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부터 성행해 온 민속춤으로, 학이 움직이는 모습을 모방하여 검정 갓에 흰 도포를 입고 추는 춤.
부산 동래와 양산 등 경남 지역에 분포한, 학의 형상을 모방한 덧배기춤의 한 유형이다. 춤꾼은 검정 갓과 흰 도포 차림으로 넓은 마당에서 추며, 갓은 학의 머리, 도포는 학의 날개를 상징한다.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일정한 형식 없이 자유롭게 추며, 춤꾼의 개성을 드러낸다. 대표적으로 〈동래학춤〉과 〈양산학춤〉이 있다.
동래 지역은 온천을 찾는 풍류객이 모여들던 곳으로, 놀이판과 사랑방에서 한량들이 춤을 추는 일이 잦았다. 동래야류 예능 보유자 신우언(辛祐彦, 1899~1979), 동래기영회 이사장 김인호(金仁浩, 1900~1982), 동래야류 예능 보유자 문장원(文章垣, 1917~2012) 등의 증언에 따르면, 학춤은 줄다리기·야류·기영회·망순계 등 지역 민속 행사와 관련되어 전승되었다. 즉 동래의 대표적인 놀이로 지신밟기, 줄다리기, 동래야류 등에서 길놀이가 끝난 뒤 마당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춤을 추며 어울렸고, 그 자리에서 학춤, 곱추춤, 요동춤, 두꺼비춤 등이 펼쳐졌다. 또 줄다리기에서 승리한 편을 축하하기 위해 명무들이 학춤을 추기도 했는데, 어느 춤꾼이 도포와 갓 차림으로 덧배기춤을 추자 이를 본 사람들이 “마치 학이 춤추는 것 같다”라 하여 ‘동래학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또한 동래 지역은 지형이 학의 형상을 닮았다고 여겨져, 마안령(馬鞍領, 동체), 동장대(東將臺, 왼쪽 날개), 서장대(西將臺, 오른쪽 날개), 학소대(鶴巢臺, 칠산동 일대), 학암(鶴岩, 연산 4동) 등 학과 관련된 지명이 다수 존재하였다. 학암 일대는 물이 많이 고인 소택(沼澤)으로 학이 많이 서식하였고, 이러한 환경은 덧배기춤이 학의 동태를 관찰하고 반영하여 다듬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를 근거로 문장원은 주무수를 학의 동체인 마안령으로, 4인의 조무수를 동장대·서장대·학소대·학암으로 배치하여 5인무를 편성·연행하였고, 이때부터 김동원(金東源, 1926∼2001)이 주무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976~1984년 공식 공연에서 이 5인무가 연행되었다.
〈양산학춤〉은 사찰에서 민간으로 전해진 춤으로, 양산사찰학춤으로도 불린다. 통도사 대재행사 종무총회 시 의례행사로 연행된 이후, 1930년대 중반부터 경남 양산 내송리를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당시 내송리에 거주하던 김두식(金斗植, 1843~1930)은 사찰에서 학춤을 전수받아 즐겨 추었으며, 이후 황종렬(黃鐘烈, 1897~1957), 김덕명(金德明, 1924~2015)에게 전수되었다.

○ 개요
학춤은 학의 몸짓을 단순히 옮겨 놓은 춤이 아니라, 선비의 고고한 기품과 격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춤이다. 연행 주체는 한량이고 향유 주체는 서민이지만, 춤판이 벌어지면 공동 주체로 어우러지기도 한다. 학춤은 홀춤, 5인무, 그 이상의 군무로 출 수 있고, 시간 제한도 없다. 학춤은 정형화된 춤이 아니라 춤꾼의 개성이 존중되는 열린 구조의 춤임을 알 수 있다.
○ 구성
동래학춤이 시작되면 기수, 구음, 상쇠, 부쇠, 징, 장구, 북, 무수 순으로 입장하고, 퇴장은 무수부터 한다. 네 번의 배김사위와 등퇴장을 포함하여 총 여섯 장으로 이루어진다.
① 1장: 악사들이 자진가락(자진모리)을 치며 등장하여 춤판을 한 바퀴 돈 뒤 한 곳에 정지한다. 곧이어 늦은굿거리장단으로 바뀌면서 구음이 시작되는데, 이때 춤꾼들은 활개짓 뜀사위를 하며 차례로 춤판을 돌고, 5장단 정도의 즉흥춤을 춘다.
② 2장: 모이어룸사위와 앉음모이어룸사위를 한 뒤 똑바로 선 자세에서 외발서기를 하고 좌우 옆걸음사위를 한다. 5장단 정도의 즉흥춤을 춘 후, 첫 번째 배김사위를 수행하는데, 모두 중앙을 향해 배긴다. 배김사위를 수행한 후에는 항상 풀이사위를 행한다.
③ 3장: 5장단 정도의 즉흥춤을 춘 후, 소쿠리춤사위를 태극무늬를 그리듯 좌측(시계 반대 방향)으로 4장단 수행한다. 이어 다시 5장단 정도의 즉흥춤을 춘 후, 두 번째 배김사위를 수행하는데, 왼쪽 배김사위를 하며 원심 바깥쪽으로 배긴다.
④ 4장: 5장단 정도의 즉흥춤을 춘 후, 오른쪽 시계 방향으로 4장단 태극무늬를 그리듯 소쿠리사위를 수행한다. 이어 5장단 정도의 즉흥춤을 춘 후, 세 번째 배김사위를 수행하는데, 이때는 쌍배김사위로 2인 이상의 무수가 서로 마주 보며 행한다. 세 번째 배김사위 이후에는 뒷배김사위와 소매걷움사위 등으로 풀어준다.
