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농악의 내용과 연행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지신밟기》는 마을의 규모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편성이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농기 1명, 영기 2명 치배 8~10병, 소고 6~8명, 피조리들 6~8명, 태평소 1명과 잡색 1~2명 등으로 구성하였다. 평택의 《지신밟기》는 먼저 대문 밖에서 〈수문장굿〉을 시작으로 집 안으로 치배들이 농악을 치고 들어가 〈우물굿〉부터 진행하여 〈터주굿〉, 〈조왕굿〉, 〈고사〉, 〈마당굿〉의 순서로 진행되였다. 지신풀이를 시작할 때 수문장이 “문엽쇼 문엽쇼 수문장님 문엽쇼. 만인간이 만오복을 잔뜩 걸머지고 들어가니 수문장님 문엽쇼”라고 외치면 나머지 구성원들은 문 앞에서 다같이 절을 세 번 한 후 문 안쪽으로 순서대로 들어간다. 〈용왕굿〉은 다른말로 하면 〈우물굿〉인데, 〈수문장 지신풀이〉와 마찬가지로 〈용왕 지신풀이〉를 우물 앞에서 진행한다. “물줍쇼 물줍쇼 사해용왕 물줍쇼 동해물도 땡기고 서해물도 땡겨서 맑은 물만 출렁출렁 땡겨줍쇼”라고 상쇠가 선창으로 〈지신풀이〉를 하면 나머지 구성원들 역시 〈지신풀이〉가 끝남과 동시에 절을 세 번 한 후 다음 장소인 장독대 근처로 이동한다. 〈터주굿〉은 지신이나 철륭과 같은 것을 말하는데, 신체를 만들때에는 항아리 속에 쌀, 벼, 콩, 팥 등의 곡식을 안에 넣고 짚을 위에 씌운 것으로 장독대 근처에 내려 놓는다. 이 곳에서 〈터주 지신풀이〉를 하게 되는데, “눌립세 눌립세 터주지신 눌립세 일년 열두달 삼백육십오일을 내내 벌떡 할지라도 관재귀살(官災口舌) 삼재팔란 우환재란 근심걱정 다 소멸하시고 맘과 뜻과 잡순대로 소원성취 이뤄 주십시오”라고 상쇠가 선창을 하면, 나머지 구성원들과 다같이 절을 세 번 한 후 다음 장소인 부엌으로 이동한다. 〈조왕굿〉이란 부엌에 위치한 불의 신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부엌의 부뚜막 앞에 도착하면 모든 구성원들이 둘러서서 〈조왕 지신풀이〉를 진행한다. “눌립세 눌립세 팔만사천 조왕대신 눌립세 일년 열두달 삼백육십오일을 내내 벌떡 할지라고 관재귀살 삼재팔란 우환재란 근심걱정 다 소멸하시고 맘과 뜻과 잡순대로 소원성취 이뤄 주십시오”라고 상쇠가 선창을 하면 모든 구성원들이 조왕신에게 절을 세 번 한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마지막으로 진행이 되는 〈고사〉는 《지신밟기》를 요청한 집주인이 대청마루에 앞에 정성스럽게 차린 고사상 앞에서 진행한다. 고사상은 마룻바닥에 넓은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고사상을 차려 놓은 후 고사상 위로 흰색 천으로 전부 덮는다. 상 한가운데에는 모말을 올려 놓고 쌀을 수북하게 부어 쌓아놓은 다음 다시 사발을 그 위에 얹어 쌀을 더 담아 놓는다. 이를 '불밝이 쌀'이라고 하는데, 모말의 양쪽에는 촛불을 계속 켜둔다. 〈고사〉를 진행하기 위해 고사상 앞에는 고사꾼이 서서 자리를 잡고 그 뒤로는 치배들이 둘러서서 함께 〈고사소리〉를 부른다. 〈고사〉가 끝난 뒤 마지막으로 진행하는 〈마당굿〉은 〈고사〉가 끝마치고 난 후 풍물을 치며 노는 것을 뜻한다. 이를 〈마당씻기〉라고도 하는데, 이때 돌림벅구(돌림벅구)를 한다. 〈마당굿〉을 진행하는 동안 화주를 맡고 있는 사람은 총무에 역할을 하는데 고사상에 놓여 있던 쌀과 돈 등을 전부 부어 담는다. 한바탕 〈마당굿〉 놀이가 끝나면 두레패들은 주인이 대접하는 술과 음식 등을 먹고 다음 집으로 이동한다. 마을의 《지신밟기》가 차례대로 모두 끝나면 두레패들은 마을 공터에 모여서 뒷풀이로
《판굿》을 진행하여 마무리 지기도 한다.
