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小金), 소쟁(小錚), 괭매기, 꽹과리, 꽹매기, 쇠, 꽝쇠, 깽쇠
불교 의례에서 언제부터 광쇠라는 악기 및 명칭을 사용해왔는지 분명히 알수 없으며, 광쇠와 같이 손잡이 달린 금속 타악기의 형태는 고대 중국 자료에서도 보이지만, 이 악기와 광쇠와의 관련성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시대 불교 회화, 판소리 《춘향가》 및 단가 〈백구사〉 등의 사설 중 불교의식을 묘사한 장면에서 광쇠를 든 승려의 모습과 연주 정황이 보인다. 가장 이른 시기의 광쇠 도상은 1589년에 제작된 일본 약선사장(藥仙寺) 소장 감로탱이다. 이를 통해 늦어도 16세기 이전부터 불교의례에 현재의 광쇠모양과 같은 법구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판소리계 사설에서는 ‘큰북은 두리둥둥, 광쇠는 꽈광꽝’이라는 표현으로 광쇠의 쇳소리를 표현했다.
○ 개요
광쇠는 금속악기를 이르는 ‘쇠’와 치는 소리의 의성어 ‘광’이 결합된 명칭으로 풀이되고 있다. 지역에 따라 광쇠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 있는데, 경상도에서는 깽쇠 혹은 매구(메구)라고 하며, 형태에 따라 쇠를 고정하는 자루가 있는 것은 ‘깽쇠’, 자루가 없는 것은 ‘매구(메구)’로 구분한다. 쇠를 고정하는 자루가 부착된 형태는 궁중 악기 중 ‘소금’과 유사하다.

○ 구조와 형태
광쇠는 꽹과리 모양의 울림판과 울림판을 고정하는 자루, 치는 채로 구성되어 있다. 울림판은 보통 ‘꽹과리보다 조금 크고 징보다는 조금 작은 쇠’로 통하며, 국립국악원 소장 광쇠의 경우 울림판의 지름은 27.0cm이다. 자루의 형태과 규격은 지역별로 차이를 보인다. 국립국악원 소장 광쇠의 채는 ㄱ자 모양의 목재로 만들고, 규격은 가로 25.8cm, 세로 37.5cm이다. 이에 비해 영남 범패 전승지인 불모산 영산재의 경우, 잘 휘어지고 견고한 대나무를 완만한 곡선으로 휘어지게 만들어 끈으로 본체와 연결한다. 그리고 광쇠 자루에 수지(樹脂)로 그물처럼 촘촘히 엮어 너무 딱딱한 소리를 막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게 만든다. 채의 형태와 규격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영남의 불모산 영산재에서는 꽹과리 채를 쓰지 않고 대나무 뿌리를 불에 구워 잘 휘어지도록 모양을 잡아 별도로 제작하며, 길이가 봉원사의 것보다 길다. 이와 갈리 서울에서는 꽹과리 채와 같은 것을 사용한다.
○ 연주법과 기법
광쇠는 한 손에 길고 가는 채를 쥐고 치며, 보통의 꽹과리와 달리, 악기를 자루를 얼굴 높이까지 들어 연주하며, 길고 가는 채(공이)를 사용한다. 광쇠의 연주법은 지역별, 역할별로 차이가 있다 기본 연주법은 왼손에 광쇠 자루를 잡고 오른손에 잡은 광쇠 채로 광쇠 복판을 친다. 영남 불모산 영산재애서는 범패의 리더인 어장이 직접 광쇠를 치면서 범패를 부르는데, 이때는 광쇠채를 내리고 광쇠를 뺨에 가까이 대어 범음을 잘 듣고, 반주할 때는 머리 약간 위로 치켜들고 채로 복판을 친다. 광쇠의 주법은 왼손으로 자루를 들고 치기 때문에 농악 꽹과리 연주에서 보이는 왼손 바닥으로 복판을 막고 소리 여운을 조절하는 기법은 구사하지 않는다. 서울 영산재에서는 당좌(堂座)가 월대 위에서 착석하여 의식 진행 순서에 따라 연주하는데, 기본적으로 세 망치를 연주하는 것을 기본 형식으로 한다.
