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창사제수창 창사는 임금의 높은 덕(德)과 만수무강을 송축하는 죽간자 진구호를 시작으로, 선모의 치어(致語), 협무의 「제수창사(帝壽昌詞)」ㆍ「천자만년사(天子萬年詞)」에 이어 죽간자 퇴구호가 있다. 한문시로 된 창사는 조선말까지 큰 변화 없이 전승되었으나 때로는 협무 창사가 생략되거나, 무동정재에서 죽간자 구호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었다. [죽간자 구호]帝德協和, 方見河淸之祥.제덕협화, 방견하청지상.聖壽無疆, 普切山斗之頌.성수무강, 보절산두지송.敢冒宸顔, 庸陳口號.감모신안, 용진구호.[죽간자 구호 번역문]우리 임금님 덕이 만방을 화목하게 하셨으니이제 황하(黃河) 물이 맑아지는 상서를 보게 되고성수(聖壽)가 한이 없으시니태산북두처럼 송축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여감히 용안을 뵙고 구호(口號)를 올립니다.[선모 치어]帝壽昌, 賀聖明也.제수창, 하성명야.洪惟我陛下,홍유아폐하德耀寰表, 如天之統物,덕요환표, 여천지통물如地之載物.여지지재물乃至於壽域春臺,내지어수역춘대金膏玉燭,금고옥촉以萬壽無疆,이만수무강歌之頌禱也가지송도야.[선모 치어 번역문]제수창은 성명(聖明, 여기서는 명나라 황제)께 올리는 하례(賀禮)입니다.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폐하께서는, 덕이 온 누리에 찬란하여하늘이 만물을 거느리는 것 같고 땅이 만물을 싣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이에 사람마다 장수하는 태평성대가 되었으니,금고(金膏, 신선이 마시는 약)와 옥촉(玉燭, 신선이 사는 세상을 밝히는 촛불)으로만수무강을 비옵고, 노래하여 송축하나이다.[전대 창사](제1대)惟邦籙之無疆兮, 慶百世而綿綿.유방록지무강혜, 경백세이면면.傳子及孫兮, 彌于憶千.전자급손혜, 미우억천.彰聖德之孔明兮, 統萬物而象天.창성덕지공명혜, 통만물이상천.帝膺壽以昌兮, 景福圓全.제응수이창혜, 경복원전.俾延吉祥兮, 其瑧如川.비연길상혜, 기진여천.臣拜稽首兮, 吾君萬年.신배계수혜, 오군만년.[전대 창사 번역문](제1대)앞으로 나라가 누릴 좋은 운수 한이 없어백세(百世)를 이어지고 또 이어질 것을 경하하오니자자손손 전해져억만년에 이르기를 비옵나이다.거룩한 덕(德) 밝디 밝음을 더욱 드러내시고만물을 거느리시며 하늘을 본받으시매,상제께서 수(壽)를 내리시고 창성하게 하시니,큰 복이 원만하고 온전하나이다.길하고 상서로운 일 이어지게 해 주시니그런 일들이 냇물처럼 모여 드나이다.신(臣)이 머리 조아려 절하노니,우리 임금님 만년 수를 누리시기를[각대 병창사]天子萬年兮, 介爾昭明.천자만년혜, 개이소명.昭明有融兮, 寰海永淸.소명유융혜, 환해영청.嘉樂吉慶兮, 頌騰山聲가락길경혜, 송등산성.子孫千億兮, 景福太平.자손천억혜, 경복태평.[각대 병창사 번역문]천자가 만년을 누리시매,그 덕을 더욱 밝게 가지시리라.밝고 또 더욱 밝아사해(四海)가 영원히 맑도다.큰 경사 즐기시매칭송하는 소리가 산을 울리나이다.자손이 천억이 될지니큰 복에 태평을 누리시리이다.[죽간자 구호]奏九曲而告成, 祝萬歲而有永.주구곡이고성, 축만세이유영.幸値昇平之會, 用伸懽慶之悃.행치승평지회, 용신환경지곤.拜辭華筵, 式宴譽處.배사화연, 식연예처.[죽간자 구호 번역문]모든 곡 연주해 음악이 끝났음을 아뢰고영원히 만세를 누리시기를 비옵니다.다행히 태평성대의 잔치를 맞아기뻐 축하하는 정성을 폈나이다.연석(筵席)에 절 올리고 물러나니편안히 잔치를 즐기소서.- 원문출처: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1』 번역: 강명관
○ 반주 음악반주음악으로는 〈보허자령〉과 〈향당교주〉 두 곡을 연주한다. 제수창을 포함하여 조선 후기 순조 때에 창작된 당악정재 〈장생보연지무〉ㆍ〈연백복지무〉ㆍ 〈최화무〉 네 종목은 모두 이 두 곡만 사용하였다. ○ 복식 의물 무구정재복식은 연향별로 차이가 있으나, 제수창의 복식에 대해 별도의 기록이 없다. 의궤에 의하면 “각 춤의 정재 무동 복식은 그 정재에 입어야 할 바에 따른다.(各舞呈才舞童服飾隨其呈才所着)”라고 하였다. 제수창은 일반적인 무동, 여령 복식을 착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무동의 경우 『(기축) 진찬의궤』 복식도(服飾圖)에 의하면, 각건(角巾, 혹은 복두)을 쓰고 흰색 바탕에 흑색 선을 두른 중단의[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線中單衣)]에 홍포(紅袍)를 착용하였다. 이외에 순조대에 같이 창작된 당악정재 장생보연지무, 연백복지무, 최화무 복식을 참고하면 남야대(藍也帶)를 매고 흑화(黑靴)를 신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1902년(임인) 진찬에는 화관을 쓰고 홍화주의(紅禾紬衣, 또는 색동주의)ㆍ홍화주상(紅禾紬裳)ㆍ백단의(白單衣)에 홍남야대(紅藍也帶)를 두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령의 복식은 『(임진) 진찬의궤』(1892)와 『(신축)진연의궤(1901)』에서 알 수 있다. 화관(花冠)을 쓰고 녹초단삼(綠綃單衫)을 착용하고 안에는 남색 치마[남색상(藍色裳)]에 겉은 홍색 치마[홍초상(紅綃裳)]를 입고, 홍단금루수대(紅緞金縷繡帶)를 매고, 오색한삼(五色汗衫)에 초록혜(草綠鞋)를 신었다. 조선 후기 여령복식은 일반적으로 황초단삼을 입는데 반해 녹초단삼을 입은 것이 이채롭다.
제수창에는 죽간자와 족자(簇子), 황개(黃蓋) 등 당악정재에 사용되는 의물이 등장한다. 족자에는 선모 치어가 기록되어 있으며, 황개는 햇빛을 가리기 위한 일종의 차양으로, 황색으로 만든 개(盖)를 일컫는다.○ 역사적 변천 및 전승제수창이 1829년 초연된 후 거의 연행되지 않다가 1892년(임진, 고종 29)의 고종의 즉위 30년과 望五(41세)를 경축하는 진찬에서 추어졌다. 대한제국 시기에 1901년(신축, 고종 광무 5) 고종황제 탄신 50주년 경축 진연(進宴)에서 무동정재ㆍ여령정재로, 1902년(임인, 고종 광무 6)의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 기념의 진연에서도 무동정재ㆍ여령정재로 추어지는 등 궁중 잔치에 몇 차례 연행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중단되었고, 1981년 국립국악원에서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의 안무로 재현되어 현재까지 국립국악원 무용단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심숙경(沈淑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