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3월에는 김기수(金琪洙, 1917~1986)가 이왕직아악부에서 사용하던 지공 여섯 개짜리 당적에 칠성공 한 개를 뚫어 소금을 제작했다. 이후 이 악기의 이름으로 '당적'과 '소금'이 혼용되다가 차츰 소금이라는 명칭으로 통일되었다. 결국, 현재는 소금과 당적의 구분은 없어졌으며, 전문연주자 사이에서 당악 연주 시 이 악기를 당적이라 부르는 사례가 있는 정도다. 즉, 당악계 음악을 연주할 때는 소금의 최저음(제5공)을 사용하지 않고, 향악 연주 시에는 최저음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겸용하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출판된 국악 서적과 1984년 발행된 『국악대사전』 등에서는 현재 소금에 해당하는 악기를 당적으로 설명하면서, 소금은 실전되어 전하지 않는다고 해설하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당적이 실전되고 소금이 현재까지 전하면서 향악과 당악에 겸용되고 있는 셈이다.
○구조와 형태
당적은 『고려사』에서부터 『악학궤범』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취구 한 개, 지공 여섯 개, 칠성공 한 개로 소개된 점으로 보아 이 형태를 오랜 기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조선악기편』의 당적은 칠성공이 없는 형태이며, 이는 김기수가 기존의 악기를 칠공관으로 개조했다고 한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음역과 조율법
1956년 이후 당적이라 불리는 악기는 김기수에 의해 개량된 악기이거나 이전에 사용되던 악기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결국 거의 같은 악기이므로 그 음역대와 조율법은 대동소이(大同小異) 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국악 관악기와 마찬가지로 입김을 약하게 불어 연주하는 저취, 보통 세기로 불어 연주하는 평취, 입김을 강하게 불어 연주하는 역취로 다른 음역대를 음을 연주한다.
『국악대사전』에서는 취구 1개와 지공 6개의 형태의 당적을 소개하고 있는데 음역대나 지공법이 현재의 소금과 동일하다.
○구음과 표기법
소금으로 통일되기 이전의 당적 역시, 현행 소금과 마찬가지로 대금과 같은 구음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왕직 아악부의 당적보를 보면 리듬표기에 있어서 현재와 차이가 있으나 율명, 꾸밈음, 관용 선율의 표기에 있어서 현재 소금과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연주방법과 기법
당적 연주법은 소금과 동일했을 것이다. 좌식(坐式) 연주 시에는 책상다리로 앉아 허리를 곧게 펴는 자세가 기본이다. 이는 관악기 연주에 중요한 안정적인 입김을 복식호흡을 통해 얻기 위한 것이다. 당적은 소금이나 대금과 마찬가지로 바닥과 평행을 유지하도록 들고, 고개를 왼쪽으로 약간 돌려서 취구에 입술을 대고 연주한다. 소금과 마찬가지로 악기를 왼쪽 어깨에 걸치지 않고 오직 두 손으로 받쳐서 연주한다. 운지법 역시 대금·소금과 같아서, 왼손 엄지가 1공 아래에 오도록 하고, 제1~3공을 왼손 검지ㆍ중지ㆍ약지로 막고, 오른손 엄지로 제4공 아래를 받치고 제4~6공을 오른손 검지ㆍ중지ㆍ약지로 막는다. 대금과 달리 팔꿈치를 과하게 벌리지 않고 편안하게 연주하며, 지공을 막을 때 양손 모두 손가락 첫째 마디 부분을 사용한다.
○연주악곡
〈낙양춘〉ㆍ〈보허자〉ㆍ〈여민락적〉 ㆍ〈여민락령〉ㆍ〈해령〉등 합주음악에 사용된다. 현재는 소금과 당적의 구분이 사라졌으므로 소금으로 연주하는 〈여민락〉ㆍ〈도드리〉ㆍ〈취타〉ㆍ〈수제천〉ㆍ〈관악영산회상〉ㆍ〈평조회상〉ㆍ〈청성자진한잎〉 등 모두 같은 악기를 사용한다.
○제작 및 관리방법
『악학궤범』에서는 당적을 만드는 데에 황죽(黃竹)을 쓴다고 하였으나, 오늘날은 쌍골죽(雙骨竹)을 재료로 한다. 대금이나 소금과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의 대나무를 최소한으로 다듬어 거의 그대로 사용하여 만들되, 단지 대금에 쓰이는 것보다 굵기가 가는 나무를 사용할 뿐이다. 삼 년 정도 성장한 쌍골죽 중 외경이 3cm 정도 되는 개체를 뿌리째 적당한 길이로 잘라 채취한다. 이 뿌리 부분이 취구 쪽이 된다. 이후 제작과정은 대금에서 청공을 뚫는 단계를 제외하면 대금제작과정 과 거의 동일하다.
홍순욱(洪淳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