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당패놀이
유랑광대인 남사당패가 공연했던 여러 가지 연희 종목으로서 놀이는 공연의 토박이말
조선시대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1930년대 중반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연희를 공연하며 생계를 잇는 유랑광대들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하나가 남사당패였다. 남사당패가 공연하던 연희 종목으로는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춤)》, 《덜미(꼭두각시놀음, 인형극)》 등이 오늘까지 전한다. 예전에는 《얼른(요술)》 역시 남사당패의 주요 연희 종목이었다고 전하지만 그 전승이 끊어졌다.
남사당패는 남자들의 단체이자 절(사찰)의 협력을 얻어 활동한 데서 생긴 명칭이다. 사찰과의 관련성에서 알 수 있듯이 남사당패는 조선 후기의 사당패, 거사패, 굿중패 등과 더불어 재승(才僧) 계통 연희자들의 후예이다. 재승은 불교와 관련된 연희자를 일컫는데, 삼국시대부터 존재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남사당패는 조선 후기에 등장했다. 여자들 중심 단체였던 사당패가 인기를 끌면서 기예를 갖춘 사당이 부족해지자 여장한 남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발생했다고 추정한다. 남사당패의 공연 종목을 통칭하여 남사당놀이라 일컫는다. 남사당놀이는 조선 후기 등장한 다른 유랑광대패들의 공연 종목과 서로 중복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선 후기 유랑광대패의 여러 연희를 망라한 성격이 있다.
○ 개요 남사당패는 일정한 거처가 없는 독신 남성들이 주된 구성원으로 40~50명의 규모였다. 제일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있고, 그 밑에 곰뱅이쇠·뜬쇠·가열·삐리 등의 서열이 있었다. ‘OOO패’와 같이 꼭두쇠 이름으로 연희집단 명칭이 불릴 정도로 꼭두쇠는 패거리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 곰뱅이쇠는 꼭두쇠를 보좌하는 역할을 했으며, 규모가 큰 패거리에는 두 명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곰뱅이쇠의 중요한 역할은 공연을 할 마을에 미리 찾아가 놀이판을 벌일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뜬쇠는 실제로 공연을 담당하는 연희자를 부르는 말이다. 남사당놀이 각 연희 종목의 전문가를 말한다. 이들 밑에는 각 연희 종목을 어느 정도 익혀 소질을 보이는 가열이 자리했다. 삐리는 가열 밑에서 연희를 배우는 초보자를 일컫는다. 그밖에 저승패와 나귀쇠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저승패는 놀이의 기능을 잃은 노인들을 말하며, 나귀쇠는 등짐꾼을 일컫는다. 조선시대 남사당패는 천시와 배척의 대상이었기에, 아무 데서나 공연을 할 수 없었다. 마음대로 어느 마을이나 출입할 수도 없었고, 출입을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남사당패가 주로 공연을 했던 시공간은 주로 장터, 파시(波市), 마을 행사 등이었다. 일정한 보수 없이 숙식과 다소의 노자만 제공받게 되면, 마을의 큰 마당이나 장터에서 밤새워 놀이판을 벌였다. 남사당패는 일정한 거주지 없이 전국을 떠돌아다니기는 했지만, 겨울을 나기 위한 은거지가 있었다. 경기도 안성과 평택, 충청남도 당진, 대전광역시 대덕, 전라남도 강진과 구례, 경상남도 진주와 남해, 황해도 송화와 은율 등이 현재까지 밝혀진 남사당패의 은거지이다. 이곳들은 대부분 물산이 모이고 유통되던 시장과 관련이 깊은 지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남사당패는 공연을 할 수 없는 겨울철에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기예를 연마하며 겨울을 지냈다. ○ 절차와 구성 《풍물》은 농악을 일컫는다. 꽹과리와 징, 장구와 북 등의 타악기 중심의 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연희이다. 남사당패의 《풍물》은 충청도와 경기도 남부의 웃다리가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호남이나 영남의 농악과 구별된다. 남사당패 《풍물》은 판굿을 통해 그 특징을 드러낸다. 