 이 동작을 통해 곡선적이고 입체적인 대형 변화를 꾀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재무도홀기』에는 무진(舞進)ㆍ무퇴(舞退)ㆍ상대(相對)ㆍ상배ㆍ엽무(葉舞)ㆍ선전 등의 춤사위가 기록되어 있다.
○ 반주음악
『정재무도홀기』에 전하는 반주 음악은 〈향당교주〉이다. 이는 〈관악영산회상〉의 리듬과 선율을 정재 반주에 적합하도록 다듬은 곡으로, 춘대옥촉의 진행에 맞춰 연주된다.
○ 복식·의물·무구
1828년(순조 28) 『(무자) 진작의궤』에는 춘대옥촉의 복식도(服飾圖)와 함께 장치와 무구가 악기도(樂器圖)에 도상으로 전한다. 무동은 머리에 주취금관(珠翠金冠)을 쓰고, 상의로 자라포(紫羅袍), 하의로 남질홍선상(藍質紅縇裳) 등을 입는다. 허리에 학정대(鶴頂帶)를 띠고 비두리(飛頭履)를 신으며, 백우엄요(白羽掩腰)와 백우호령(白羽護領)을 착용한다.
무구는 보등(寶燈)과 당(幢)이다. 특히 무대장치인 윤대(輪臺)는 '춘대'를 형상화하며, 높이가 두 척, 길이와 넓이가 팔 척 오 분인 전각 형태로 붉은 칠과 태평화 장식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사용하였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1828년(순조 28)에 초연한 춘대옥촉의 내용과 형식은 『(무자) 진작의궤』를 통해 알 수 있다. 초연 이후 추어지지 않았고, 20세기 초반 궁중 연향의 단절과 함께 춘대옥촉의 연행도 단절되었다. 현대에 와서 『정재무도홀기』의 기록을 토대로 이흥구(李興九, 1940~ )의 재현 안무로 1997년 늘휘무용단이 복원 공연에 참여하였다. 이후 국립국악원 무용단에 의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김기화(金起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