평택농악 중의 《두레》 농악은 모내기에서 가을 추수에 이르기까지인 논농사 기간과 함께 진행하지만, 특히 짧은 기간 동안에 많은 품을 이루어내고 들여야 하는 모내기와 김매기 때에는 반드시 《두레》가 진행되어졌다. 이렇게 진행되어지는 《두레》는 모내기로 시작되어 세벌 김매기까지 이어진다. 《두레》 농악에서 세벌 김매기가 끝날 때쯤인 백중날이 오면 ‘〈백중놀이〉’ 또는 ‘〈호미씻기〉’라고 하는 판을 마을 공터에서 진행하였는데 술과 음식 등을 차려 놓고 《판굿》을 치며 고생한 것들을 다 풀어버리며 걸판지게 놀았다고 한다. 두레가 결성이 되어 일을 진행하게 되면 꼭두 새벽부터 이장집에 다 같이 모여 풍물 소리를 낸다. 이것이 《두레》가 시작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이어 웃다리 농악 가락등을 연주하면서 논으로 출발하는데, 이때 농기를 선두로 두레패가 앞서 나가고 이어서 두레패의 농사일을 하는 일꾼들이 뒤를 따라서 간다. 일할 논에 도착하면 두레패들은 가락을 맺고 농기를 가지고 이동했던 기수는 깃대 중간에 묶여 있던 3개의 보릿줄을 풀어 평평한 땅에 박은 말뚝에 꼿꼿하게 묶어 세워둔다. 간혹 《두레》를 다니면서 농기의 행진을 하다가 다른 마을의 농기와 만나게 되면 농기싸움을 진행하기도 했다. 《두레》의 악기 편성은 《지신밟기》와 거의 비슷하지만 양반이나 피조리들 등과 같은 잡색들은 빠지게 된다. 《두레굿》을 연주하던 악기치배들은 농기에 묶여있던 보릿줄에 상모 등을 풀어 얹어놓고 본인이 연주하던 악기들을 모두 자리에 내려 놓은 후 논에 들어가 농사를 지었다. 한 곳의 논농사가 끝난 뒤 다른 논으로 이동할 때에도 하루의 일이 모두 끝난 뒤 다시 마을로 향해 돌아갈 때에도 모두 《두레굿》을 연주를 하면서 이동하였다. 마지막으로 마을로 돌아왔을 때에는 무사히 마친 하루에 감사하고자 잠깐 풍물가락을 연주하고 모든 하루 일과를 끝을 내었다. 또한 세벌 김매기가 모두 끝나는 백중날에는 〈호미씻기〉를 진행하는데, 이때 술과 음식등을 준비하고 《판굿》을 연주하면서 논다.
《난장》이란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 이외에 한시적으로 열리는 특별한 장을 말한다. 평택 지역에서는 대게 명절을 맞이하여 《난장》이 들어섰는데, 대표적으로 사월 초파일에 임시로 열린 ‘〈파일 난장〉’과 백중에 임시로 열린 ‘〈백중 난장〉’이 그것이다. 이처럼 임시로 《난장》이 열릴 때에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보다 더 많은 상인들과 소비하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시장이 활성화 되고 평택 경기가 부양될 수 있도록 진행하기 위해 전문적인 기술 및 기예를 가진 풍물 단체를 여럿 불러 장터 한가운데서 판굿을 놀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난장굿》이다. 이러한 《난장굿》은 다른말로 《등대굿》이라고도 불리웠다고 한다. 《등대굿》이라고 불린 이유는 《난장》이 열리는 한복판에 등대를 세우는데, 그 길이가 10m 이상 되며, 굵기가 20㎝ 이상 되는 굵은 3개의 나무를 묶어 하나의 기둥을 만들어 깃대로 삼았다. 깃대 꼭대기부터 밑동까지는 흰 무명의 천으로 감은 다음 그 위를 베로 다시 촘촘히 감싸 묶었다. 이렇게 완성이 된 등대의 꼭대기에 큼지막한 수박 모양의 연등을 매달았는데, 연등을 매달았던 꼭대기보다 약간 아래쪽으로 청ㆍ홍ㆍ황색의 삼색 끈을 묶은 다음, 이 삼색 끈에는
제일 꼭대기에 있는 연등보다 작은 연등으로 각각 7개씩 매달아두었다. 이렇게 연등을 매달은 등대를 땅 위에 곧게 세우고 삼색 띠를 세 방향으로 각각 나누어서 수평으로 매달았다. 이렇게 등대가 완성되면 난장패는 〈길놀이〉를 시작하며 〈길놀이〉를 진행하는 동안 정성껏 만들어진 등대 앞에는 제사상이 차려진다. 제사상에는 팥시루떡을 시루째 올려놓고 시루의 양쪽 손잡이에 말려놓은 북어를 한 마리씩 꽂아 둔다. 또한 가운데 삶은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돼지머리 양쪽으로는 삼색 과일을 놓는다.
