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임 및 용도
적상은 조선 시대 종묘제례에서 〈보태평지무〉와 〈정대업지무〉를 추는 일무 악공이 남주의와 함께 입었던 치마 형태의 옷이다. <보태평지무>는 둑[纛] 잡이 두 명과 일무원 36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적상을 착용했다. <정대업지무>는 일무원 36명과 의물잡이 35명, 모두 합해 7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모두 적상을 착용했다.
○ 형태 및 구조
적상의 형태는 『악학궤범』ㆍ『종묘의궤』ㆍ『경모궁의궤』의 적상 도식화와 신경유(1581~1633) 묘에서 출토된 적상 유물에서 볼 수 있다.


적상은 적상조연(赤裳皂緣)으로도 기록되어 있는데 그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자리에 검은색 선을 두른 홍색 치마 형태이다. 도식화에는 한 폭으로 연결된 치마에 가장자리와 중간에 선을 댄 것처럼 묘사되어 있으나 중간의 선을 기준으로 앞과 뒤로 분리된 형태로 중간의 선이 옆선 쪽으로 가도록 입는다. 문헌마다 도식화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적상은 앞에 두르는 전상(前裳)과 뒤에 두르는 후상(後裳)으로 나누어져 있고 전상은 세 폭, 후상은 네 폭으로 총 일곱 폭으로 되어 있다. 전상과 후상의 양 옆과 밑단에 검은색의 선이 둘러져 있고 적상의 위에 허리말기가 달려 있고 허리말기에 주름이 잡혀 있다. 주름이 위에만 잡혀 있어 여자의 치마처럼 아래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퍼지는 A자형을 이룬다. 신경유 묘에서 출토된 조복의 적상은 무문능(無紋綾)으로 만든 홑옷으로 전상 세 폭, 후상 네 폭으로 되어 있는데, 전상의 주름은 아홉 개, 후상의 주름은 열세 개이다. 일무 악공이 입은 적상에는 『악학궤범』에 수록된 무동이 입은 상에 비해 주름이 많이 잡혀 있다. 주름이 있는 옷은 주름이 없는 옷에 비해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한데, 무동의 상에는 절화문(折花紋)을 가득 그리고 가장자리에 자황색 도다익(都多益)을 찍어 화려함을 더하였고, 일무 악공의 적상에는 문양을 그리지 않는 대신 풍성한 주름으로 화려함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 재질 및 재료
『악학궤범』⋅『종묘의궤』⋅『경모궁의궤』에 따르면, 적상은 홍색 명주[紅紬]로 만들고 검은색 명주[皂紬]로 가장자리에 선을 둘렀다. 적상을 만들기 위한 옷감과 실의 필요량에 대해서는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의 기록을 참조할 수 있다. 적상 한 벌을 만드는데 홍색 명주 14척, 가선용 흑색 명주 3척, 허리말기용 흰색 명주 2척, 홍색 실[紅鄕絲] 5분, 흑색 실[黑鄕絲] 5분이 사용되었는데, 안감에 대한 기록은 없으므로 홑으로 볼 수 있다.
○ 남주의와 적상의 착용 순서
종묘제례 일무 악공은 남주의와 적상을 입었다. 남주의와 적상의 착용 순서에 대해서는 시기에 따라 견해가 나뉘고 있다. 조선 전기에는 남주의 위에 적상을 입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적상의 길이가 남주의보다 짧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일무악공이 중단을 입는다는 기록이 없으며 남주의의 소매가 좁아 조복이나 제복의 중단처럼 상(裳)의 받침옷으로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라 『악학궤범』의 남주의와 적상은 남주의 위에 적상을 입는 차림으로 고증ㆍ재현된 바 있다.
○ 역사적 변천
조선 전기의 적상은 『국조오례의서례』와 『악학궤범』에 기록되어 있고, 조선 후기의 적상은 『종묘의궤』⋅『경모궁의궤』⋅『춘관통고』⋅『육전조례』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오향친제반차도〉와 『시용무보』에서 일무악공이 남주의를 입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적상은 보이지 않는다. 조선 후기에는 남주의 안에 적상을 입었거나 적상을 입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오향친제반차도〉와 『시용무보』에 일무악공이 남주의만 입은 것처럼 그려져 있어서 적상을 남주의 안에 입었거나 입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남주의는 소매가 넓고 무가 뒷길에서 고정되는 단령 형태로 변화되었는데, 단령은 전형적인 겉옷 포이므로 그 위에 적상을 입을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적상은 일무악공의 무용복이 남주의에서 홍주의로 변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착용되지 않게 되었는데, 남주의가 홍주의로 변화된 시기는 대한제국시기로 볼 수 있다. 『대한예전』에 남주의가 일무 악공의 복식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대한예전』의 종묘제례악의 악기편성이나 일무에 관한 기록이 조선후기에 변화된 상황과 일치하지 않고, 15세기의 『악학궤범』과 동일하기 때문에 복식에 대한 기록도 신뢰하기 어렵다. 따라서 『조선악개요』의 1897년(광무 1) 악제개정 때 일무악공의 무용복이 홍주의로 개정되었다는 기록이 더 현실적이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아악요람』에 종묘제례 일무악공의 관복이 홍단령으로 기록되어 있어 일제강점기에는 남주의와 적상이 일무악공의 무용복으로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일부 종묘제례악 고증 공연에 적상을 착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국가무형유산 종묘제례악의 연주에는 착용하지 않는다.
이주영(李珠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