한편 광쇠의 연주에서는 꽹과리의 장점을 포용하여 풍물 및 무속음악처럼 화려한 장단을 구사하며, 소리와 속도를 조절해 자진모리장단을 사용하거나 점점 빠르게 치는 연주 형식을 반복한다. 또한 의례를 집전하는 법주(法主)의 의도를 파악하여, 채의 강도와 속도 조절한다. 광쇠의 주법은 단독으로 연주할 때와 여러 악기화 합주할 때 차이가 있다. 단독으로 연주할 때는 대중의 염불 소리에 맞춰 글자 하나에 광쇠 한번 치는 ‘일자일타(一字一打)’ 주법으로 경전 염송(念誦)을 반주하며, 부처의 명호(名號)를 소리하는 정근(精勤)을 진행할 때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속도와 리듬을 조절하면서 변화를 주기도 한다. 합주할 때는 징, 북이 치는 기본 장단에 잔가락을 더해 흥을 더하고 무용을 반주할 때는 소리와 무용이 어우러지도록 기교를 섞기도 한다.
○ 용도와 기능
광쇠는 현재 주로 경남 지역의 어산승(魚山僧)이 소리나 무용을 반주할 때 연주하지만, 역사적으로 불교의 지역 구분없이 각종 재(齋) 의식에 폭넓게 사용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1990년까지만 해도 서울 봉원사 영산재에서 사용된 예가 확인된다. 의례를 진행할 때 광쇠는 같은 계통의 금속 타악기인 징이 한 개만 사용되는 것과 달리 복수로 편성된다. 범패를 부르는 여러 명의 어산승이 각자 광쇠를 손에드로 치면서 가지게(加持偈)부터 회향(廻向)에 이르는 권공(勸供)을 진행하거나 천수바라를 할 때, 광쇠의 음악적 효과가 극대화된다. 또한, 광쇠를 칠 때는 공이가 달린 채의 강도와 속도를 현장 상황에 따라 달리 변용하면서 연주자의 의도를 대중에게 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의식을 주도하는 법주(法主: 감독)는 의례의 진행에 따라 강도를 달리하며, 상황에 따라 광쇠의 손잡이와 끈을 이용해 울림판을 자유자재로 돌려가며 연주하기도 한다. 한편, 조선 시대 감로왕도에는 광쇠를 들고 추는 작법이 보인다. 이와 같은 광쇠의 용도는 크게 염불과 범패의 악구를 구분하고, 소리를 이끄는 가교 역할을 하며 범패의 속도 제시 및 리듬 유지, 작법무의 반주로 정리할 수 있다.
○ 역사적 변천
광쇠는 조선 후기 감로탱화에서 광쇠를 들고 추는 춤의 모습으로도 보이는 현대 학계에서는 이를 ‘광쇠춤’으로 명명하고 있다. 광쇠춤의 도상은 광쇠가 반주 악기로서의 기능 뿐 만 아니라 춤의 무구(舞具)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불교 재의식에 사용되던 광쇠는 굿중패에 의해 민간에서도 연주하는 악기로 용처가 확대되었다. 청룡사 감로탱(1682)에는 굿중패가 광쇠와 소고 형태의 북을 연주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굿중패가 연주하던 광쇠는 자루가 탈락되고 소정·소쟁 등과 통합되어 꽹과리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통도사 감로탱(1900)에는 광쇠춤이 보이지 않고, 그 대신 ‘나비춤’이 보인다. 이는 재의식에서 광쇠의 기능이 변화된 것을 암시한다. 아울러 후대로 올수록 재의식에서 광쇠의 용도가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며, 1990년까지만 해도 서울 봉원사 영산재에서 광쇠가 사용된 흔적이 보이나, 현재는 영남 지역의 불교의례서만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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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일명조(慧日明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