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선녀춤은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의 소설 『구운몽(九雲夢)』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선녀를 소재로 하여 추는 춤이다. 일제강점기 권번을 중심으로 팔선녀춤이 성행하였으나 현재는 《수영야류》 길놀이와 《진주오광대》에서만 연행하고 있다.
○ 내용
김만중의 『구운몽』 중에서 성진이 용궁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오는 중 팔선녀를 만나 서로 희롱한다는 내용으로, 팔선녀춤은 성진에게 반한 팔선녀의 자태를 춤으로 묘사하였다.
○ 구성
『기완별록』에 나타난 팔선녀춤의 형태는 연행주체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된다. 사람이 연행하는 경우는 『구운몽』의 성진과 팔선녀의 이미지를 그대로 표현한다. 팔선녀는 깔끔하고 우아하면서도 황홀한 모습으로 은하의 직녀, 월하의 항아, 무산선녀 등 팔선녀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팔선녀가 부역을 돕기 위해 내려왔음을 나타낸다. 팔선녀를 향한 정욕으로 파계한 성진도 양소유가 되어 경복궁 중건을 돕기 위해 선불(先拂; 걸립할 때 부르는 염불)한다는 내용도 나온다. 여기서 팔선녀춤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없으나 행렬과 함께 걸어가면서 극적인 표현을 곁들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음은 인형이 연행하는 경우는 하나는 〈금강산놀이〉의 성진과 팔선녀이고, 다른 하나는 〈팔선녀놀이〉이다. 전자는 금강산을 첩첩 쌓인 청산 암석, 송죽, 붉은 난간, 절, 홍살문 등으로 꾸몄다. 이 금강산에 팔선녀와 성진이 있는데, 팔선녀는 금강산의 각 봉우리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이때 팔선녀는 화관을 쓰고, 딴머리에 봉황 금비녀를 찌르고, 꽃을 꼽았으며, 차랑거리는 귀고리를 달았다. 팔선녀의 복식은 비단에 금으로 수놓은 화려한 원삼, 새 깃으로 만든 부채, 꽃 등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꽃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으며,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듯한 오묘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런 팔선녀의 모습을 가사를 입고 합장한 성진이 넋이 나간 형태로 바라보고 있다. 또 다른 〈팔선녀놀이〉는 팔선녀가 화려한 의상과 치장을 하고 서 있고, 성진이 북을 치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성진은 홍살문에 달린 북을 긴 장삼소매 상태에서 북채를 들고 북을 치는데, 성진의 머리가 마치 요령같이 흔들거렸다고 한다.
야류에서는 길놀이 중에 팔선녀춤을 추는데, 과거 《동래야류》의 길놀이는 풍악대ㆍ중군(中軍)ㆍ길군악대ㆍ팔선녀ㆍ야류패ㆍ할미광대ㆍ한량패ㆍ오개동(五個洞)풍악대ㆍ일반 군중 순으로 진행하였다. 이때 팔선녀는 연화등(蓮花燈)을 들고 따라가는데, 이 선녀들은 예전 동래부의 기생들로 편성되었고, 주로 말을 타고 길놀이에 참여하였다. 이때 한량들이 여덟 선녀를 한 사람씩 맡아서 마부 노릇을 하며 춤을 추고 한자리에서 어울리기도 하였다. 《동래야류》의 팔선녀춤에 등장하는 한량들은 오색천으로 휘황하게 장식한 우마차를 타기도 하는데, 기생과 함께 장구 장단에 맞추어 주로 〈난봉가〉와 〈양산도〉를 소리했다고 한다. 현재는 팔선녀춤을 추지 않는다.
《수영야류》의 팔선녀춤도 길놀이에서 연행하였는데, 길놀이는 소등대(小燈隊)ㆍ풍물패ㆍ길군악대ㆍ팔선녀ㆍ사자 혹은 거마(車馬)를 탄 수양반ㆍ탈놀음패ㆍ난봉가패ㆍ양산도패의 순으로 행진하였다. 여기서 팔선녀는 원근에서 불러온 기생들로서 활옷에 화관을 쓰고, ‘지화자’를 부르면서 춤을 추며 행진을 한다. 이처럼 팔선녀춤은 주로 전문적인 춤꾼인 기생들에 의해 연행되었기 때문에, 마당계열의 야류 춤이 아닌 교방정재에 가까운 특징을 보여준다.
