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재위 1418~1450)은 글자를 쓰기 위해 사용하던 네모 칸을 음악을 기록하는 방법으로 창안하였다. 네모 칸의 안에 중국에서 유래한 율자를 기록하고, 긴 시가의 음은 빈칸을 두는 방법으로 음악의 시가를 표시할 수 있는 유량 기보 방법을 창안하였다. 『세종실록악보』는 1행에 32정간을 사용하였고, 『세조실록악보』에는 32정간을 둘로 나누어 1행에 16정간을 주로 사용하였다. 조선 후기 민간에서는 대강만을 표시하는 기보법을 사용하기도 하였고, 『속악원보』(19세기 후반)에는 20정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음악의 장단을 고려하여 4정간, 5정간, 6정간, 8정간, 10정간, 12정간, 16정간, 20정간을 주로 사용하고 있고, 8정간 이상일 때 대강을 함께 사용한다.
정간은 음의 시가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음의 높이(음고)와 연주법 그리고 노랫말 등을 기록해야 악보로 완성된다. 『세종실록악보』와 『세조실록악보』는 정간 안에 현악기 음고와 관악기 음고, 장고, 박판, 그리고 노랫말을 차례대로 기록한 총보를 사용하였다. 『금합자보』에는 1정간에 1음을 기록하였고, 긴 시가의 음을 기록할 때는 몇 정간을 비운 후에 다음 음을 기록하고, 짧은 시가의 음을 기록할 때는 1정간에 2음을 기록하였다.
조선 후기에 관찬악보인 『대악후보』와 『속악원보』까지 정간을 사용한 기보 방법이 계속 사용되었고, 민찬악보에는 한동안 사용되지 않다가 『삼죽금보』(1841)에서 다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초에 편찬된 『흑홍금보』와 『아악부악보』에서는 1박을 1정간 또는 2정간에 기록하였고, 20세기 중반 이후에 1박을 1정간에 기록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단, 타령 장단의 악곡(타령, 군악, 별우조타령 등)에는 1박을 3정간에 기록하였다. 관악기의 악보에서는 1정간에 4~5음까지 기록하며, 그 이상의 음은 음형(音形)에 따라 여러 가지 부호(장식음 부호)를 이용하여 기록하였다. 1정간을 세로로 3분하여 기록하게 되면서 정간의 모양은 정사각형에서 세로 직사각형으로 변화되었다.
오늘날 정간 기보법은 '이왕직아악부'에서 풍류방 악보인 『방산한씨금보』의 정간 기보법을 수용하여 발전시킨 것이며, 1955년 국립국악원에 국악사 양성소가 부설되면서 『국악교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었다. '이왕직아악부'에서 편찬한 『아악부악보』에는 정간과 정간 사이에 빈 공간이 없었는데, 국악사 양성소의 『국악교재』에는 정간의 좌우에 빈 공간이 있다. 이러한 변화는 20세기 전반에 원고지의 모양 변화와 관계가 있다. 즉 20세기 초의 원고지는 좌우에 빈 공간이 없이 세로줄만 있는 형태였으나, 그 후에 원고 교정 부호 등을 삽입하기 위한 빈 공간이 있는 원고지가 사용되었다.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문자를 기록하는 방법이 음악을 기록하는 방법에 응용되었다.
김우진(金宇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