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민락>의 한 갈래로, 궁중의 행악(行樂)과 연례악(宴禮樂)으로 사용되던 당악 편성의 관악 합주곡.
〈여민락〉은 15세기 전반 세종(世宗) 때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노랫말로 하여 창작한 궁중 정재 《봉래의(蓬萊儀)》에서, 「용비어천가」의 한문 노랫말을 부르는 성악곡이었다. ‘여민락’이라는 이름은 『맹자(孟子)』에 수록된 “백성과 함께 즐긴다”라는 뜻의 ‘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따왔다.
〈여민락〉을 최초로 수록한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한 가지의 〈여민락〉 악보가 전하지만, 실제로는 〈여민락만〉과 여민락령 두 종류의 〈여민락〉을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악학궤범(樂學軌範)』(1493)에 이 곡의 용례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속악원보(俗樂源譜)』 권7의 「방향보(方響譜)」가 현행 <여민락령>과 직접 연결된다.



○ 역사 변천
<여민락령>은 조선 후기 <여민락령>을 변주한 〈해령(解令)〉의 등장으로 ‘본래의 령’이란 의미로 <본령>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줄여서 <령>’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상서롭고 평화로운 나날’이라는 의미의 〈태평춘지곡〉이라는 아명도 가지고 있다.
이 곡은 임금이 행차할 때 행악으로 사용되었고, 궁중 연향과 조정의식에서 연주하는 연례음악이나 정재 반주로도 쓰였다. <여민락령>은 조선 시대 내내 전정 헌가와 등가 악대에서 연주되었지만, 고종 대 이후 전정헌가 악대에서만 연주되었다.
○ 연행 시기 및 장소
임금이 행차할 때 행악으로 사용되었고, 궁중 연향과 조정의식에서 연주하는 연례음악이나 정재 반주로도 쓰였다. 여민락령은 조선 시대 내내 전정 헌가와 등가 악대에서 연주되었지만, 고종대 이후 전정헌가 악대에서만 연주하였다.
○ 음악적 특징
<여민락령>은 장 구분 없이 총 32마루로 구성되는 기악곡으로, 각 마루의 길이는 일정하지 않다. 이 곡은 기본적으로 1음 1박의 규칙적인 리듬을 지니고 있으며, 각 마루의 마지막 음은 2박 길이로 연주한다. <여민락령>은 당악 계통의 음악으로, 황종(黃:C4)ㆍ태주(太:D4)ㆍ중려(仲:F4)ㆍ임종(林:G4)ㆍ남려(南:A4)의 5음 음계로 구성되며 황종이 중심음이다.
본래 전정헌가와 등가 악대에서 연주될 때는 관현악 합주 편성이었으나, 고종 이후 전정헌가에서 연주되면서 관악 합주 형태로 바뀌게 된다. 악기편성은 편종, 편경과 당악계열 악기인 당피리ㆍ당적ㆍ대금ㆍ해금ㆍ아쟁ㆍ좌고ㆍ박으로 이루어진다.
○ 악곡명
여민락령은 조선 후기 여민락령을 변주한 〈해령(解令)〉의 등장으로 본래의 령(令)이란 의미로 ‘본령(本令)’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줄여서 ‘령(令)’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상서롭고 평화로운 나날’이라는 의미의 〈태평춘지곡(太平春之曲)〉이라는 아명(雅名)도 가지고 있다.
○ 악대 및 악기편성
본래 전정헌가와 등가 악대에서 연주될 때는 관현악 합주 편성이었으나, 고종 이후 전정헌가에서 연주되면서 관악 합주 형태로 바뀌게 된다. 악기편성은 편종, 편경과 당악계열 악기인 당피리ㆍ대금ㆍ해금ㆍ아쟁ㆍ좌고ㆍ박으로 이루어진다.
반혜성, 「조선조 궁중과 풍류방에서의 여민락 변모 양상」, 『제4회 세계한국학대회발표논문』, 2008.
송방송, 「조선후기 여민락계 악곡의 전승 양상」, 『한국음악연구』 41, 2007.
이혜구, 「여민락고」, 『한국음악연구』, 1957.
임미선, 『조선후기 공연문화와 음악』, 민속원, 2012.
임미선, 「여민락계 음악의 연주전통, 그 단절과 전승」, 『한국음악사학보』 49, 2012.
Condit, Jonathan , “The Evolution of Yomilak from Fifteenth Century to the Present Day”, 『장사훈박사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1977.
이상규(李相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