판굿은 〈인사굿〉·〈돌림벅구〉·〈소리판〉·〈겹돌림벅구〉·〈당산벌림〉·〈벅구놀림(양상치기)〉·〈당산벅구놀림(허튼상치기)〉·〈당산돌림벅구〉·〈오방진(오방감기)〉·〈오방진(오방풀기)〉·〈무동놀림〉·〈벅구놀림(쌍줄백이)〉·〈사통백이〉·〈가새(가위)벌림〉·〈좌우치기〉·〈네줄백이〉·〈마당일체(쩍쩍이굿)〉·〈밀치기벅구〉·〈상쇠놀이〉·〈징놀이〉·〈북놀이〉·〈장고놀이〉·〈따벅구(벅구놀이)〉·〈시나위〉·〈무동서기(새미받기)〉·〈채상놀이〉·〈마당걷이〉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러한 남사당패 《풍물》의 판굿은 타악기 중심의 연주는 물론이고 <따벅구(벅구놀이)>와 오무동과 같은 곡예에 가까운 연행 역시 함께 이루어져 보는 이들의 흥미와 신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버나》는 앵두나무 막대기 위에 버나, 대야, 대접 등을 올려놓고 돌리면서 재담을 주고받는 연희이다. 앵두나무 막대기 위에 자새(얼레)와 담뱃대를 사용하기도 한다. 돌려지는 도구 가운데 하나인 버나가 연희 명칭으로도 쓰인다. 연희 도구인 버나는 쳇바퀴를 두께 10cm가량으로 자르고, 그 양면에 헝겊을 몇 겹 바르고, 원심에 직경 15cm가량의 가죽을 둥글게 오려 붙인 것이다. 《버나》 연행은 서곡, 던질사위, 때릴사위, 다리사위, 무지개사위, 자새버나, 칼버나, 바늘버나, 도깨비 대동강 건너기, 정봉산성, 단발령 넘는 사위, 삼동, 산염불, 돌릴사위, 때릴사위 등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버나》는 여러 도구를 이용하여 돌리는 다양한 묘기만 보여주는 것이 그치지는 않는다. 《버나》 연희자인 버나잡이와 더불어 매호씨(어릿광대)가 등장하여 재담과 소리(산염불)를 주고 받으며 관중의 흥미를 끌어모은다. 《버나》의 반주음악은 덩덕궁이 장단과 자진가락을 사용한다. 《살판》은 땅재주이다. 《살판》 연행에서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판’이라는 재담을 하는데, 이 말에서 살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열두 가지의 재주를 보이는데, 연희자의 능력에 따라 재주는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살판》에서 보여주는 열두 가지 재주는 <앞곤두>, <뒷곤두>, 〈번개곤두〉, 〈자반뒤지기〉, 〈팔걸음〉, 〈외팔걸음〉, <외팔곤두〉, 〈앉은뱅이팔걸음〉, 〈수세미트리〉, 〈앉은뱅이모말되기〉, 〈숭어뜀〉, 〈살판〉 등이다. 《살판》 연행은 연희자인 살판쇠의 땅재주만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엉성하게 살판쇠의 땅재주를 따라 하는 매호씨(어릿광대)의 몸짓과 재담이 살판쇠의 빼어난 땅재주와 함께 어우러지며 연행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살판》의 반주음악은 칠채가락, 덩덩궁이, 자진가락을 사용한다. 《덧뵈기》는 ‘덧쓰고 보여준다’는 의미로서 가면극을 말한다. 현전하는 다른 가면극과 비교해 볼 때 등장인물이나 구성이 간소하다는 특징이 있다. 춤사위 역시 많지 않고 동작과 재담이 중심이 된다. 과장 구성은 〈마당씻이〉, 〈옴탈잡이〉, 〈샌님잡이〉, 〈먹중잡이〉 등으로 이루어졌다. 제1과장 〈마당씻이〉에서는 꽹과리를 치는 꺽쇠, 장구를 치는 장쇠, 징을 치는 먹쇠가 등장한다. 세 인물은 덩덩궁이, 취군가락, 자진 덩덕궁이 등을 신명나게 연주하고 비나리도 하며 가면극이 벌어지는 마당을 깨끗하게 씻어낸다. 제2과장 〈옴탈잡이〉는 옴에 걸린 사람을 잡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옴에 걸린 옴탈이 등장하고, 이를 꺽쇠가 덩덕궁이 장단에 춤을 추며 쫓아낸다. 제3과장 〈샌님잡이〉에서는 샌님에 대한 풍자가 이루어진다. 샌님과 그의 부인 노친네, 그리고 하인인 말뚝이 등이 등장한다. 춤보다는 재담과 동작이 두드러지는 <샌님잡이>에서는 샌님 중심의 가부장질서와 상하관계가 전도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제4과장 〈먹중잡이〉에서는 먹중, 피조리, 취발이, 말뚝이 등이 등장한다. 피조리들과 어울려 노는 먹중을 쫓아내는 취발이의 모습을 통해 종교적 권위를 풍자하는 내용이다. 《덜미》는 인형극이다. 인형의 ‘목덜미를 잡고 논다’는 의미에서 생긴 명칭이다. 《덜미》는 꼭두각시놀음이라는 명칭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꼭두각시는 등장인물의 하나이자 인형을 뜻하는 말로서 덜미라는 말과 함께 혼용된다. 