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악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궁중 음악기관인 ‘전악서(典樂署)’와 종5품 악관 직책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장악원(掌樂院) 소속 정6품 악관으로서 궁중 제례와 연향을 담당하는 음악 관직으로 계승되었다. ‘典’은 맡다, ‘樂’은 음악을 뜻하며, 전악은 곧 ‘음악을 관장하는 자’를 의미한다.
한편,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이 명칭은 서울 지역 굿판에서 피리, 젓대, 해금 등을 연주하는 남성 음악가를 지칭하는 말로 전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서울 굿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용례로, 궁중과 서울 무속의 친연성을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 역사적 변천과 전승
전악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궁중 음악기관인 전악서(典樂署)와 종5품 악관 직책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장악원(掌樂院) 소속 정6품 악관으로 계승되어, 궁중 제례와 연향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관직으로 사용되었다. ‘典’은 맡다, ‘樂’은 음악을 뜻하며, 전악은 곧 ‘음악을 관장하는 자’를 의미하였다.
대한제국기 이후 궁중 음악 제도가 해체되면서 전악이라는 명칭은 공식 제도에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서울 지역의 굿판에서는 이 명칭이 민속 현장에서 계속 사용되었으며, 문헌에서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청구영언』에 수록된 시조 중 ‘죽은 청개구리를 위한 새남 굿’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는 “검은 메뚜기는 전악은 저를 힐니리 불고”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여기서 ‘전악’은 피리 또는 대금을 연주하는 존재로 묘사되며, 굿의 음악적 역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전악이라는 명칭이 궁중을 넘어 민속 의례의 음악적 주체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문학적 증거로 평가된다.
현재 전악이라는 말은 서울 굿 용어로 전승되고 있으며, 궁중과 민속의 친연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명칭으로 기능하고 있다.
의의 및 가치
전악은 고려·조선시대 궁중 음악 관직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대한제국기 이후 제도적으로는 소멸되었으나 서울 굿판에서 민속 음악가를 지칭하는 용어로 전승되고 있다. 서울 굿의 전악은 삼현육각 편성으로 《대풍류》를 연주하며 제의의 흐름을 주도한다. 『청구영언』의 시조 “죽은 청개구리를 위한 새남 굿”에서도 전악이 등장하여 민속 현장에서의 역할을 문학적으로 보여준다. 궁중과 민속을 잇는 상징적 명칭으로서 문화적 친연성과 연속성을 지닌다. 오늘날에도 서울 굿에서 살아 있는 용어로 기능하고 있다.
지정사항
서울 새남굿: 국가무형유산(1996)
남이장군 사당굿: 서울시 무형유산 제20호(1999)
봉화산 도당굿: 서울시 무형유산 제34호(2005)
밤섬 부군당굿: 서울시 무형유산 제35호(2005)
구리 갈매 도당굿: 경기도 무형유산 제15호(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