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아우의 도움을 받아 문명신이 1817년에 제작한 양금 악보를 저본으로 하고, 그 전반부에 양금과 서양 음악 이론에 관한 9편의 글을 덧붙여 편찬한 것이다.
○ 자료 정체
① 편찬연대 및 편저자 사항
책의 앞표지 겉면 왼쪽과 첫 장에 악보명 ‘歐邏鐵絲琴字譜’가 보인다.
편찬연대는 제1편 「창래」편 기록을 통하여 1817년(순조 17)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저자는 이규경(李奎景, 1788∼?)이 번역(飜譯)하고 아우인 이규달(李奎達)이 교정[參校]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규경은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손자로 청대 학풍에 큰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금사물(古今事物)에 대한 수많은 서적을 탐독하고 정밀한 고증을 통하여 천문ㆍ역수ㆍ지리ㆍ문학ㆍ종교ㆍ초목ㆍ어조 등의 학문을 고찰하고 변증하여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60권을 집대성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구라철사금자보』의 일부 내용이 들어가 있다.
② 소장처 및 소장번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청구기호: 가람古787-Y55g ○ 서지사항/자료체제 필사본 1책 21장. 세로 17.0cm × 가로 21.0cm ○ 구성과 내용 ① 표지 책의 앞표지 겉면 왼쪽에 ‘歐邏鐵絲琴字譜’가 보인다. ② 양금과 서양 음악 이론 관련 9편의 글 악보집의 전반부는 양금의 유래, 모양과 재료, 제작과 보관법, 기보와 연주법, 그리고 서양 음악 이론 등에 관한 총 9편의 글이 실려 있다. 제1편 「창래」는 우혁정(于奕正)의 『제경경물략』, 왕사정(王士禎)의 『지북우담(池北偶談)』, 『주어고존(奏御稿存)』 등을 참고하여 양금이 중국과 우리나라에 들어온 경위를 설명했다. 제2편 「율명(律名)」은 율려의 상생과 조화의 원리에 입각하여 12율 4청성을 양금 현 아래에 죽 벌여서 써 넣는 것을 설명했다. 제3편 「자점(字點)」은 악보에 쓰인 자(字)와 점(點)에 대해 설명했다. 제4편 「의용피자(宜用彼字)」는 당낙우의 『논률산서(論律算書)』에 근거하여 서양 음악의 조표, 음표, 음자리표, 음계 등 서양 음악 이론과 양금 사용에 관해 설명했다. 제5편 「제형(製形)」은 양금의 재료와 형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제6편 「장기(藏棄)」는 양금 보관법을 설명했다. 제7편 「고현(鼓絃)」은 양금을 연주하는 방법에 관해 간략히 설명했다. 제8편 「금명(琴銘)」은 양금을 담는 상자(匣)에 새길만한 명(銘)에 관한 내용으로, 조부인 아정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담헌 홍대용(洪大容, 1731∼1783)과 관재(觀齋) 서상수(徐常修, 1735∼1793)의 금에 쓴 명문과 이규경 본인의 양금에 쓴 명문을 설명했다. 제9편 「전고(典攷)」는 양금을 주제로 한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1805)와 원항(鴛港) 당낙우(唐樂宇)가 문답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③ 악보 악보집의 후반부는 《영산회상》 관련 음악이 먼저 나오고 이어서 계면조와 우조 〈조현〉, 가곡ㆍ시조 관련 음악이 나온다. 《영산회상》 관련 음악은 〈영산회상 대(靈山會相 大)〉 제1∼4편ㆍ〈영산회상 중(靈山會相 中)〉 제1∼4편ㆍ〈영산회상 소(靈山會相 小)〉 제1∼4편ㆍ〈제편(除篇)(속칭 편제(篇除) 가락더리)〉 제1∼4편ㆍ〈환입(還入)〉 제1∼4편ㆍ〈하현환입(下絃還入)〉 제1∼4편이 있다. 이들은 현행 《영산회상》 중 〈상영산〉ㆍ〈중영산〉ㆍ〈세영산〉ㆍ〈가락더리〉ㆍ〈상현환입〉ㆍ〈하현환입〉과 관련 있다. 이어서 〈계면조 조현(界面調 調絃)〉ㆍ〈우조 조현(羽調 調絃)〉이 나오는데, 〈가곡 대엽(歌曲 大葉, 속칭 츠닙〉은 현행 〈삭대엽〉과 관련이 있고 〈시조(時調)〉는 현행 〈평시조〉와 관련이 있다.
