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퉁소 종류 | 퉁소명(소장자) | 전체길이 | 구경(내경) | 청공유무 | 비고 | 산조퉁소 | 신용현 퉁소 | 50cm | 미상 | 있음 | 진도 시나위 연주자 |
| 한범수 퉁소 | 58.8cm | (2.25cm) | 있음 | 대금, 해금 산조 연주자 | |
| 편재준 퉁소 | 58.8cm | (2.2cm) | 없음 | 대금, 퉁소 산조연주자 | 북청사자놀음 퉁소 | 동선본 퉁소 | 71.7cm | 4cm | 있음 | 북청사자놀음 이수자 |
| 국악원소장 퉁소 | 69.8cm | 3.5cm(2.5cm) | 있음 | 국악박물관 0262 |
○ 재료 및 제작법 퉁소의 재료는 황죽을 주로 사용하며, 대금을 만들 때와 같은 방법으로 관대를 규격에 맞게 재단하여 만든다. 먼저 상단의 앞쪽을 도려내어 취구를 만들고, 청공이 있는 경우, 상단 취구 아래에 구멍을 뚫고, 갈대의 속청을 붙인다. 지공은 뒤에 한 개, 앞에 다섯 개이며, 민간에서는 앞의 지공이 6개인 경우도 있다. 현전하는 퉁소 유물을 살펴보면, 20세기 전반기에 산조를 연주하던 음악가들은 악기의 규격과 지공의 수, 청공의 첨삭을 비교적 자유롭게 변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연주 방법과 기법 퉁소는 단소와 비슷하게 U자형의 취구에 입김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연주를 한다. 그러나 퉁소는 단소보다 취구가 크고 악기가 길기 때문에 왼손으로 퉁소의 위쪽을 잡고 오른손으로 퉁소의 아래쪽을 잡아 악기를 지탱한다. 또한 혀를 써서 장식음을 연주하거나 농음(弄音) 하며, 청공을 울리는 방법은 대금 연주방법과 유사하다. 다만 악기가 길고 세로로 부는 악기이기 때문에 농음을 할 때는 머리를 위 아래 또는 좌 우로 격하게 흔들며 연주한다. 또한 산조 연주 시에는 단소연주와 유사한 지공법과 연주형태를 사용하는 반면, 더 긴 퉁소를 사용하는 북청사자놀음에서는 앉지 않고 일어서서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 용도 퉁소는 북청사자놀음의 전 과장에서 여러 춤 반주에 사용되며, 애원성, 돈돌나리와 같은 민요도 연주한다. 한편, 20세기 이후 퉁소 시나위, 퉁소 산조 등이 시도되었고, 그 음악이 일부 전해지지만 다른 악기의 산조에 비해 전승이 활발한 편은 아니다. ○ 역사적 변천 퉁소의 전승은 고려 시대부터 문헌에서 확인되며 조선시대에는 궁중 의례 및 민간에서 폭넓게 향유되었다. 『고려사』 권71 악지의 '당악'에는 여덟 개의 구멍(8공)을 가진 퉁소가 소개되었는데, 이는 청공 구멍을 쓰지 않은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세종실록』 권132 「오례」에는 취구, 청공 및 지공 다섯 개, 칠성공 세 개 등 모두 열 개의 구멍(10공)이 처음으로 명시되었다.『악학궤범』에서는 지공이 하나 더 늘어난 퉁소 산형이 소개되었고, 청공에 대하여 ‘‘상단에서 4치쯤 되는 곳에 1공을 뚫고, 갈대의 속 청을 붙이고 부는데, 갈대 속청이 진동하여 소리가 ’청‘하므로, 청공이라고 한다’는 상세 설명이 기술되어 있다. 이후 조선후기 순조 때까지는 의궤 도설에 청공이 있는 퉁소가 수록되었는데, 17세기 전반기의 악보로 추정되는 『백운암금보』에 청공 없는 퉁소의 그림이 제시되어 있고, 의궤 도설에도 헌종 이후로는 청공과 칠성공 없는 간단한 형태가 묘사되어 있다. 퉁소는 조선후기까지 궁중음악 편성에 포함되었고, 문집에 기록된 시문 및 풍속화의 도상을 통해 민간의 상층사회 지식인들의 음악 향유에서 주요 악기로 전승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청사자놀음 같은 민간의 기층 연희에도 주요 악기로 자리잡았다. 20세기에 들어서 퉁소는 궁중음악 계통의 연주에서는 제외되는 한편, 추산 전용선, 유동초, 편재준 등의 명인들이 퉁소의 규격과 형태, 청공 첨삭 등의 변화를 시도하며 음악적 확장성을 시도하여 풍류 및 산조를 연주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그 음악 전승이 다른 악기에 비해 활발한 편은 아니며, 일부 창작곡 및 북청사자놀음의 반주악기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북청사자놀음은 현재 유일하게 퉁소가 연주되는 연희로 퉁소가 주선율을 이끈다.
조석연(趙石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