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평만세지곡(昇平萬歲之曲), 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
1. 조선 세종(世宗) 때 창작되어 현재까지 전승되는 궁중음악.
2. 궁중음악 〈여민락(與民樂)〉에서 유래한 민간 풍류곡.
3. 조선 세종대에 창작된 궁중음악 〈여민락(與民樂)〉 관련 악곡의 총칭.
〈여민락〉은 15세기 전반 세종(世宗) 때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한문 가사를 부르는 노래로 창제되어 궁중에서 조회악(朝會樂), 회례악(會禮樂), 연례악(宴禮樂) 등으로 채택된 이래 지속적으로 연주되어 현재까지 전승되는 궁중음악이다. 조선후기에 기악곡화되었고, 리듬과 선율도 변하였으며, 16세기 무렵부터 민간의 풍류로도 수용되었다. 현재 연주되는〈여민락〉 관련 음악으로는 〈여민락만(與民樂慢)〉, 〈여민락령(與民樂令, 본령[本令])〉, 〈해령(解令)〉, 관현합주 〈여민락〉이 있다.
○ 개요
〈여민락〉은 15세기 전반 세종대에 창제된 악곡으로, 〈용비어천가〉 제1ㆍ2ㆍ3ㆍ4장과 제125장의 한문 가사를 노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궁중에서는 조회악ㆍ회례악ㆍ연례악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16세기 무렵부터는 민간에서도 풍류 음악으로 수용되었다. 현재 전해지는 〈여민락〉 관련 악곡으로는 〈여민락만〉, 〈여민락령(본령)〉, 〈해령〉, 그리고 관현합주 형태의 〈여민락〉이 있다.
○ 음악적 특징
〈여민락〉은 본래 10장으로 되어 있었으나, 〈용비어천가〉 125장을 노래하던 부분의 제8∼10장은 탈락되고 현재는 7장까지만 연주된다.
〈여민락만〉은 총 10장 구성이고, 각 장은 11마루(악절) 혹은 12마루로 되어있다.
〈여민락령〉은 장 구분 없이 총 32마루(악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마루의 길이는 일정하지 않다.
〈해령〉은 총 12마루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루 하나가 끝날 때 주선율인 피리가 쉬는 동안 대금, 당적, 해금, 아쟁 등이 가락을 이어 주는 연음 기법을 사용한다.
〈여민락〉은 황종(黃:E♭4)ㆍ태주(太:F4)ㆍ중려(仲:A♭4)ㆍ임종(林:B♭4)ㆍ남려(南:C5)의 5음 음계의 황종 평조로 되어 있다.
〈여민락만〉은 황종(黃:C4)ㆍ태주(太:D4)ㆍ중려(仲:F4)ㆍ임종(林:G4)ㆍ남려(南:A4)ㆍ무역(無:A#4)의 6음 음계로 구성되어 있고, 〈여민락령〉과 〈해령〉은 황종(黃:C4)ㆍ태주(太:D4)ㆍ중려(仲:F4)ㆍ임종(林:G4)ㆍ남려(南:A4)의 5음 음계의 황종 평조로 되어 있다.
〈여민락〉은 제1∼3장까지는 1장단이 20박이고, 제4∼7장까지는 10박으로 되어 있다. 1ㆍ3ㆍ5ㆍ7장과 2ㆍ4ㆍ6장, 즉 홀수 장과 짝수 장끼리는 서로 동일한 가락이 많이 되풀이된다. 〈해령〉은 불규칙한 리듬으로 되어 있다.

〈여민락〉은 전기에는 관현악 반주를 수반하는 성악곡이었으나, 조선후기에 기악곡으로 변하였다. 민간에서는 대편성의 관현악 합주 대신에 거문고의 독주나 소규모 편성의 합주로 연주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전통의 상당 부분이 단절되는 과정에서 〈여민락〉의 연주 방식도 변화를 겪게 되어, 관현악으로 이루어진 무대 공연용 음악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른다.
○ 역사적 변천 및 현황
〈여민락〉은 세종 29년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국한문 혼용체의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던 〈치화평〉, 〈취풍형〉과 함께 창작되었다. 〈여민락〉은 〈용비어천가〉 전체 125장 중 1, 2, 3, 4장과 제일 끝 125장을 노래하고, 〈치화평〉과 〈취풍형〉은 국한문 혼용체의 〈용비어천가〉 125장 전체를 노래한다. 〈치화평〉과 〈취풍형〉은 전승이 단절되고 현재 〈여민락〉만 전승되고 있다.
〈여민락〉은 궁중 연례에 쓰기 위해 만들어진 정재 《봉래의》의 반주음악 중 한 곡이다. 《봉래의》는 〈전인자〉ㆍ〈진구호〉ㆍ〈여민락〉ㆍ〈치화평〉ㆍ〈취풍형〉ㆍ〈후인자〉ㆍ〈퇴구호〉로 구성되었는데, 〈여민락〉을 비롯한 〈치화평〉, 〈취풍형〉의 악보가 『조선왕조실록』 중 『세종실록』 권140∼145에 전한다.