모든 악곡에서는 율명차용보(律名借用譜)로 음의 높이를 기보했다. 율명차용보는 12율 4청성(黃∼浹)과 3청성(沽, 沖, 濱)의 첫 글자와 ‘工’ 문자를 사용하여 양금의 줄 이름을 지시하여 율명차용보라 한다. 양금의 줄 이름은 악보에 그려진 ‘구라철사금도(歐邏鐵絲琴圖)’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율명차용보 아래에 병기된 삼조표(三條標)는 검은색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하는 선으로 양금의 연주법(●, ● ●, ●-●)을 표기했다. 이 삼조표는 고형에 속하며 음악의 시가를 해석하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준다.
| 좌괘 좌현 | 좌괘 우현 | 우괘 좌현 | |||||||||||||||||||
| 줄 번호 (아래부터) |
1 | 2 | 3 | 4 | 5 | 6 | 7 | 1 | 2 | 3 | 4 | 5 | 6 | 7 | 1 | 2 | 3 | 4 | 5 | 6 | 7 |
| 줄 이름 | 潢 | 汏 | 汰 | 浹 | 沽 | 沖 | 濱 | 㽔 | 林 | 夷 | 南 | 無 | 應 | 上 | 工 | 黃 | 大 | 太 | 夾 | 姑 | 仲 |
| 실음 | 林 | 南 | 無 | 潢 | 汰 | 洳 | 沖 | 黃 | 太 | 夾 | 仲 | 林 | 南 | 無 | 債 | 休 | 俠 | 仲 | 林 | 㑲 | 無 |
당시의 실제 연주된 양금 좌괘의 좌현과 우현의 길이비는 현행과 동일한 2 : 3이며, 두 현에서 나는 소리는 5도 차이가 나는데, 이것은 현행의 양금 조율 방법과 같다.
○ 역사적 변천 양금(洋琴)은 본래 유럽(구라파)에서 전래된 악기로서, ‘서양금(西洋琴)’ 또는 ‘구라파에서 들어온 쇠줄 악기’란 의미의 ‘구라철사금(歐邏鐵絲琴)’이라고도 불린다. 『구라철사금자보』 제1편 「창래(刱來)」에는 양금의 유입과 전수‚ 악보 제작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제경경물략(帝京景物略)』의 기록을 인용하여, 이마두(利瑪竇, Matteo Ricci, 1552∼1610)가 중국에 양금을 처음 들여왔다고 전한다. 양금이 중국에 전래된 지 약 60년이 지나도록 악기로 사용되지 못하고 한갓 문방의 기물로만 머물렀으나, 조선 정조 연간 장악원 전악 박보안(朴寶安)이 사신을 따라 연경(燕京)에 가서 처음으로 연주법을 배우고 이를 조선 음악에 응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구전으로 전수되전 연주법이 잊히는 것을 우려하여, 1817년(순조 17) 봄, 전악 문명신(文明新)이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악보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 악보의 저본은 1817년 문명신이 제작한 양금 악보로, 이후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아우의 도움을 받아 그 전반부에 양금과 서양 음악 이론에 관한 9편의 글을 덧붙여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동시대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편찬한 『유예지(遊藝志)』의 「양금자보(洋琴字譜)」와 같다. 현재 이 책의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歐邏鐵絲琴字譜(구라철사금자보)’라는 서명으로 소장되어 있으며, 영인본은 1984년 국립국악원에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14집의 일부로 간행되었다.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는 1762년 무렵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래된 양금(洋琴)이 빠른 시일 내에 민간 풍류방 음악에 수용되어 연주 악기로 정착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악보는 19세기 초반 양금으로 연주된 풍류방 음악의 실체를 전하는 가장 오래된 악보로, 당대의 음악 양식과 악기 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에 수록된 〈시조〉는 현행 경제(京制) 〈평시조〉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는 희귀한 예로, 시조 음악의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또한 양금이 19세기 이후 민간 음악계에 미친 영향은 이후 다수의 양금 악보 출현을 통해 이어졌으며, 『구라철사금자보』는 그 출발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문헌이다. 이 악보는 단순한 연주 지침서에 그치지 않고, 양금 이론과 실기를 통해 서양 음악과 문화를 이해하고자 했던 조선 후기 문인 지식인들의 음악관과 세계관을 반영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한편, 양금은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의 산투르(Santur)에서 기원하여, 세계 각지로 전파되며 참발롬(Cimbalom), 덜시머(Dulcimer), 양친(揚琴) 등 다양한 형태로 토착화되었다. 『구라철사금자보』라는 명칭은 이러한 유럽의 양친이 청나라를 거쳐 조선에 전해진 경로를 명확히 보여주는 문화사적 증거이기도 하다.
현재 『구라철사금자보』의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원문 DB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영인본은 국립국악원 홈페이지 ‘연구/자료-학술연구-영인ㆍ번역’ 섹션에서 원문 DB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다.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 『열하일기(熱河日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유예지(遊藝志)』
최선아(崔仙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