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소의 명칭은 중국에서 유래하였다. 왕자연(王子淵)의 「통소부(洞簫賦)」에 “통(洞)은 통(通)이니 밑이 없고 위아래가 통(通)하는 까닭에 통소(洞簫)라고 한다” 내용이 나온다. 배소(排簫)나 봉소(鳳簫)의 관처럼 관의 한쪽을 밀랍으로 막아서 음정을 조절하는 것과 달리 위아래가 뻥 뚫려 있다는 뜻이다. 퉁소는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악사 구중(丘仲)이 강족(羌族)의 관악기를 개량하여 만들었다고 전하며, 기록에서는 척팔(尺八)․척팔적(尺八笛)․척팔관(尺八管)․소관(簫管)․중관(中管)․수적(竪篴) 등으로 표기되었다. 이 중에서 척팔은 일본 쇼쇼인(正倉院)의 악기 물목(物目)에서도 보일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관악기로 전승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악 3호분」 후실 무악도 및 「장천 1호분」의 고구려벽화와 연기군 비암사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그리고 「백제금동대향로」에 퉁소 모양의 악기 도상이 있으나, 이를 퉁소 유래의 근거로 삼을 수 있을지는 연구가 필요하다. 악기의 명칭이 문헌에 수록된 것은 『고려사』 권71 악지, 「당악」 조 및 문집 기록들이다. 늦어도 고려시대에는 궁중과 민간에서 두루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〇 개요
퉁소는 고려 이후 조선 시대까지 궁중 음악 연주에도 편성되고 민간의 상층 사회 지식인들의 음악 향유에서도 연주되었으나 20세기 이후 그 전통은 단절되었다. 현재는 주로 북청사자놀음의 반주음악용으로 명맥이 유지되고 있으며, 일부 연주자들이 퉁소 산조를 시도한 바 있다. 북청사자놀음 및 산조에 사용된 악기의 규격과 형태에 차이가 있어 편의상 북청사자놀음용과 산조용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〇 구조와 형태
20세기 이전의 문헌에 기록된 퉁소의 구조와 형태는 조선 전기 『악학궤범』에 도설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퉁소는 대나무 관대에 취구(吹口) 하나, 지공(指孔) 다섯 또는 여섯 개로 를 가지며 칠성공(七星孔)이 있다. 그러나 헌종(憲宗) 이후의 그림에서는 청공과 칠성공이 사라졌으며, 현재 국립국악원에 전해 오는 퉁소에도 청공과 칠성공이 없다.
현재, 북청사자놀음에는 청공이 있고, 지공이 다섯 개, 혹은 여섯 개인 퉁소가 사용되며, 산조용은 청공이 있는 유형과 없는 유형이 있다. 현재 국립국악원 및 여러 박물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퉁소의 규격은 차이가 크다. 국립국악원 소장 청공 없는 퉁소는 길이 69.8cm, 구경은 3.5cm 내경은 2.5이고, 산조 연주가들의 퉁소는 길이가 60cm 미만이다.
퉁소 종류 |
퉁소명(소장자) |
전체길이 |
구경(내경) |
청공유무 |
비고 |
산조퉁소 |
신용현 퉁소 |
50cm |
미상 |
있음 |
진도 시나위 연주자 |
한범수 퉁소 |
58.8cm |
(2.25cm) |
있음 |
대금, 해금 산조 연주자 |
|
편재준 퉁소 |
58.8cm |
(2.2cm) |
없음 |
대금, 퉁소 산조연주자 |
|
북청사자놀음 퉁소 |
동선본 퉁소 |
71.7cm |
4cm |
있음 |
북청사자놀음 이수자 |
국악원소장 퉁소 |
69.8cm |
3.5cm(2.5cm) |
있음 |
국악박물관 0262 |
○ 재료 및 제작법
퉁소의 재료는 황죽을 주로 사용하며, 대금을 만들 때와 같은 방법으로 관대를 규격에 맞게 재단하여 만든다. 먼저 상단의 앞쪽을 도려내어 취구를 만들고, 청공이 있는 경우, 상단 취구 아래에 구멍을 뚫고, 갈대의 속청을 붙인다. 지공은 뒤에 한 개, 앞에 다섯 개이며, 민간에서는 앞의 지공이 6개인 경우도 있다. 현전하는 퉁소 유물을 살펴보면, 20세기 전반기에 산조를 연주하던 음악가들은 악기의 규격과 지공의 수, 청공의 첨삭을 비교적 자유롭게 변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연주 방법과 기법
