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창작된 향악정재로, 보등(寶燈)과 당(幢)을 든 무동이 윤대(輪臺) 위에서 태평성대를 축하하고 기원하는 악장을 부르며 추는 춤.
요약
춘대옥촉은 1828년(순조 28)에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로, 전각인 윤대(輪臺) 위에서 보등(寶燈)을 든 4인의 무동(舞童)과 당(幢)을 든 2인의 무동이 추는 춤이다. 창사는 봄의 전망 좋은 윤대에서 신선들까지 출현하여 태평성세(太平聖世)를 즐기며 축하하고 기원한다는 내용으로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형식으로 노래한다.
춘대옥촉은 태평성세를 즐기기 위해 베푼 잔치에 신선들까지 출현하여 윤대 위에서 태평성세를 축하하고 기원하는 악(樂)을 행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무대 장치로 윤대(輪臺)를 설치하고 그 위에서 춤이 추어지는데, 보등(寶燈)을 든 4인의 무동(舞童)과 당(幢)을 든 2인 무동이 추는 춤이다. ○ 절차와 구성춘대옥촉은 향악정재이면서도 당악정재의 가창 방식인 진구호(進口號)-사(詞)-퇴구호(退口號)의 순서로 노래하며 진행되는 구조적 특징을 보인다. 춤의 대형은 순환적이며 반복적인 변화를 통해 입체적으로 구성된다.도입부에서 악사는 음악 연주가 시작되면 윤대를 받든 무동을 거느리고 전각 안으로 들어가 윤대를 설치한다. 윤대 아래에서 전후대형(前後隊形)으로 보등을 든 4인의 원무와 당을 든 2인의 집당이 대오를 구성한다. 집당 2인이 진구호로 춤의 시작을 알린다.전개부로 넘어가면 원무 4인이 윤대의 사방에 서고, 집당 2인은 윤대 위 동서로 나뉘어 선다. 이때 윤대 위의 무원들은 「춘대옥촉사」를 노래한다. 노래 후 원무 4인은 상대(相對)·상배(相背)·대면(對面)하고, 선전(旋轉)하며 대오를 바꾸는 회전의 발 구름으로 곡선적 변화를 꾀한다. 춤이 끝나면 무용수 6인이 윤대 아래로 내려간다. 종결부에서는 무용수 6인이 윤대 아래로 내려가 초입 대형으로 돌아가고, 집당 2인이 퇴구호를 하고 춤을 마친다.○ 창사창사는 진구호, 사(詞), 퇴구호 세 편을 부른다. 창사는 중국의 『도서집성(圖書集成)』에 근거를 두며, 진구호는 신선들이 연회에 참석했음을 보고하고, 사는 보등을 매단 등불이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이며, 퇴구호는 신선들이 하직을 청하는 내용을 담는다. 진구호와 퇴구호는 집당이, 사(詞)는 보등을 든 원무가 부른다.
원문
해설
「집당 진구호」
綺席光華, 盛宴初張.기석광화, 성연초장.麗日舒長, 羣仙來朝.여일서장, 군선내조.
비단 자리 빛나는 곳성대한 잔치 처음 열자,느리고 긴 봄날 뭇 신선 찾아와 문안인사를 올리네.
법악(法樂)이 이제 곧 끝나려 하매화려한 자리에서 절하고 물러나니선학(仙鶴)도 돌아가려고멀리 구름길을 가리킵니다.
원문: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2』 번역: 강명관
○ 춤사위춘대옥촉은 윤대 아래에서 시작하여 윤대 위에서 본격적인 춤이 진행된다. 그중 선전환대이무는 빙글빙글 돌며 대오를 바꾸는 동작이다. 이 동작을 통해 곡선적이고 입체적인 대형 변화를 꾀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재무도홀기』에는 무진(舞進)ㆍ무퇴(舞退)ㆍ상대(相對)ㆍ상배ㆍ엽무(葉舞)ㆍ선전 등의 춤사위가 기록되어 있다.
○ 반주음악『정재무도홀기』에 전하는 반주 음악은 〈향당교주〉이다. 이는 〈관악영산회상〉의 리듬과 선율을 정재 반주에 적합하도록 다듬은 곡으로, 춘대옥촉의 진행에 맞춰 연주된다.○ 복식·의물·무구1828년(순조 28) 『(무자) 진작의궤』에는 춘대옥촉의 복식도(服飾圖)와 함께 장치와 무구가 악기도(樂器圖)에 도상으로 전한다. 무동은 머리에 주취금관(珠翠金冠)을 쓰고, 상의로 자라포(紫羅袍), 하의로 남질홍선상(藍質紅縇裳) 등을 입는다. 허리에 학정대(鶴頂帶)를 띠고 비두리(飛頭履)를 신으며, 백우엄요(白羽掩腰)와 백우호령(白羽護領)을 착용한다. 무구는 보등(寶燈)과 당(幢)이다. 특히 무대장치인 윤대(輪臺)는 '춘대'를 형상화하며, 높이가 두 척, 길이와 넓이가 팔 척 오 분인 전각 형태로 붉은 칠과 태평화 장식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사용하였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1828년(순조 28)에 초연한 춘대옥촉의 내용과 형식은 『(무자) 진작의궤』를 통해 알 수 있다. 초연 이후 추어지지 않았고, 20세기 초반 궁중 연향의 단절과 함께 춘대옥촉의 연행도 단절되었다. 현대에 와서 『정재무도홀기』의 기록을 토대로 이흥구(李興九, 1940~ )의 재현 안무로 1997년 늘휘무용단이 복원 공연에 참여하였다. 이후 국립국악원 무용단에 의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춘대옥촉은 윤대라는 무대장치를 설치하여 그 위에서 여섯 명이 춤추는 무동정재를 새롭게 양식화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특히 향악정재의 간결한 진행 형식에 진구호-사-퇴구호라는 당악정재의 가창 방식을 융합하여 정재의 격을 높이고 예술표현의 양식성을 확장하였다. 또한, 중국 문헌을 인용하여 태평성대와 왕의 성수무강을 기원함으로써 정재의 예술적 감흥을 강화한 조선 후기 정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김명숙,「춘대옥촉의 재현에 관한 고찰」, 『무용예술학연구』 8, 2001.손선숙, 『한국궁중무용사』, 보고사, 2017. 송방송,「조선왕조 정재 및 정재사료의 서설」, 『국악원논문집』 27, 2013.이의강,「순조 무자년(1828) ‘연경당진작’의 성격과 연출 정재들 간의 내적 흐름」, 『민족무용』 7, 2001.조경아, 「순조대 정재 창작양상 : 중국 문헌의 수용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학보』 31, 2003.
집필자
김기화(金起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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