⑤ 5장: 5장단 정도의 즉흥춤을 춘 후, 활개짓 뜀사위로 춤판을 한 바퀴 돈다. 이어 5장단 정도의 즉흥춤을 춘 후, 모이줍는사위를 좌우로 수행하고, 모둠뛰기로 한 바퀴를 돈다. 다시 5장단 정도의 즉흥춤을 춘 후, 끝배김사위를 수행하는데, 이때 각자 자유로운 방향으로 춤을 춘다.
⑥ 6장: 5장단 정도의 즉흥춤을 춘 후, 좌우 배김사위를 수행하고, 이어 즉흥춤을 춘 뒤, 활개짓뜀사위로 춤판을 돌아 퇴장한다.
동래학춤은 즉흥적인 춤사위의 짜임새를 갖고 있으며, 장단 수도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원칙적인 체계와 형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공간, 시간, 무수의 수, 그리고 감정에 따라 순간적으로 춤사위를 만들어내면서 수행하는 자유분방한 춤의 형식을 취한다. 즉흥춤은 다섯 장단 정도로 춤춘다.
양산학춤은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① 양팔을 벌리고 우쭐거리며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판을 한 바퀴 돌아 나와서 중앙에서 8박으로 춤을 춤추다가 인사하고 일어선다.
② 8박 동안 좌우를 두루 살피며 양팔을 위로 올리고, 다리를 바로 들어 올리는 걸음으로 좌우로 돈다. 처음에는 4박으로 두 번, 이어 2박으로 네 번 관중을 향해 배긴다.
③ 다시 〈덧배기춤〉을 추면서 좌우로 고갯짓을 하고, 4박-2박으로 돌아가 앉아 잠시 머문 뒤 일어나 양다리를 좌우로 펴서 기지개 켜듯이 춤을 추며 한 바퀴 돈다.
④ 〈덧배기춤〉을 추며 무대 중앙으로 와, 관중을 향해 한두 번 배긴 후 일어나 인사하고 퇴장한다.
○ 주요 춤사위
동래학춤에서 활개짓뜀사위는 학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주요 춤사위로, 양팔을 옆으로 벌려 너울거리며 앞으로 뛰어나오는 동작이다. 일명 날음새라고도 하며, 넓고 우아한 팔짓과 가볍고 절제된 발뜀이 교차하여 고고한 기품과 자유로운 생명력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 반주음악
동래학춤 반주 음악은 자진모리와 늦은 굿거리장단(굿거리)을 사용하며, 자진모리장단은 입장과 퇴장할 때만 쓰인다. 본격적으로 학춤이 시작되는 굿거리장단에서는 구음이 나오는데, 특정한 가사 없이 ‘아, 어, 나, 너’ 등의 소리를 낸다. 악기는 꽹과리, 징, 장고, 북으로 편성되며, 야외 무대에서는 상쇠(1)·부쇠(1)·징(2)·장구(4)·북(4) 정도가 적정하다. 양산학춤의 반주 음악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자유분방하며 즉흥성이 있다. 주로 굿거리장단을 사용하며, 사물악기를 중심으로 연주한다. 실내에서는 피리·대금·해금·장구·북으로 이루어진 삼현육각을 사용하기도 한다.
○ 복식ㆍ의물ㆍ무구
동래학춤의 춤꾼 의상은 흰색 바지, 저고리에 흰 도포를 입고 행전을 찬다. 머리에는 검정 갓을 쓰고 짚신(미투리)을 신으며 가슴에는 흰 술띠를 맨다. 악사의 의상은 흰색 민복에 조끼와 두루마기는 옥색으로 입으며 고깔을 쓰고 버선과 짚신을 신는다. 상쇠를 비롯한 악사들은 적색, 노랑, 녹색, 흰색 꽃송이로 만들어진 고깔을 쓰지만, 징수는 흰색 고깔을 쓴다. 소리꾼의 의상은 과거에는 악사와 동일했으나 여성 예인인 유금선(1931~2001)이 1993년에 보유자 인정된 후부터 치마, 저고리를 입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다양한 색상의 의상을 자유롭게 입기도 한다. 그밖에 동래학춤의 기(旗)가 있다. 양산학춤의 춤꾼은 흰 바지와 저고리에 흰 도포를 입고, 바지에는 행전을 둘러 단정하게 한다. 허리에는 옥색 술띠를 매며, 머리에는 검정 갓을 쓰고 발에는 짚신(미투리)을 신는다.
○ 역사적 변천
동래학춤은 1972년에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초대 예능 보유자로 김희영(金熙英, 1923~1972)이 지정되었으나, 같은 해 별세함에 따라 보유자 지정은 취소되었다. 이후 전승 체계는 분야별 보유자 지정을 통해 이어졌는데, 악사 부문에서는 1977년 장고 김덕선(1920~1999), 2015년 상쇠·꽹과리 김태형(1965~), 무수 부문에서는 1985년 김동원, 2015년 이성훈(1949~), 구음 부문에서는 1993년 유금선이 각각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전승의 맥이 이어졌다. 현재는 동래학춤보존회를 중심으로 군무 형태의 전승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양산학춤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민간 전승자들을 통해 수십 년간 명맥을 이어 왔다. 이 춤의 영향을 받은 울산학춤과 진주학춤 등도 각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으며, 이러한 학춤들은 홀춤 또는 군무 형태로 남녀 구분 없이 마당이나 무대에서 자유롭게 연행되고 있다.
학춤은 한량 및 민중의 삶을 반영하여 전승되었으며, 학의 고귀한 이미지를 춤으로 표현하고 기품 있는 멋을 공유함으로써 개방적 문화로 확장되었다. 또한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춤사위는 창의적이며 힘찬 기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특징을 지닌다.
부산광역시 무형유산(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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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자(吳德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