덜미는 나무인형을 기본으로 한 원시적인 성격을 유지하고 있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덜미》의 무대를 남사당패에서는 포장이라 부른다. 3m 안팎의 평방에 네 기둥을 세우고, 무대 면이 되는 곳에 지상에서 1m 20cm 정도의 높이 위에, 인형이 등장해서 노는 가로 2m 50cm 정도, 세로 70cm 정도의 공간(무대)만 남겨 놓고 사방을 모두 포장으로 둘러친 공중무대이다. 무대 면의 안쪽 공간에는 인형의 주조종자인 대잡이가 중심에 앉고, 그 양옆에 대잡이손이 각각 앉아 인형의 조종과 등퇴장을 돕는다. 무대 면 밖의 약간 비스듬한 자리(좌우는 꼭 정해져 있지 않다)에는 받는 재담꾼이자 소리꾼인 산받이와 잽이(악사)들이 관중석과 거의 분리되지 않은 위치에서 무대의 전면을 보고 앉아 놀이를 진행한다. 《덜미》는 두 마당, 일곱 거리로 구성된다. 〈박첨지유람거리〉·〈피조리거리〉·〈꼭두각시거리〉·〈이시미거리〉(이상 제1마당), 〈매사냥거리〉·〈상여거리〉·〈절짓고허는거리〉(이상 제2마당) 등이다. 반주악기로는 꽹과리, 북, 징, 장구가 쓰이며, 때로는 피리가 참여한다. 염불, 굿거리, 타령 장단이 주로 사용되며, 〈떼이루따곡〉·〈나이니곡〉·〈보괄타령〉·〈세간〉을 놓는다·〈회심가〉·〈매사냥소리〉·〈상여소리〉·〈장타령〉·〈절 짓는 소리〉·〈잡가〉·〈염불〉·〈시조〉 등을 장면에 따라 부른다. 《어름》은 줄타기이다. 살얼음판을 걸어다니듯이 줄 위에서 어려운 묘기를 부린다는 의미에서 생긴 명칭이다. 남사당패에서는 줄을 타는 연희자를 어름산이라 부른다. 어름산이가 타는 줄은 높이는 3m, 길이는 5~6m의 녹밧줄을 이용했다. 녹밧줄은 삼껍질로 꼰 직경 3cm 정도의 동아줄이다. 어름산이의 줄타기 기예는 열일곱 가지가 알려져 있다. 앞으로 가기, 장단줄, 거미줄 늘리기, 뒤로 훑기, 콩심기, 화장사위, 참봉댁 맏아들, 억석애미 화장사위, 처녀 총각, 외호모거리, 허궁잽이, 가새트림, 외허궁잽이, 쌍허궁잽이, 양반 병신걸음, 양반 밤나무 지키기, 녹두장군 행차 등이 그것이다. 남사당패 어름산이의 《어름》 연행은 줄타기 기예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매호씨와 재담을 주고받으며 관중을 웃기기도 하고, <중타령>, <풍년가>, 줄고사 등의 노래를 하며 신명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줄타기 기예와 재담, 그리고 노래의 어우러짐은 남사당패 줄타기 《어름》의 독특한 특징으로 꼽힌다. 반주음악은 움직임에 따라 염불장단, 타령장단, 굿거리장단, 길군악장단 등을 연주한다. ○ 역사적 변천 및 현황 남사당놀이는 1930년대까지 남사당패에 의해 전국에서 연행되었다. 하지만 이후 급속한 사회·문화적 상황의 변화로 겨우 명맥만 유지했다. 1954년에 남사당패 출신의 일부 연희자들이 안성농악대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지만, 활성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960년대 펼쳐진 전통문화 계승의 분위기 속에서 인형극회 남사당이 결성되어 활동이 재개되었고, 1964년에 《꼭두각시놀음(덜미)》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인형극회 남사당은 과거 남사당패가 연행했던 여러 연희 종목을 복원하고자 노력했고, 단체명도 민속극회 남사당으로 변경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88년 《꼭두각시놀음(덜미)》을 포함한 여섯 연희 종목 모두가 남사당놀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무형유산으로 확대 지정되었다. 현재 남사당놀이는 남사당놀이보존회를 중심으로 옛 남사당패가 놀았던 여섯 종목을 전승하고 있다.
남사당놀이는 음악, 묘기, 체기(體技), 교예(巧藝), 가면극, 인형극 등 서로 다른 속성을 가진 연희 종목으로 구성된 종합 연희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 곧, 《덜미》만이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등도 주목할 만하다는 것을 남사당패 연희자들의 연행과 전승 과정에서 보여주었다. 남사당패는 우리의 전통연희를 망라하여 전승하고 있는 유일한 전문연희집단이다. 그리고 남사당패가 전승하는 남사당놀이는 한국 전통연희 문화의 넓이와 깊이를 보여주는 드문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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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