퉁소는 단소와 비슷하게 U자형의 취구에 입김을 불어넣는 방식으로 연주를 한다. 그러나 퉁소는 단소보다 취구가 크고 악기가 길기 때문에 왼손으로 퉁소의 위쪽을 잡고 오른손으로 퉁소의 아래쪽을 잡아 악기를 지탱한다. 또한 혀를 써서 장식음을 연주하거나 농음(弄音) 하며, 청공을 울리는 방법은 대금 연주방법과 유사하다. 다만 악기가 길고 세로로 부는 악기이기 때문에 농음을 할 때는 머리를 위 아래 또는 좌 우로 격하게 흔들며 연주한다. 또한 산조 연주 시에는 단소 연주와 유사한 지공법과 연주 형태를 사용하는 반면, 더 긴 퉁소를 사용하는 북청사자놀음에서는 앉지 않고 일어서서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 용도
퉁소는 북청사자놀음의 전 과장에서 여러 춤 반주에 사용되며, 애원성, 돈돌나리와 같은 민요도 연주한다. 한편, 20세기 이후 퉁소 시나위, 퉁소 산조 등이 시도되었고, 그 음악이 일부 전해지지만 다른 악기의 산조에 비해 전승이 활발한 편은 아니다.
○ 역사적 변천
퉁소의 전승은 고려 시대부터 문헌에서 확인되며 조선시대에는 궁중 의례 및 민간에서 폭넓게 향유되었다.
『고려사』 권71 악지의 '당악'에는 여덟 개의 구멍(8공)을 가진 퉁소가 소개되었는데, 이는 청공 구멍을 쓰지 않은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세종실록』 권132 「오례」에는 취구, 청공 및 지공 다섯 개, 칠성공 세 개 등 모두 열 개의 구멍(10공)이 처음으로 명시되었다.『악학궤범』에서는 지공이 하나 더 늘어난 퉁소 산형이 소개되었고, 청공에 대하여 ‘‘상단에서 4치쯤 되는 곳에 1공을 뚫고, 갈대의 속 청을 붙이고 부는데, 갈대 속청이 진동하여 소리가 ’청‘하므로, 청공이라고 한다’는 상세 설명이 기술되어 있다. 이후 조선 후기 순조 때까지는 의궤 도설에 청공이 있는 퉁소가 수록되었는데, 17세기 전반기의 악보로 추정되는 『백운암금보』에 청공 없는 퉁소의 그림이 제시되어 있고, 의궤 도설에도 헌종 이후로는 청공과 칠성공 없는 간단한 형태가 묘사되어 있다. 퉁소는 조선 후기까지 궁중음악 편성에 포함되었고, 문집에 기록된 시문 및 풍속화의 도상을 통해 민간의 상층 사회 지식인들의 음악 향유에서 주요 악기로 전승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청사자놀음 같은 민간의 기층 연희에도 주요 악기로 자리잡았다. 20세기에 들어서 퉁소는 궁중음악 계통의 연주에서는 제외되는 한편, 추산 전용선, 유동초, 편재준 등의 명인들이 퉁소의 규격과 형태, 청공 첨삭 등의 변화를 시도하며 음악적 확장성을 시도하여 풍류 및 산조를 연주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그 음악 전승이 다른 악기에 비해 활발한 편은 아니며, 일부 창작곡 및 북청사자놀음의 반주악기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북청사자놀음은 현재 유일하게 퉁소가 연주되는 연희로 퉁소가 주선율을 이끈다.
퉁소는 고대의 주악도상에서 모습을 보인 이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궁중 의례와 민간 사회에서 폭넓게 사용되어 온 대표적인 관악기다. 『고려사』, 『세종실록』, 『악학궤범』 등을 통해 구조와 형태 변화를 살필 수 있다. 궁중음악에서는 물론 문집류의 기록을 통해 민간에서 널리 사랑받아 왔음을 알 수 있고, 20세기 전반기에는 뛰어난 연주가들에 의한 독주음악 시나위와 산조 등이 시도되기도 했다. 현재는 비록 북청사자놀음의 반주악기로 주로 사용될 뿐, 과거의 음악 전승이 매우 제한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나. 오랜 역사를 통해 시대별 악기의 변천을 겪으며 한국 음악사의 흐름을 함께 해 온 악기로서 의의가 있다.
조석연(趙石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