『세종실록』에는 〈여민락〉 악보가 한 종류만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세종대에 〈여민락만〉과 〈여민락령〉 두 가지가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여민락〉은 조선조 내내 궁중의례에 지속적으로 쓰였다. 〈여민락만〉과 〈여민락령〉은 주로 국왕의 출궁과 환궁 때에 연주되었고, 〈여민락〉은 정재를 연행할 때에 연주되었다. 조선후기에는 〈여민락령〉이 〈처용무〉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되기도 하였다.
본래 성악곡이었던 〈여민락〉이 조선후기에 기악곡으로 변하면서, 선율과 리듬에도 변화가 생겼다. 잔가락이 늘면서 선율이 확대되었고, 〈여민락만〉과 〈여민락령〉은 조선 말엽에는 규칙적인 리듬으로 변하였다.

〈여민락〉은 다른 한편으로 민간에 수용되어 선비들의 인격도야를 위한 풍류악으로 연주되었는데, 오늘날 〈여민락〉이라고 하면 이 민간의 〈여민락〉(일명 풍류 〈여민락〉)을 의미하기도 한다. 20세기 초에는 〈여민락령〉을 변주한 〈해령〉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현재 〈여민락〉 관련 음악으로 〈여민락〉, 〈여민락만〉, 〈여민락령〉, 〈해령〉 네 가지 악곡이 있는데 그 중 〈여민락만〉이 『세종실록』의 〈여민락〉과 가장 가깝다.

○ 노랫말
〈용비어천가〉 125장 중 제1, 2장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순한문체 |
국한문 혼용체 |
해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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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海東六龍飛 |
海東六龍이 샤 일마다 |
해동에 여섯 용이 나시니 |
2장 |
根深之木 風亦不扤 |
불휘기픈남ᄀᆞᆫ ᄇᆞᄅᆞ매 아니뮐ᄊᆡ |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니 |
[여민락 장별 구성 및 노랫말]
용비어천가 |
여민락 |
노랫말 |
수장(1장) |
1장 해동장 |
해동육룡비(海東六龍飛). |
2장 |
2장 근심장 |
근심지목, 풍역불올(根深之木, 風亦不扤). |
3장 원원장 |
원원지수, 한역불갈(源遠之水, 旱亦不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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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
4장 석주장 |
석주대왕, 우빈사의(昔周大王, 于豳斯依). |
5장 금아장 |
금아시조, 경흥시택(今我始祖, 慶興是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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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
6장 적인장 |
적인여처, 적인우침(狄人與處, 狄人于侵). |
7장 야인장 |
야인여처, 야인불례(野人與處, 野人不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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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장(125장) |
8장 천세장 |
천세묵정한수양(千世默定漢水陽). |
9장 자자장 |
자자손손, 성신수계(子子孫孫, 聖神雖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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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오호장 |
오호! 사왕감차(嗚呼! 嗣王監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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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世宗實錄)』
『악학궤범(樂學軌範)』
『속악원보(俗樂源譜)』
『금합자보(琴合字譜)』
『삼죽금보(三竹琴譜)』
송방송, 「조선후기 여민락계 악곡의 전승 양상」, 『한국음악연구』 41, 2007.
이혜구, 「여민락고」, 『한국음악연구』, 국민음악연구회, 1957.
이혜구, 「용비어천가의 형식」,『한국음악서설』, 서울대학교출판부, 1975.
임미선, 「여민락계 음악의 연주전통, 그 단절과 전승」, 『한국음악사학보』 49, 2012.
Condit. Jonathan, “The Evolution of Yomllak from the Fifteennth Century to the Present Day”, 『장사훈박사회갑기념음악학논총』, 한국국악학회, 1976.
임미선(林美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