난장패는 〈길놀이〉를 진행한 후 제사상 앞으로 돌아와서 등대를 크게 한 바퀴 돈 다음에 제사상 앞에 횡대로 정렬하여 위치한다. 정렬의 순서로는 피조리들, 벅구, 치배 순으로 각각 1줄씩 3줄을 만들어 줄을 선다. 먼저 제사상을 향해 다같이 3회 절하고, 뒤를 돌아서 3회, 이어 서쪽ㆍ북쪽ㆍ동쪽 순서로 각각 3회씩 절을 한뒤, 다시 제사상 앞으로 돌아와서 3회 절하는 것으로 등대굿을 마치게 된다. 《등대굿》은 앞서 절을 하는 것이 사방으로 하는 형태로 되어 있어 다른말로 ‘《사방굿》’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등대굿》이 끝나면 난장패들은 《판굿》을 연행한다.
〈파일 난장〉이나 〈두레 난장〉은 하루에 끝나지 않으며 여러 날에 걸쳐서 진행된다. 이는 임시로 열리는 장이 더 활성화가 되기 위해서인데 이에 따라 〈길놀이〉와 《판굿》도 계속해서 반복 연행하였는데, 대개는 오전에 1회 오후에 1회씩 하루에 2회를 여러 날에 걸쳐서 공연했다고 한다.
《걸립》은 농악을 하는 공동체에서 다같이 사용할 수 있는 공동의 기금을 마련하거나 특별한 날 이동을 해야되는 경비를 모을 필요가 있을 때, 혹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풍물을 치고 고사를 진행하며 축원 등을 해 주면서 그 대가로 돈이나 곡식을 받아 기금을 모으는 행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표기할때에는 ‘《걸립(乞粒)》’이라고 표기한다. 지역에 따라 걸궁ㆍ걸량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경기 남부 지역쪽에서는 대체로 《걸립》이라 부르며 이러한 일을 진행하는 풍물패를 가리켜 걸립패라고 지칭 한다. 《걸립》을 진행할 때에는 어떤 종류의 것이 되었든 신격화가 된 물건이 있어야 한다. 《걸립》에는 〈촌걸립〉과 〈절걸립〉으로 나누어 졌는데 〈촌걸립〉은 목적에 따라서 〈다리걸립〉, 〈나루걸립〉, 〈기성회 걸립〉 등이 있었다. 물론 촌걸립패는 뛰어난 기예를 가지고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였고 〈고사소리〉 또한 구성지게 잘했지만, 그것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영험이 있는 신격이었다. 〈촌걸립〉은 대체적으로 근방에서 신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산신을 〈낭받기〉를 통하여 모시고 다녔으며, 이렇게 모신 산신의 신체가 바로 낭기였다. 평택농악의 〈낭받기〉는 주로 안산 군자봉에서 산신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낭받기〉를 진행할 때에는 걸립패 총무의 집 마당에서 진행되어 졌는데 사월초파일의 《등대굿》과 유사하게 진행이 되었다. 낭기를 마당에 꼿꼿이 세우고 그 앞에 제사상을 차리고 장단을 연주하면, 낭기에 신이 내리는 모습을 낭기가 흔들리는 것으로 신이 내려왔다고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걸립패에서 낭기는 아주 소중히 모시고 다니는 신격화 된 물건이었고, 아침ㆍ저녁 2회에 걸쳐 〈기고사〉를 통하여 문안을 드렸다고 한다. 아침고사의 뜻은 밤새 나가있었던 서낭이 다시 낭대로 돌아오시라고 지내는 것을 뜻했으며, 저녁고사는 날이 저물었으니 다시 밖으로 나가 다니시라고 지내는 의미였다. 〈기고사〉는 기를 마당에 세워놓고 그 앞에 밥과 물을 한 그릇씩 올린 상을 차리고 북을 쳐서 점고를 연주하는 것으로 끝난다.
