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정현석 편저(성무경 역주), 『교방가요: 조선후기 지방 교방의 악·가·무』, 보고사, 2002.
항장무의 무원은 진주교방의 경우 8명의 무용수가 항왕ㆍ우미인ㆍ패공ㆍ범증ㆍ장량ㆍ항장ㆍ항백ㆍ번쾌의 역할을 나누어 맡았으며, 범증은 노기가 담당하였다. 집사 2명, 청기수 2명, 홍기수 2명, 세악수 6명, 취고수 8명으로 군례가 행해졌다.
항장무는 검무가 극과 만나 검무를 극 속에서 여러 차례 즐길 수 있는 춤이다. 항장무의 검무는 별도의 춤의 형태라기보다 극에 맞게 연출된 것으로 보인다. 검무 자체의 춤사위나 동작은 기록된 바가 없으나 유일한 무도(舞圖)인 『교방가요(敎坊歌謠)』(1865)의 ‘항장무’ 그림에 긴 쌍검을 들고 추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긴 쌍검을 들고 추는 동작은 검무의 동작과 유사하다. 항장과 항백이 서로 검무를 추며 보이지 않는 긴장감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쌍검대무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해주교방의 명선 역시 “홍문연 큰 잔치에 항장에 날랜 칼이 유졍장을 향하난 듯”이라고 하여 검무가 극의 긴장감을 유도하는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항장무는 무극이기 때문에 배역 간의 대사로 극이 전개되며, 별도의 창사가 없다.
○ 반주 음악
『교방가요』에는 항장무의 취고수와 세악수의 악대명을 기록하였는데, 취고수는 〈대취타〉를, 세악수는 〈검무〉 반주음악을 연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방가요의』 도상에 의하면 삼현육각 편성이며, 세악수 내지 취고수가 모두 8명이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항장무 복식은 『교방가요』에 의하면, 항왕은 청색 철릭을 입고 칼과 채찍을 찼다. 우미인은 초록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었다. 패공은 홍색 철릭을 입고 칼과 채찍을 찼다. 범증은 흰 도포에 패옥을 찼으며, 장량은 청색 도포를 입었고, 항장과 항백은 군복을 입었다. 번쾌는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며 방패를 들고 칼을 찼다. 집사 두 명은 군복을 입었으며 전통을 메고 칼과 채찍을 찼다. 해주교방 소속 명선의 작품에도 “남철릭 불근 갓에 호수 대검 고이토다”라고 하여 철릭에 호수를 꽂은 주립, 큰 칼은 지방에 상관없이 대체적인 항장무의 무관 복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구로는 연회에서 쓰는 가구인 찬탁이 있고, 영기(令旗) 2개도 쓰였다.
○ 역사적 변천
항장무는 1900년대 이후에도 협률사ㆍ광무대 등의 무대에서 자주 공연하였으며, 조합과 권번을 통해 전승되었다. 1913년 고종 탄신 축하연에서 다동조합과 광교조합 기생들이,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에서는 신창조합 기생들이 항장무를 추었다. 등장인물의 하나인 번쾌를 중심으로 <번쾌무>
가 추어지기도 했고, 한남권번이
<홍문연연의>
라는 작품으로 재구성하기도 했다.
홍문연연의>
번쾌무>
이후 경상도 울산에서 1950년대에 항장무를 추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62년 제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평안북도 팀이 항장무를 선보였다. 또한 국가무형유산 제34호 강령탈춤의 예능보유자인 김실자(金實子, 1928~2015)가 1960년대 김기수(金琪洙, 1936~2020)에게 탈춤을 배울 때 항장무로 무용발표를 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김은자(金恩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