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회상》 계통의 첫 번째 악곡으로, 불가 가사 ‘영산회상불보살’을 노래하던 단일곡으로, 느린 장단의 대표적 정악곡.
상령산은 조선 전기 정재 반주 음악에서 비롯되어 이후 풍류음악의 핵심이 된 곡이다. 《현악영산회상》ㆍ《평조회상》ㆍ《삼현영산회상》 계통으로 분화되었으며, 모두 20박의 느린 장단 구조를 공유한다. 성악곡에서 기악곡으로 변화하며 다양한 악기 편성과 장단형을 갖추어 오늘날 정악 연주의 기반이 되었다.
상령산의 원형은 조선 성종 24년(1493) 편찬된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등장하는 단일곡 〈영산회상〉이다. 향악정재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說)〉에서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佛菩薩)’을 노래하며 추던 반주음악이었고, 만(慢)ㆍ영(令)의 이원적 형태로 기록되었다.
이후 17세기까지는 성악적 요소가 유지되었으나, 『신증금보(新證琴譜)』(1680) 전후해 노랫말이 사라지고 기악 중심의 선율로 변화되었고, 18~19세기에 변주곡(중령산ㆍ세령산 등)이 형성되며 모음곡 《영산회상》의 체계가 확립되었다. 19세기 이후 민간 악보에서는 ‘본령산ㆍ대령산ㆍ만령산’ 등 다양한 이칭이 사용되었고, 근대에 이르러 오늘날의 명칭 ‘상령산’으로 정착하였다.
《평조회상》의 〈상령산〉은 『삼죽금보』에 〈평조영산회상(平調靈山會像)〉으로 기록되어 있다.
○ 개요
영산회상 모음곡의 첫머리를 구성하며 전체 선율 구조를 여는 기본 악곡이라는 뜻에서 ‘상(上)령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주로 궁중 정재의 반주음악으로 쓰였고, 조선 후기로 갈수록 풍류방과 세악(細樂) 편성의 실내 감상음악으로 활용 범위가 확대되었다. 연주 주체 역시 초기의 궁중 악공에서 점차 민간 풍류객과 정악 연주 단체로 이어지며 폭넓게 전승되었다. 용도 또한 시대와 편성에 따라 달라져, 《삼현영산회상》에서는 정재 반주음악으로, 《현악영산회상》ㆍ《평조회상》에서는 감상 중심의 실내악 및 관현합주곡으로 기능하며 다양한 음악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 소속
① 《현악영산회상》(줄풍류) 중 제1 곡에 해당함.
② 《평조회상》(관현합주) 중 제1 곡에 해당함.
대금이나 피리 독주로 자주 연주됨.
현재 〈춘앵전〉의 반주 음악으로 〈상령산〉, 〈중령산〉, 〈세령산〉, 〈염불도드리〉, 〈타령〉 등을 연주함.
③ 《삼현영산회상》(대풍류) 중 제1 곡에 해당함.
〈상령산〉을 변주한 〈향당교주〉는 무용반주 음악으로 사용됨.
○ 음악적 특징
① 형식
계통마다 장단 배열은 다르지만 모두 네 장으로 구성된다.
《현악영산회상》과 《평조회상》에서는 제1장부터 3ㆍ4ㆍ4ㆍ6장단으로 배열되어 총 17장단으로 이루어지며, 《삼현영산회상》에서는 4ㆍ4ㆍ3ㆍ4장단으로 구성되어 총 14장단으로 이루어진다.
② 장단
공통적으로 스무 정간(20박)을 한 장단으로 하며, 6ㆍ4ㆍ4ㆍ6의 네 대강 구조로 이루어진 매우 느린 장단형을 사용한다.
연주 속도는 계통에 따라 차이가 있어, 《현악영산회상》에서는 분당 약 25~30정간, 《평조회상》에서는 약 30정간, 《삼현영산회상》에서는 가장 느린 템포로 분당 약 20~25정간 정도로 연주된다.
《삼현영산회상》의 경우 제1장 제1각에서 합장단을 사용하고 이후에는 합장단을 ‘기덕-쿵’으로 분할하여 치는 ‘갈라치는 장단’이 적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정재 반주 시에는 10박 단위의 향당교주(鄕唐交奏)형 장단 변형이 적용되기도 한다.
<《삼현영산회상》 〈상령산〉 제1장 제1각 기본장단 ©국립국악원>
<《삼현영산회상》 〈상령산〉 제1장 제2각 이후 ‘갈라치는 장단’ ©국립국악원>

③ 음계ㆍ악조
《현악영산회상》과 《삼현영산회상》의 상령산은 황종(黃:E♭4)ㆍ태주(太:F4)ㆍ중려(仲:A♭4)ㆍ임종(林:B♭4)ㆍ무역(無:D♭5)의 다섯 음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는 변화된 황종 계면조의 5음 음계에 해당한다.
반면 《평조회상》 상령산은 음역이 4도 낮게 이조되어 탁임종(㑣:B♭3)ㆍ남려(南:C4)ㆍ황종(黃:E♭4)ㆍ태주(太:F4)ㆍ중려(仲:A♭4)이 사용되며, 이러한 구성은 임종 계면조의 음계적 특징을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실제 연주에서는 악기 음역상 너무 낮은 음을 한 옥타브 위로 올려 연주하기도 한다.
