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임 및 용도
『악학궤범』에는 아부(雅部) 제례악을 연주하는 등가와 헌가의 악생과 문무와 무무를 추는 악생, 종묘제례악을 연주하는 등가와 헌가의 악공과 <보태평지무>와 <정대업지무>를 추는 악공 및 의물차비, 그리고 처용무를 추는 무동이 착용한다고 되어있다. 아부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생과 종묘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은 오피리(烏皮履)에 백포말을 착용했고, 처용관복에는 혜(鞋)에 오피리를 착용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오피리와 혜는 신목이 없어 발목이 드러나므로 예를 갖추기 위하여 백포말을 신었다. 『악학궤범』에 따르면 신목이 없는 신발인 리나 혜를 신는 공인은 모두 백포말을 신었다고 한다.
○ 형태 및 구조
백포말의 형태는 『악학궤범』과 『종묘의궤』의 백포말 도식화에서 볼 수 있다. 버선은 형태에 따라 발등의 솔기부분인 수눅이 곧은 ‘곧은목 버선’과 수눅이 사선으로 누은 ‘뉘인목 버선’으로 구분되는데, 『악학궤범』과 『종묘의궤』의 백포말은 모두 ‘뉘인목 버선’이다. 버선은 용도에 따라 ‘일반용 버선’과 ‘예복용 버선’으로 구분된다. 『악학궤범』과 『종묘의궤』의 버선은 끈이 없는 일반용 버선으로 홍극가(1670년 졸)의 묘에서 출토된 버선과 동일한 형태였을 것으로 보인다. 홍극가의 버선은 겉감과 안감이 모두 무명이고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이 얇게 넣어져 있으며, 발길이 25㎝, 높이 24.5㎝, 버선목 너비 17㎝이다. 예복용 버선은 『국조오례의서례』와 『경모궁의궤』에 수록된 문무백관의 제복용 말(襪) 도식화에서 보듯이 발목부분인 회목이 따로 재단되어 있고 회목의 좌우 또는 발을 넣는 부분인 버선부리 뒤쪽에 끈이 두 개 달려 있다.

○ 재질 및 재료
조선 시대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신분에 상관없이 흰색 베로 만든 버선을 신었다. 조선 시대 출토 유물 버선은 대부분 겉감은 세목(細木)이나 광목이고, 안감은 광목⋅거친 면⋅삼베 등이었다. 『악학궤범』과 『종묘의궤』에 ‘백포말은 흰색 베로 만들고 안감으로 생베를 사용 한다’는 기록으로도 확인된다. 백포말을 만들기 위한 옷감과 실의 필요량에 대해서는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의 기록을 참조할 수 있다. 백포말 한 켤레를 만드는데 흰색 베 5척, 마사(麻絲) 3분이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버선을 홑ㆍ겹ㆍ솜ㆍ솜누비로 만들었고, 오이씨 같은 버선 맵시를 내기 위하여 버선을 실제 발 크기보다 작게 만들거나 솜을 통통하게 넣어 만들었다.
○ 역사적 변천
조선 전기에 백포말에 대해서는 『국조오례의서례』와 『악학궤범』에서 볼 수 있다. 『악학궤범』에 수록된 악공의 백포말 도식화에는 끈이 없으나, 『국조오례의서례』에 수록된 문무관 제복의 백포말 도식화에는 발목 부분인 회목이 따로 재단되어 있고 회목의 좌우에 끈이 두 개 달려 있다. 악공은 끈이 없는 일반용 버선을 신었고 문무백관은 끈이 달린 예복용 버선을 신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의 백포말은 『종묘의궤』와 『경모궁의궤』에서 볼 수 있다. 『종묘의궤』에 수록된 악공의 백포말은 회목이 따로 재단되어 있지 않고 끈도 달려 있지 않은 ‘일반용 버선’ 형태로서, 『악학궤범』의 백포말 도식화와 설명글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반면에 『경모궁의궤』에 수록된 악공의 백포말은 발목부분인 회목이 따로 재단되어 있고 발을 넣는 부분인 버선부리 뒤쪽에 끈[綦]이 두 개 달려 있는 ‘예복용 버선’ 형태인데, 문무백관이 신은 제복의 백포말도 동일하게 그려져 있다. 다만, 악공의 백포말 설명에는 끈에 대한 언급이 없고 제복의 백포말 설명에는 끈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식화만 보면 조선 후기에 악공이 끈이 달린 예복용 버선을 신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악공의 백포말 설명에 끈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 악공의 백포말은 조선 전기 악공의 백포말과 같이 끈이 없는 일반용 버선이 그대로 유지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행 종묘제례악 공연에서 악공과 일무악공은 오피리 대신 목화를 신고 있다.
이주영(李珠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