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정철이 지은 사설시조 〈장진주사〉를 가곡과 시조 장단에 얹어 부르는 성악곡이다.
〈장진주〉는 조선 중기에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이 지은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노래한 곡으로 17, 18세기 『송강가사(松江歌辭)』의 여러 목판본과 필사본에 실려 있다. 1728년의 『청구영언(靑丘永言)』을 비롯한 여러 가집에 지속적으로 실려 전하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18세기에 노래가 불렸을 것으로 추측되며 악보는 『삼죽금보(三竹琴譜)』(1841)에 〈장진주〉 거문고 가락이 전한다.
○ 개요
장진주는 조선 중기에 송강 정철이 지은 〈장진주사〉를 노래한 곡으로, 가곡과 같이 5장으로 되어 있다. 창법이나 선율적 측면에서 여창 가곡의 특징이 많다.
이백의 〈장진주〉가 남성적인 호탕함을 보이는 것에 비해 송강의 작품은 여성적인 여린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인하여 여창 가곡의 선율을 차용해서 부른 것으로 보인다.
○ 음악적 특징
장진주는 여느 가곡과 같이 5장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평조에서 계면조, 다시 계면조에서 평조로 여러 차례 바뀌다가 마지막에는 계면조로 끝난다. 전체적으로 계면조 위주로 되어 있다. 여창 계면가곡 중 〈이수대엽〉, 〈중거〉, 〈평거〉, 〈두거〉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다만, 3장 앞부분에만 여창 우조가곡 중 〈중거〉, 〈평거〉, 〈두거〉와 유사한 선율이 있다.
장단은 가곡의 16박 장단과 시조 8박 장단이 쓰이는데, 1~2장은 가곡 16박 장단, 3장은 8박 장단, 4~5장은 16박 장단으로 부른다.
○ 역사적 변천 및 현황
정철이 〈장진주사〉를 지은 16세기부터 장진주와 같이 사설시조가 노래로 불렸는지는 미상이다. 가곡의 원형인 〈만대엽〉이 『금합자보(琴合字譜)』(1572)에 등장하나, 평시조를 노래하는 형태였다. 16세기에 장진주와 같이 사설시조를 가곡으로 부르는 형태는 없었기 때문에 16세기에는 단순히 읊조리는 형태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17세기 이래로 『송강가사』 여러 판본에 전하며, 18세기 가집 『청구영언』에 전한다. 사설시조가 가곡의 노랫말로 수용된 것은 18세기 후반 무렵이다. 『청구영언』에 장진주가 수록된 점에서 늦어도 18세기에 전문 가객에 의해 불리었던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삼죽금보』(1841)에 장진주의 거문고 가락이 전하는 점을 참고하면 19세기에 장진주가 가곡처럼 기악 반주를 곁들여 불린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중반의 가집들에는 여창 가곡 작품 뒷부분에 장진주와 〈장진주대〉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 무렵에는 장진주가 여창 가곡으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진주는 20세기에 거의 불리지 않고, 악보로 전해지다가 최근에 조순자에 의해 다시 불리고 있으며 2024년에 노래와 반주의 총보로 편찬되었다.

○ 노랫말
〈장잔주사〉는 사설시조로 3장이 초장과 종장보다 훨씬 길다. 노랫말은 술로써 허무한 인생을 달래는 일종의 권주가이다.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초장> |
한 잔(盞) 먹사이다 |
<2장> |
또 한 잔(盞) 먹사이다. |
<3장> |
꽃 꺾어 주를 놓코 |
무진무진 먹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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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 죽은 후(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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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 우에 거적 덮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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줖으리여 매여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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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보장(流蘇寶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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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시마(白夫緦麻) 울어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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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욱새 더욱 새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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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게나무 백양(白楊) 숲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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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곧 가량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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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른 해 흰 달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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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눈 가는 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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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簫簫)리 바람 불 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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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 한 잔(盞) 먹자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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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
하물며 |
<5장> |
무덤 우에 |
잔나비 파람헐제 뉘우친들 및으리 |
※노랫말 출처: 김진향 편, 『선가하규일선생약전(善歌河圭一先生略傳)』, 도서출판 예음, 1993.
임미선(林美善)