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조(李海朝, 1869~1927)가 판소리 명창 심정순(沈正淳, 1873~1937)이 구술(口述)한 《흥보가(興甫歌)》를 바탕으로 개작한 판소리 창본.
요약
『연의 각(燕-脚)』은 소설가이자 언론인, 교육자였던 이해조가 중고제 판소리 명창이자 가야금병창 및 산조의 명인이었던 심정순이 구연한 《흥보가》 사설을 개작하여 1912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판소리 창본이다. 아니리와 창을 구분하고, 창 부분에 7종류의 장단명을 표시했다는 점에서 판소리 창본으로서의 음악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연의 각』은 1860년경 성립된 경판 25장본 『흥부전』 및 1933년 동편제 명창 이선유(李善有, 1873~1949)의 사설을 정리한 『오가전집』 수록 「박타령」과 유사성이 있고, 현전하는 중고제 계열 《흥보가》 사설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유래
『연의각』은 이해조가 심정순이 부른 《박타령(朴打令)》 즉 《흥보가》를 산정(刪正)하여 1912년 4월 29일부터 6월 7일까지 34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한 판소리 사설이다. ‘연의 각’이라는 신소설식 표제 아래 ‘박타령(朴打令) 강연(講演)’이라는 부제가 있고, ‘명창 심정순 구술(口述)’, ‘해관자(解觀子) 산정’이라는 설명이 부기(附記)된 데서 판소리로 불리던 《흥보가》 사설을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연재 종료 이후, 창 부분의 장단 표시가 생략된 소설본 형태로 신구서림, 경기서적, 세창서관 등에서 활자본으로 널리 간행되었다.
내용 및 구성
○ 역사 변천 과정
『연의각』은 ‘제비[燕]의 다리[脚]’라는 뜻으로,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흥보가 제비의 다리를 고쳐준 일로 복을 받고, 부유하지만 탐욕스러운 놀보가 제비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린 일로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적 서사를 다룬 《흥보가》 창본이다. 이해조의 판소리 산정 작업의 첫 산물인 『옥중화』까지는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하고 창 부분에 장단을 표기하지 않았으나, 두 번째 작품인 『강상련(江上蓮)』부터는 순한글체를 중심으로 하되 꼭 필요한 경우에만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해 구술자의 발화 기록에 초점을 맞추고, ‘아니리(안이리)’, ‘진양조(긴양조)’, ‘중모리(즁모리)’, ‘자진모리’ 등의 장단 표기를 통해 판소리가 지니는 서사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재현하고자 하였다. 『연의 각』 역시 사설이 순한글체 위주로 되어 있으며, 창 부분에 장단의 명칭을 표기한 것이 특징이다.
『연의 각』은 『매일신보』 연재 종료 후 1913년에 장단 표시가 생략된 독서물 형태의 활자본으로 신구서림에서 간행되었으며, 이후 5판이 추가 발행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20세기 전반까지 출판된 활자본 『흥부전』의 90% 이상이 『연의 각』 계통본에 해당할 만큼 영향력이 상당하였다. 채만식도 1947년에 소설 『흥부전(傳)』을 연재할 당시, 활자본 『연의 각』을 저본으로 삼아 현대적 변용을 시도하였다고 한다.
○ 음악적 특징
『연의각』은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평타령, 자진모리, 엇모리, 엇중모리의 7종류 장단명을 통해 판소리 창본으로서의 음악적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이중 ‘평타령’은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명칭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러 장단이 현행과 같은지는 좀더 연구가 필요하다. 전반적인 장단 구성은 현행 판소리와 대체로 유사하지만, ‘평타령’이 고제나 중고제 판소리에서 주로 쓰이던 명칭이라는 점은 이해조의 『연의각』 산정을 위해 《흥보가》를 구연한 심정순이 충청남도 서산 출신으로 내포권의 중고제를 전승한 명창이라는 사실과 관련되는 부분이다.
