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 《강상련》
심청이의 효성을 통해 아버지가 눈을 뜬다는 이야기를 노래한 판소리
심청가는 맹인인 부친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 제물이 된 심청이가 다시 살아나와 황후가 된 후 부친과 재회하여 마침내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의 판소리이다. ‘효(孝)’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계층, 나이를 넘어 전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판소리이다. 현재 심청가는 서편제, 강산제, 동초제, 만정제 등 다양한 유파가 전승되고 있으며 사설의 짜임새와 극적 구성 등에서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반부가 심청의 죽음을 향해 가는 비극적 구조로 되어 있다면 후반부는 심봉사를 중심으로 한 골계적이고 축제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심청가의 근원설화로 ‘효녀설화’, ‘인신공희(人身供犧)설화’, ‘맹인개안설화’ 등이 거론되지만 직접적인 이야기의 원형으로 ‘원홍장 설화’가 지목되기도 한다. 이 ‘원홍장 설화’는 곡성의 관음사가 건립된 내력을 적은 『관음사 사적기』에 전한다. 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충청도 대흥 땅에 장님 원량이 살았다. 그에게 '홍장'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용모가 수려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마을 어귀를 지나다가 승려 성공(性空)을 만났는데 그가 장님 원량에게 큰절을 하였다. 스님이 말하기를 간밤의 꿈에 신인이 나타나서 오늘 마을에서 장님을 만날 텐데 그가 '대화주'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원량은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설명하였으나 승려는 한사코 시주할 것을 청하였다. 부녀가 함께 고민하고 있는데 저녁 무렵 진나라 사신이 찾아와서는 진나라 혜제가 새 황후 될 분이 동국에 있을 것이니 가보라고 하여 배를 타고 포구에 이르렀는데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이 집으로 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홍장은 진나라 사람들이 가져온 폐백을 스님에게 바치고 중국에 들어가 황후가 되었다. 황후가 된 후에도 백제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홍장은 자신이 원불로 모시던 관음성중을 석선에 실어 백제로 보냈다. 옥과(지금의 곡성군 옥과면)에 사는 '성덕'이라는 여자가 집을 나섰다가 우연히 그 배를 발견하고는 관음상을 안치할 곳을 찾던 끝에 마땅한 장소를 골라 모시고 '성덕산 관음사'라 이름하였다. 한편 홍장의 아버지 원량은 딸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홀연히 눈을 뜨고 95세까지 명을 누렸다.’1 심청가가 언제부터 불렸는지를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영·정조 연간에 지금의 형태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조선창극사』에는 서산 출신의 명창 방만춘(方萬春)이 황해도 봉산읍 음률가와 함께 《적벽가》와 심청가를 고전에서 윤색, 개작하였다고 하였다. 심청가는 판소리 계열과 문장체 소설 계열이 매우 다른 방향으로 전승되어 왔는데, 특히 경판본 계열의 심청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이야기와 다른 내용이 많다. 따라서 판소리 심청가가 먼저 생긴 것인지 소설 심청전이 먼저 생긴 것인지에 대해서는 쟁점으로 남아있다.
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관음사」
○ 내용과 주제
현재 《심청가》에서 파생된 이본은 약 200여 종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심청가, 심청전, 강상련 등의 제목이 존재한다. 기록물로 문장체 소설계인 한남본 계열과 창본에 가까운 판소리 계열, 그리고 가사체 계열의 심청가가 남아있다.
심청가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몰락한 양반 가문 후손인 심봉사는 곽씨부인과 화목하게 살다가 자식을 빌어 딸을 낳는다. 곽씨부인은 산후별증으로 심청을 낳은지 7일만에 죽고, 심봉사는 동냥젖을 먹이며 심청을 기르게 된다. 심청이 15세가 되었을 무렵 심봉사는 장승상 부인댁에 간 심청을 마중을 나가다가 개울에 빠져 죽을 위기를 겪게 된다. 몽운사 화주승이 심봉사를 건져내고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면 눈을 뜨게 될 것이라 말하니 심봉사가 시주를 약속한다. 심청이 돌아와 그 말을 듣고 남경 선인들에게 몸을 팔아 인당수의 제물로 가기로 한다. 심청이 결국 아버지와 헤어져 인당수에 빠졌으나, 옥황상제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나 황후가 된다. 심봉사는 심청이 떠난 후 슬픔에 겨워 살다가 뺑덕어미의 유혹에 빠져 한동안 즐겁게 지낸다. 심청의 건의로 나라에서 맹인잔치를 열자 뺑덕어미와 함께 길을 떠났으나, 뺑덕어미는 도중에 다른 봉사와 도망하고 만다. 심봉사는 어렵게 맹인잔치에 도착하고 심황후를 만나 눈을 뜨게 된다. 심봉사가 눈을 뜨자 나라의 모든 맹인들이 함께 눈을 뜬다.