④ 악기 편성
상령산의 악기 편성은 계통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현악영산회상》에서는 거문고ㆍ가야금ㆍ양금ㆍ해금ㆍ단소ㆍ대금ㆍ세피리ㆍ장구로 이루어진 줄풍류 또는 세악(細樂) 편성이 사용되어 부드럽고 섬세한 음색을 강조한다.
《평조회상》에서는 가야금ㆍ거문고ㆍ아쟁ㆍ해금ㆍ향피리ㆍ대금ㆍ소금ㆍ장구ㆍ좌고가 참여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관현합주 형태를 갖추어 보다 웅장하고 장대한 음향을 구현한다. 《현악영산회상》의 세피리를 향피리로 바꾸고 가야금과 거문고의 수를 늘리며 해금은 원산을 중앙으로, 대금은 역취를 하며 장구는 복판을 쳐서 향피리와 음량을 맞춘다. 대금이나 피리 독주로 자주 연주된다. 《평조회상》을 《현악영산회상》과 같이 세악 편성으로 연주하는 경우 《취태평지곡》이라고 부른다.
《삼현영산회상》(대풍류)에서는 박을 비롯해 향피리ㆍ대금ㆍ해금ㆍ아쟁ㆍ소금ㆍ좌고ㆍ장구 등이 편성되어 관악 중심의 힘찬 음향과 장중한 분위기를 드러내며, 이는 《현악영산회상》ㆍ《평조회상》과 구별되는 대풍류 특유의 음색적 특징을 형성한다.
⑤ 연음(延音)
《삼현영산회상》 상령산에서는 합주 시 제1장 제1각 첫 열 정간은 타악기만 연주하며, 제11정간에서 피리가 선율을 시작하고, 다른 악기는 제15정간부터 합류하는 독특한 진행 방식을 보인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향피리가 숨을 고르는 순간에는 대금ㆍ해금ㆍ아쟁이 가락을 이어받아 선율을 끊기지 않게 유지하며, 이 때문에 연주자는 다른 악기의 선율 흐름까지 정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연주해야 한다.
○ 역사적 변천 및 현황
상령산이 문헌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15세기 후반 『악학궤범』으로, 향악정재 〈학연화대처용무합설〉에서 ‘영산회상불보살’을 노래한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이로써 당시 〈상령산〉이 불교 성악 전통과 연관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아울러 정재 반주 음악으로서 ‘만(慢)ㆍ령(令)’의 이원적 구조를 갖추고 있었던 점은 아직 독립된 기악곡으로서보다는 정재의 일부로 기능했음을 보여 준다.
17세기 중반 『송씨이수삼산재금보(宋氏二水三山齋本琴譜)』(1651)에 수록된 〈영산회상〉은 ‘영산회상불후신(靈山會上佛後身)’을 노래한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반복 연주하는 방식인 주이복시(奏而復始) 구조이다. 이 악보에 노래 가사가 남아 있다는 점은 성악적 요소가 일정 시기까지 지속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가창이 점차 소멸하고 기악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변주가 축적되었고, 이 과정에서 상ㆍ중ㆍ세령산 등으로 구성되는 오늘날의 모음곡 《영산회상》 체제가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18~19세기에 들어서면 상령산의 명칭과 구조는 더욱 다양해져, 『동대금보(東大琴譜)』(1813)의 ‘만령산’, 『향률양금보(響嵂洋琴譜)』의 ‘본령산’, 『학포금보(學圃琴譜)』의 ‘대령산’과 같이 악보마다 다른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상ㆍ중ㆍ세령산 또는 만ㆍ중ㆍ삭령산과 같은 구조적 변이도 나타나는데, 이는 《영산회상》 계통이 지역ㆍ전승 집단ㆍ악기 편성에 따라 세분화되어 갔음을 보여 주며, 그 중심에 상령산이 변주의 출발점이자 원형 선율로써 기능했음을 시사한다.
근현대에 이르러 상령산은 국립국악원 정악단, 줄풍류보존회, 각 대학 국악과의 교육·연주에서 핵심 레퍼토리로 확고히 자리하였다. 《현악영산회상》ㆍ《평조회상》ㆍ《삼현영산회상》 각 계통의 모음곡에서 모두 첫머리를 구성하는 대표 악곡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오늘날 정악 교육과 실내악, 관현합주에서 가장 빈번히 연주되는 기악곡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상령산은 조선 전기 정재 반주에서 시작해 한국 정악의 중심축으로 발전한 곡으로, 《영산회상》 모음곡의 구조를 규정하는 원형 선율이자 풍류음악의 미학(느림ㆍ연음ㆍ절제)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표 작품이다. 《현악영산회상》ㆍ《평조회상》ㆍ《삼현영산회상》 등 다양한 편성으로 분화되면서 한국 정악의 형식과 음계 체계 연구의 핵심 자료가 되었으며, 음악사적으로는 성악곡에서 기악곡으로 변화한 전통 음악 변천의 중요한 사례이다.
상령산은 교육 현장에서 정악 장단 구조, 음계 체계, 줄풍류ㆍ관현합주 비교 학습의 기본 자료로 널리 활용된다. 또한 연음 기법의 대표적 실례로, 관악 및 현악기 간 선율 인계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교본 역할을 한다.
윤아영(尹娥英),정경조(鄭慶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