○ 주요 춤사위
《수영야류》의 팔선녀춤의 춤동작을 살펴보면, 평사위로 전진하고 좌우로 저정거리면서(좌우새하면서) 마당을 한 바퀴 돈다. 이때 길군악을 치고 팔선녀들은 “에헤야 산이로다”를 가창하면서 3번의 배김새를 행한다. 팔선녀의 배김사위는 일반적으로 뛰어올랐다가 착지하는 형태가 아니고 춤을 추면서 나갔다가 한 번씩 매듭을 지어주는 형태를 말한다. 즉, “에헤야 에헤야”를 부르며 평사위를 하다가 “산이로다~”의 끝부분에서 양손을 앞으로 내려 모으면서 몸을 굽혔다 돌면서 양손을 위로 올려 펴는 형태이다. 팔선녀춤의 춤사위는 모두 4가지 형태로 분류되는데, ①평사위: 양손을 옆으로 벌린 채 좌우로 몸을 저정거리며 놀이판으로 걸어가는 동작, ②어름사위: 양팔을 옆으로 벌린 채 앞으로 걸어 나가다가 순간적으로 멈추면서 제자리에서 저정거리는 형태의 동작, ③겨드랑사위: 몸을 좌우로 한 번씩 돌려주면서 한쪽 팔을 다른쪽 팔의 겨드랑이 방향으로 감아주는 동작, ④배김사위: 평사위로 앞으로 걸어 나가다가 몸을 돌려 양팔을 앞으로 내렸다가 다시 몸을 돌려 양팔을 위로 올려 맺어주는 동작이다.

《진주오광대》의 팔선녀춤은 제3과장인 양반과장과 제4과장 중과장의 사이에서 연행하는데, 양반과장에서는 생원님을 찾아서 평양과 서울 등지로 돌아다니던 말뚝이가 진주에 내려와 팔선녀를 모아 술 마시고 노는 과정에서 팔선녀춤이 등장한다. 이때 팔선녀춤은 여덟 명의 선녀가 원으로 둘러서서 원 중심을 바라보고 추는 원형의 춤이다. 이어서 중과장이 시작되면 팔선녀 중에서 난양공주와 영양공주만 남고, 모두 퇴장한다. 중은 난양공주, 영양공주와 함께 춤을 추면서 파계승의 면모를 나타낸다. 과거에는 팔선녀춤에 진주교방의 기생들이 참여했다고 하며, 《진주오광대》 복원시 김수악이 안무한 작품으로 진주권번의 춤사위를 전승하고 있다. 《진주오광대》와 《수영야류》의 팔선녀춤은 전문적인 예인집단의 춤으로 마당계열의 춤과 달리 섬세하고 고우며, 세련된 춤임을 알 수 있다.

○ 반주 음악
《수영야류》 팔선녀춤의 반주음악은 사물악기 반주음악인 세마치장단, 《진주오광대》의 팔선녀춤은 삼현육각 반주음악인 굿거리장단이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수영야류》의 팔선녀춤 복식은 노랑 저고리에 붉은 통치마를 입고 그 위에 초록색 활옷(몽두리)를 입는다. 가슴에는 붉은색 띠(帶)를 두른다. 머리는 낭자머리로 연두색 비녀를 지르고, 붉은색 도투락댕기를 두른다. 오색 한삼을 끼고 녹사(綠紗)에 홍사(紅紗)로 상하를 두른 초롱을 든다. 《진주오광대》의 팔선녀춤 복식은 화사한 색의 치마저고리, 붉은색 혹은 검은색 쾌자를 입는데, 가슴에는 붉은색 띠를 두르고, 가면을 착용한다.
○ 역사적 변천 및 현황
동양에서 8이란 숫자는 9라는 완벽함ㆍ완성됨에 도달하기 위한 숫자로서 우주와 삼라만상을 의미하며, 신이 세상에 내려올 때 선녀는 여덟 명이 함께 내려왔다고 한다. 팔선녀춤은 일제강점기 단성사에서 기생들의 공연 종목으로 등장했으나 전승되지 않았다. 현재 팔선녀춤은 《수영야류》ㆍ《동래야류》의 길놀이에서 말을 타고 행렬춤으로 변화했으며, 《진주오광대》의 〈양반과장〉에서 팔선녀춤이 등장한다. 《황해도평산소놀음굿》에서 소놀음굿을 마칠 때 팔선녀가 길놀이를 따르며 춤추기도 한다. 현재는 소멸되거나 약화된 실정이다.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ㆍ동래야류보존회, 『동래들놀음』, 지평, 1989.
정상박, 『국가무형문화재 제43호 수영야류』, 화산문화, 2001.
최상수, 『야류ㆍ오광대가면극의 연구』, 성문각, 1984.
팔선녀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4315
강인숙(康仁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