심청가는 가난과 장애로 힘들게 살던 서민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몸을 팔아야 했던 심청의 상황과 죽음은 인당수 투신을 계기로 반전된다. 전반부에서 지속적으로 표현되는 고난과 슬픈 장면, 심청이 죽을 수밖에 없는 비장함은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하지만 심청의 희생과 죽음을 통해 전반부의 비극은 반전되고 특히 결말에 심청과 재회하여 눈을 뜨게 된 사람이 심봉사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에 이르기까지 확대되고 있어서, 심청가의 주제는 ‘효’를 넘어선 ‘희생을 통한 인간 구원’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심청 역시 ‘희생효’의 이미지를 넘어 여성 영웅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심청가의 주요 대목과 유파 정노식(鄭魯湜, 1899~1965)의 『조선창극사』에 소개된 심청가의 더늠은 다음과 같다. 김채만(金采萬, 1865~1911)의 〈초앞(삯바느질)〉, 김제철의 〈심청탄생〉, 백근용(白根龍의 〈곽씨부인장례(상여치레)〉, 주상환(朱祥煥)의 〈젖동냥〉, 최승학(崔昇鶴)의 〈심청의 동냥 자청〉, 정창업(丁昌業, 1847-1889)의 〈중타령〉, 이창윤(李昌允)의 〈부녀이별〉, 전도성(全道成, 1864~?)의 〈범피중류〉, 정춘풍(鄭春風)의 〈소상팔경가〉가 그것이다. 이러한 더늠은 주로 심청가의 전반부에 집중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심청가 후반부의 음악이 후대에 짜여졌음을 알 수 있다. 후반부의 주요 대목으로는 송천자가 부르는 〈화초타령〉이 있는데 이 대목은 18세기 명창인 우춘대(禹春大)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 〈추월만정〉 대목은 일제강점기 이화중선(李花中仙, 1899~1943)이 불러 인기가 높았다고 전해진다. 〈뺑덕어미 행실〉, 〈방아타령〉, 〈부녀상봉〉, 〈심봉사 눈 뜨는 대목〉 등도 후반부 주요 대목으로 알려져 있다. 심청가를 잘 불렀다고 기록된 명창으로는 순조 대의 김제철, 철종 때의 박유전(朴裕全, 1835~1906)과 이날치(李捺致, 1820~1892), 주상환, 전해종(全海宗), 정창업, 최승학, 김창록(崔昇鶴)이 있으며, 고종 대의 황호통(黃浩通), 이창윤, 배희근(裵喜根), 김채만(金采萬, 1865~1911), 정재근(鄭在根, 1853~1914), 송만갑(宋萬甲, 1865~1939), 이동백(李東伯, 1866~1949), 정응민(鄭應珉, 1896~1963) 등이 있다. 이들 명창들은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를 막론하고 있어서, 어느 유파에서나 심청가를 장기로 삼은 명창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심청가는 동편제 계열에서는 송흥록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송만갑, 강도근(姜道根, 1918~1996) 등으로 이어져 불리웠으나 현재는 전승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박록주(朴綠珠, 1905~1979)가 심청가를 잘 불렀다고 전해지며, 김소희(金素姬, 1917~1995)의 심청가에 송만갑의 영향이 있다. 박유전(朴裕全, 1835~1906)이 창시한 서편제와 강산제 계열에서는 모두 심청가가 전승되었는데, 서편제는 박유전-이날치-김채만-박동실-한애순/장월중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편제 심청가는 고졸하고 애상적인 느낌이 강한 반면, 후기에 정립된 강산제에서는 유가적 품위를 강조하고 비극적 미의식을 절제했다. 강산제 심청가는 박유전-정재근-정응민-성창순으로 전승되어 내려왔다. 중고제 심청가는 박동진(朴東鎭, 1916~2003)에 의해 전승되었다. 박동진은 중고제 김창진(金昌鎭, 1875~?) 명창에게 심청가를 배워 자신의 소리로 다시 짰다. 1960년대 이후로는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기면서 여러 소리를 바탕으로 새롭게 짠 바디가 생겨났다. 동초제 심청가는 김연수-오정숙-이일주로 전승되었다. 만정(김소희)제 심청가는 신영희, 안숙선 등에게로 전승되었다. 현재 전해지는 서편제, 강산제, 동초제에서 장단 중 진양조와 중모리의 사용 빈도가 높은 것을 보아 심청가가 비장감에 비중을 크게 두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장단 구성으로는 강산제가 원박을 중심으로 하여 장단을 짜나갔음에 비해 서편제는 원박에 자진- 이나 늦은- 을 덧붙여 빠르기를 조절하고 있으며, 동초제는 사설의 확대에 따라 가장 많은 장단의 가짓수를 가지고 장면의 전환마다 장단의 잦은 교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강산제는 세련된 문체의 사설과 더불어 장단에도 극적 전환을 중요시하였고, 특히 메나리조, 덜렁제, 우조 등의 다양한 변화를 모색함으로써 서편과 동편을 융합하고자 하였다.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1964)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구전무형유산걸작(2003)
심청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가장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심청이 처한 현실과 심봉사가 가진 장애, 모친의 부재에서 오는 불안과 상실, 가난과 슬픔의 문제가 전반부에 주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조선 후기 서민들이 느꼈을 현실적인 고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심청이 죽음을 통해 이룬 존재의 변화가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이것은 황후, 곧 위정자로서 국가가 장애인을 위해 베풀어야 할 복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아픈 사람을 널리 보살피고 그들을 위해 의식주를 해결할 때 모든 사람의 장애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결말 부분이 보여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판소리 심청가는 비극적 현실을 환상적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조선 후기 삶의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심봉사같은 이들의 처지를 문제 삼아 보여주고 있다. 심청가는 《춘향가》와 함께 널리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심청가의 많은 대목들이 사설과 음악 부분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울리고 웃기기’를 포함한 극적 상황을 짜임새 있게 보여주고 있어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심청가가 표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심청의 ‘효행’은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가치관으로서 가족 내의 윤리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면적으로는 ‘희생을 통한 인간 구원’으로 나아가고 있어서 삶의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김혜정,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유영대, 『심청전 연구』, 문학아카데미사, 1989. 유영대·최동현, 『심청가 연구』, 민속원, 2000. 정노식 저, 정병헌 교주, 『조선창극사』, 태학사, 1997. 최혜진, 『판소리의 전승과 연행자』, 역락, 2005. 신호림, 「심청전의 계열과 주제적 변주」,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6.
최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