걸립패가 《걸립》을 하러 다닐 마을은 어느정도 정해두고 움직였다. 마을 어귀에 도착하면 걸립패에 치배들은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동구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식화주와 영기를 든 피조리들 혹은 피조리가 따로 이장집을 찾는다. 《걸립》을 하라는 이장의 허락을 받게 되면 피조리들 혹은 피조리가 영기를 흔들어 동구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행중에게 알린다. 신호를 받은 행중은 《걸립》을 진행하기 위해 한바탕 풍물을 치면서 흥겹게 마을로 들어간다. 마을로 들어가게 되면 맨 먼저 〈당굿〉을 치며 시작하게 되는데, 당이 없거나 마을과 멀리 있을 때는 생략하기도 하며, 날이 저물었을 때나 당일 진행하기가 여의치 않으면 다음날 진행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연주하는 장단은 〈낭받기〉 때의 것과 흡사하다. 〈당굿〉을 진행한 이후에는 마을 공동우물로 이동해서 〈우물굿〉을 진행하는데 이때 〈우물굿〉 연주는 《지신밟기》에서 〈우물굿〉 연주하는 것과 같다. 이후 각각의 집을 돌면서 《걸립을 진행 하는데, 《지신밟기》와 같은 형식으로 연주하지만 《지신밟기》보다 〈고사소리〉를 더 풍부하게 진행하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걸립》은 하루 동안의 집들을 돌며 집돌이가 끝나게 되면 밤이 되는데 이때 〈밤굿〉을 연주한다. 마을 사람들과 걸립들은 마을 공터에 모여서 횃불을 밝히고 음식과 술을 준비하면서 《판굿》을 연행한다. 낭걸립패들은 이때 피조리들을 시켜서 사람들에게 돈을 걷기도 한다. 《판굿》이 모두 끝나면 뒤풀이를 진행하며 모든 마을사람들이 함께 춤추면서 논다. 대개의 걸립패 단원들은 농사일을 겸하고 있는데, 평택농악의 명인 최은창의 경우에도 1년의 절반은 걸립패로 활동하고 나머지 절반은 농사일을 했다고 한다.
○ 편성 및 복색
평택농악의 편성은 크게 기수,
태평소,
치배,
벅구, 피조리들, 잡색 순으로 편성된다. 평택농악에서 사용하는 깃발 중 농기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쓰며, 영기를 2개, 그리고 마을 단체기 혹은 마을 이름기를 들며 그 뒤에 ‘군자봉산왕대신지위(君子峰山王大神之位)’라 쓰여진 낭기를 드는데, 이 중 낭기는 《걸립》을 진행할 때나 《난장》을 진행할 때만 사용한다. 태평소를 부는 호적수는 1명에서 2명이 있고 꽹과리ㆍ징ㆍ장구ㆍ북ㆍ벅구로 악기를 구성하되 치배, 벅구, 피조리들을 인원 상황에 맞춰 짝수로 편성하는 것이 기본이다. 평택농악은 〈벅구놀이〉가 발달해 있고 많은 피조리들의 수로 〈피조리들놀이〉와 〈피조리놀이〉를 탁월하게 진행하는 것이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요즘은 《판굿》을 구성하는 인원을 늘려서 치배수가 10~12명, 벅구를 8~12명 정도로 연행하는 경우가 많고, 피조리들도 8피조리들에서 10피조리들까지 수를 늘려서 연행하고 있다. 잡색으로는 양반과 각시 대포수 등이 편성된다.
