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택은 『세종실록(世宗實錄)』 권40에 창제 목적이 중국 사신을 위로하고 황제의 은덕을 흠모하는데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428년(세종 10) 5월 26일 예조에서 창제되었으며, 이후 성종 2년(1493) 왕명으로 제작된 『악학궤범(樂學軌範)』 권4에 시용당악정재도의와 함께 상세히 실려있다. 『악학궤범』과 『세종실록』의 기록은 진행 절차는 거의 같으나, 주역 무용수의 명칭이 왕모에서 선모로 악곡의 명칭이 황하청만에서 헌천수만으로 바뀌었다.
성택(聖澤)은 '성스러운 은택'을 의미하며, 황제의 뜻을 전달하는 사신(使臣)을 예찬함으로써 명나라 황제의 은덕을 흠모하고 조선의 외교적 성의를 표하는 것을 주제로 한다. 춤은 선모와 여덟 협무가 팔괘 대형을 구성하여 팔방의 조화를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절차와 구성
성택의 구성는 당악정재의 전형적인 형식을 따라 도입부, 전개부, 종결부의 3단계로 진행된다. 무용수는 죽간자 2인, 족자 1인, 선모(仙母) 1인, 협무 8인이 춤춘다. 또 의물은 인인장(引人仗)-정절(旌節)-용선(龍扇)-정절-봉선(鳳扇)-정절-작선(雀扇)-정절-미선(尾扇)의 순으로 18인이 두 대(隊)로 나누어 서고, 개(蓋) 3인도 남쪽 끝에 선다. 춤의 모든 절차는 집박 악사의 박(拍)을 신호로 시작하고 끝난다.
도입부[開場]는 의물이 두 대의 좌우대형으로 도열하며, 그 대열 안에 죽간자, 족자, 선모, 협무가 초입 대열을 구성한다. 정재가 시작되면 죽간자 두 명이 앞으로 나아가 진구호(進口號)를 노래하여 춤의 개장을 알리고, 좌우로 나뉘어 물러선다.
전개부[本舞]는 선모를 중심에 두고 두 줄의 좌우대형을 유지한 8인의 협무가 염수족도(斂手足蹈)를 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물러선다. 선모는 앞으로 나아가 춤의 주제를 담은 치어를 읊고, 선모와 협무들이 악절에 맞추어 염수족도를 하며 「성택사(聖澤詞)」를 노래한다.
창사가 끝난 후, 선모와 협무들은 북쪽을 향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선모는 제자리에서 주선(周旋)하며 맴돌고, 협무들은 회선(回旋)을 통해 사방(四方)과 사우(四隅)의 팔괘(八卦) 대형을 구성한다. 사방의 팔괘는 북쪽에 감(坎), 동쪽에 진(震), 남쪽에 리(离), 서쪽에 태(兌)이고, 사우의 팔괘는 동북에 간(艮) 동남에 손(巽), 서남에 곤(坤), 서북에 건(乾)이다. 협무가 팔괘 위치에 자리 잡으면, 선모는 북쪽 협무부터 순차적인 회무(回舞)를 시작하여 사방(북·동·남·서)의 협무와 대무(對舞)하고, 이어서 사우(동북·동남·서북·서남)의 협무들과 차례로 대무를 행한다. 선모가 모든 협무와 순차적으로 춤을 춘 후, 무용수들은 원을 그리며 춤추다가 처음의 좌우대형으로 돌아간다.
종결부[收場]는 도입부의 음악이 다시 연주되며, 죽간자는 족자를 가운데 두고 서서 퇴구호(退口號)를 한다. 구호를 마치면 족자와 죽간자가 물러나고, 선모와 협무는 염수족도로 앞뒤로 진퇴하며 춤을 마친다.
○ 창사
창사는 춤 전체에서 총 네 번 불린다. 죽간자의 진구호, 선모의 치어, 선모와 협무가 「성택사」를 부르고, 종결부에서 죽간자가 퇴구호를 한다.
원문 |
해설 |
|
[진구호] |
上聖之化, 覃被要荒. |
성상의 덕화 아득히 먼 곳까지 펼쳐지니 |
[치어] |
聖澤慰朝廷使臣也, 慰使臣所以欽上德也 |
「성택」은 조정의 사신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
[창사] |
「성택사(聖澤詞)」 |
「성택사(聖澤詞)」 |
[퇴구호] |
德洽生成, 克盡懷柔之道. |
덕이 만물을 길러주는 데 넉넉하여 |
원문: 김천흥, 『정재무도홀기 창사보2』 번역: 강명관
○ 춤사위
성택에는 염수족도, 광수무(廣袖舞), 사수무(四手舞), 주선(周旋), 회선(回旋), 회무, 대무 등의 춤사위들이 추어진다. 성택에서 춤의 핵심은 여덟 협무가 팔괘의 위치를 구성하며 대형을 변화시키고, 선모와 협무가 대무를 통해 팔괘의 순행과 회귀의 순환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 반주음악
성택의 반주는 당악(唐樂)이며, 『세종실록』에는 황하청만이, 『악학궤범』에는 헌천수만으로 전한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성택의 악곡 순서는 천년만세인자, 최자령, 하성조령, 헌천수만, 중강령 등이다.
○ 복식·의물·무구
성택은 당악정재의 양식을 따라 무용수 외에 다양한 의물을 사용하여 웅장하고 화려한 연행 환경을 조성했다. 복식은 『악학궤범』 권9에 무동관복(舞童冠服)과 여기복식(女妓服飾)의 형태가 도식(圖式)으로 상세하게 전한다. 무동은 회례연(會禮宴)에서 머리에 부용관(芙蓉冠)을 쓰고 발에는 화(靴)를 신는다. 겉옷인 의(衣, 포)는 사(紗)나 라(羅) 같은 비단으로 만들며, 겉감은 황(黃)·녹(綠)·자(紫)·남(藍)·도홍(桃紅) 등 오방색을 사용하고 안감은 붉은색 비단을 댔으며, 가슴과 등에 흉배를 달았다. 포 안에는 흰색 비단 중단을 받쳐 입었으나 무동은 오방색 중단을 입기도 하였고, 허리에는 예복용 치마인 상(裳)을 갖추어 입었다.
여기(女妓)는 머리에 수화(首花), 잠(簪), 금채(金釵)를 장식하고, 복식은 백말군(白襪裙) 위에 남적고리(藍赤古里)를 입는다. 그 위에 상(裳, 보로)을 입고 홍대를 맨 후 단의(短衣)를 입는다. 단의 위에는 흑장삼(黑長衫)을 착용하고 발에는 단혜아(段鞋兒)를 신었다.




그리고 다양한 의물들이 사용되었다. 족자 1개, 죽간자 2개, 인인장 2개, 정절 8개가 쓰였다. 그 외에도 용선, 봉선, 작선, 미선이 각 2개씩, 개 3개가 사용되어 정재의 웅장함과 위엄을 더했다.

○ 역사적 변천 및 전승
성택은 조선 전기에 초연 후, 1784년(정조 8) 서명응의 『국조시악』에도 기록이 전해지지만, 이 시기에 실제 연행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현대에는 『악학궤범』에 근거하여 국립국악원에서 김천흥의 재현 안무로 복원되어, 1981년 10월 27일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후 오늘날까지 꾸준히 연행되고 있다.
김기화(金起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