○ 형식과 구성
『연의각』 연재가 시작된 1912년 4월 29일자 연재분을 살펴보면, 《흥보가》의 〈놀보 심술 대목〉에 장단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또한, 1912년 6월 1일자 연재분부터 6월 7일자 연재분까지는 이른바 〈놀보 박 타는 대목(놀보 박타령)〉에 해당하는데, 이 방대한 분량의 사설이 모두 아니리로 처리된다. 김택수가 정리한 『오가전집』에 수록된 이선유 창본 「박타령」이 47개 소리 대목으로 구성된 데 반해, 『연의각』은 그보다 적은 37개 소리 대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장단과 사설의 단위가 다소 느슨한 점이나 한 장단에 긴 사설이 배치되는 점이 중고제 판소리의 특징으로 거론되기는 하나, 『연의각』의 경우 그것이 개작자의 의도가 부각되는 서두와 결말 부분에 특히 집중되어 있다. 이로부터 『연의각』 서두와 결말 부분에서 이해조의 개작, 변개가 큰 폭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조선 자래로 전해오는 타령 중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끼타령 등은 본래 유지한 문장재사가 충효의절의 좋은 취지를 포함하여 징악창선하는 큰 기관으로 저술한 바인데, 광대의 학문이 부족하므로 인하여 한 번 전하고 두 번 전하매 정대한 본뜻은 잃어버리고 음란 천착한 말을 징연부익하야, 하등 무리의 찬성은 받을지언정 초유지각한 사람의 타매가 날로 더하니, 어찌 개탄할 바가 아니라 하리오. 이러므로 본 기자가 명창 광대 등으로 하여금 구술케 하고, 축조 산정하야 이미 춘향가(獄中花)와 심청가(江上蓮)는 애독하시는 귀부인 신사 겸 각하의 박수갈채하심을 받았거니와 차호부터는 박타령(燕의脚)을 산정 게재할 터인데, 춘향가의 취지는 열행을 취하였고, 심청가의 취지는 효행을 취하였고, 이번에 게재하는 박타령은 형제의 우애를 권장하기 위함이니 왕왕 허탄한 듯한 말은 실상 그 일이 있다 질론함이 아니라 한갓 탁사로 사람의 마음을 풍간함이니 아무쪼록 광대타령이라고 등한히 보지 말으시고, 그 타령 저술한 옛 사람의 좋은 뜻을 깊이 살피시오.” (「燕의脚(박타령 朴打令) 豫告)」 『매일신보』 1912.4.27.)
앞서 연재된 『옥중화』가 별다른 예고 없이 연재를 시작하고, 『강상련』이 연재 첫날 간략한 예고를 두었던 것과 달리, 『연의각』은 이해조 자신이 판소리를 각색해 연재하는 취지를 독자들에게 상세히 전달한 다음 연재하였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로서 문란해진 풍속을 바로잡고 건강한 피식민 주체를 만들겠다는 『매일신보』의 내밀한 의도도 있었겠으나, ‘충효의열(忠孝義烈)’의 좋은 취지를 산정하여 ‘징악창선(彰善懲惡)’의 교훈적 가치를 얻고자 하였던 이해조의 기획이 그에 앞섰던 것으로 보인다. 『연의각』의 경우, 실제 ‘형제의 우애를 권장’하기 위해 서두에서는 형제의 우애를 지킨 역사 속 인물을 거론하였고, 결말부에서는 〈놀보 박 타는 대목(놀보 박타령)〉의 확장을 통해 놀보의 징벌을 강화하는 한편 놀보가 이로부터 결국은 개과천선하여 둘의 우애가 대단하게 되었다고 강조하였다.
의의 및 가치
『연의각』은 판소리 명창이 구연한 사설을 이해조가 개작 및 정리하여 『매일신보』에 연재한 네 작품 가운데 세 번째 작품으로, 충청도 지역을 대표하는 중고제 판소리 명창 심정순의 《흥보가》 사설 전문(全文)을 온전히 전한다는 의미가 있다. 흥보가 품팔이하는 곳으로 충청도 예덕산이 언급되고, 〈제비노정기〉에 황간, 영동 등 충청 지역 지명이 구체적으로 포함되는 것도 『연의각』의 특징이다. 명창 심정순의 위상이나 사설에 나타나는 지역성을 아울러 『연의각』이 중고제 《흥보가》 전승의 전모를 보여줄 수 있는 현존 유일의 자료가 된다. 이것이 심정순의 구연(口演) 그대로를 전사(傳寫)한 것이 아니고, 이해조의 산정이 더해진 텍스트라는 점도 종합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한편, 창과 아니리를 구분하고, 창 부분에 구체적인 장단 명칭을 표기하는 형식의 시도는 판소리 본연의 서사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재현하고자 하였던 의도를 보여준다. 이해조의 판소리 산정은 당대의 음악 문화를 반영한 신소설이나 ‘박춘재 구술’을 내세운 『(정선)조선가곡』의 편찬을 통해 보여주었던 그의 음악적 관심과 취향에서 비롯된 산물이기도 했다. 신문 연재 종료 이후, 『연의각』이 장단 표기가 생략된 단행본의 형태로 유통됨에 따라 서사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구현하고자 했던 애초의 의미는 상실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