피조리들과 세미, 잡색을 제외하고 모든 치배들은 하얀 민복 바지에 파란
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매는데, 치배 중에 꽹과리 연주자들만 부들상모(북상 또는 종이부포: 짧은 물체에 실이나 잘게 썬 종이를 총채처럼 달아 돌리는
상모)를 쓰며, 다른 치배들은 채상(긴 물체에 부전지를달아 돌리는 상모)을 쓴다. 예전에는 징이나 장구 북들는 채상 대신에
패랭이 나
고깔을 썼다고 하는데, 요즘은 기량 향상을 통해 모든 치배들이 채상을 쓴다. 피조리들은 깨끼 혹은
무동 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붉은 치마에 노랑 저고리 위에 남색
쾌자를 입으며 삼색띠를 맨다. 또한 머리에는 수건 안에다 댕기를 맨 것처럼 댕기를 늘어뜨렸으나 요즘은 수건을 쓰는 경우도 있고 안쓰는 경우도 있다. 세미는 흰
장삼과 흰
한삼을 걸치며 흰 고깔을 쓰며 빨간 띠를 한쪽으로 맨다. 이어 다리에 다릿바(〈피조리들놀이〉를 할 때 손으로 잡을 수 있게 무릎과 발목을 연결하여 묶은 천)쓴다.
○ 연행 절차와 순서
평택농악의 《판굿》은 여러 가지 놀이와 진풀이를 순서대로 연행하는 기예를 보여준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으로는 ‘〈입장 및 인사굿〉-〈돌림벅구〉-〈당산벌림〉 1-〈오방진〉-〈돌림벅구〉-〈당산벌림〉 2(〈찍금놀이〉ㆍ〈절구댕이벅구놀이〉)-〈사통백이〉-〈돌림좌우치기〉-〈합동좌우치기〉-〈빠른삼채춤(연풍대)〉-〈돌림벅구〉-〈개인놀이〉-〈피조리들놀이〉-〈12발 채상놀이〉-〈인사굿〉’의 순으로 연행된다. 1980년대 자료들을 찾아보면 평택농악에서 〈합동좌우치기〉와 〈빠른삼채굿〉 사이에 ‘〈가새발림〉’이 연행되었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평택농악에서는 ‘〈가새발림〉’ 연행 자료를 찾을 수 없으며, 수원이나 대전에서 연행되고 있는 웃다리 농악에서만 〈가새발림〉이 연행되어지고 있다.
순서 중 주목할 만한 점은 〈오방진〉에서 연주되고 있는 칠채 가락과 〈당산벌림〉 2에서 연행되고 있는 〈찍금놀이〉와 〈절구댕이벅구놀이〉가 있다. 칠채 가락은 웃다리 농악에서만 볼 수 있는 장단이며, 이를 평택농악에서도 명맥이 잘 이어지고 있다. 이어 〈찍금놀이〉와 〈절구댕이벅구놀이〉 이 두 놀이는 농사의 동작에 해당하여 두레농악과 전문연희농악을 연결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보이기 때문이다.
〈찍금놀이〉는 상쇠가 피조리들과 벅구잽이들을 차례로 가운데로 불러내 함께 노는 것을 뜻한다. 덩덕궁이 첫 장단에 신호에 앉고, 두 번째 장단 신호에 오른손을 땅에 짚었다 뗀다. 세 번째 장단 신호에 왼손을 땅에 짚었다 떼며, 네 번째 장단 신호에 양손을 땅에 짚어서 호흡을 맞추며, 다섯 번째 장단 신호에 맞춰 일어나는 순서로 연행된다. 이렇게 손을 번갈아 가며 땅에 손을 짚었다 떼는 동작은 모를 논에 심는 동작을 형상화 한 것으로, 전문연희농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농사의 예술적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절구댕이벅구놀이〉는 〈찍금놀이〉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당산벌림〉에서 놀게되는데, 〈찍금놀이〉를 마친 벅구잽이들이 홀수 벅구와 짝수 벅구들이 두 줄로 나누어 서서 번갈아 가며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동작을 보이는 것이다. 두 줄의 벅구잽이가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동작들은 두 사람이 마주서서 절구공을 번갈아 가며 내리 찧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으로, 이 놀이 또한 〈찍금놀이〉와 마찬가지로 농사의 예술적 형상화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